회사 이사가 배임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당하면,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손해액이 곧 배상해야 할 전액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민사 손해배상소송에서는 형사판결의 손해액과 별개로,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해 배상액을 낮춰 인정하는 사례가 실무상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손해가 확대된 원인이 이사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거나 회사의 내부 관리체계 자체에 허점이 있었던 경우라면, 이 책임제한 법리를 적극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정이 참작되고 어느 정도까지 감액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이사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배임 이사에게도 손해배상액을 낮출 여지가 있는 이유
이사가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상법 제399조에 따라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집니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놓치는 지점은, 이 책임이 발생한 손해 전액을 그대로 떠안는 무제한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배임 행위로 형사처벌까지 받은 이사라 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국면에서는 다시 별도로 다퉈야 할 쟁점이 남아 있습니다. 손해가 발생하고 확대된 데에 이사 한 사람의 잘못만 작용했는지, 회사의 내부통제 체계 자체가 허술했던 것은 아닌지, 임무위반으로 이사 본인이 실제로 이익을 취했는지 등에 따라 법원이 인정하는 배상액의 폭이 크게 달라집니다.
결국 관건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자체를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그 액수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를 다투는 두 번째 전선을 함께 준비하는 것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책임제한 법리의 참작요소와 사실심 전권, 소멸시효 10년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의 법적 성질부터 짚어야 합니다. 이사와 회사의 관계는 상법 제382조 제2항이 준용하는 민법상 위임관계이므로, 임무해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일반 불법행위책임이 아니라 채무불이행책임입니다. 이 성질 때문에 소멸시효도 불법행위의 단기소멸시효가 아니라 일반채권과 같은 10년이 적용됩니다(대법원 1985. 6. 25. 선고 84다카1954 판결). 당장 시효가 급박한 사안은 드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사의 자력이나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쟁점인 책임제한 법리는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2다60467, 60474 판결에서 정립됐습니다. 이 판결은 이사가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해태해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할 때 아래와 같은 사정을 참작해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해당 사업의 내용과 성격
이사의 임무위반 경위 및 임무위반행위의 태양
손해의 발생 및 확대에 관여된 객관적 사정이나 그 정도
평소 이사의 회사에 대한 공헌도
임무위반행위로 인한 해당 이사의 이득 유무
회사의 조직체계 흠결 유무나 위험관리체제 구축 여부
여기서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참작요소 중에는 임무위반행위로 인한 이사의 이득 유무가 포함되어 있어,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특정 거래처에 부당한 이익을 몰아주는 등 이사 본인이나 제3자가 직접 이익을 취한 전형적인 배임 사안에서는 이 요소가 불리하게 작용해 제한 비율이 낮게 인정되거나 아예 제한이 부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사 본인은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데 감독 소홀이나 결재 체계의 허점 때문에 손해가 확대된 사안이라면 제한 폭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 사건들을 보면 인정된 제한 비율은 사안마다 10%대에서 50%대까지 폭넓게 나타났고, 여러 이사가 함께 소송을 당한 경우에도 관여 정도에 따라 이사별로 서로 다른 제한 비율이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실무상 중요한 점은, 이 책임제한 비율을 정하는 것이 사실심의 전권사항이라는 것입니다.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이상 상고심에서 그 비율 자체를 새로 다투기는 어렵다는 뜻이므로, 참작사유에 관한 주장과 증거는 1심·2심 단계에서 충분히 제출해 두어야 합니다.
손해액 산정 자체가 쟁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임행위로 이사나 제3자가 취득한 이익이 반드시 회사의 손해액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손해의 발생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증명하기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때에는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해 상당한 손해액을 정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한편 상법은 총주주의 동의가 있으면 이사의 책임을 아예 면제해주는 별도 제도도 두고 있으나(상법 제400조), 이는 주주 전원의 동의라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요건을 전제로 한 것으로, 법원이 개별 사정을 참작해 배상액수만 낮춰주는 책임제한 법리와는 요건과 효과가 다른 별개의 제도입니다.
여기서 경영판단의 원칙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합리적인 정보에 근거해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해 신의성실에 따라 판단했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애초에 임무위반 자체가 없었다고 보아 책임 발생을 막는 법리입니다. 반면 책임제한 법리는 임무위반과 손해배상책임이 이미 인정된 것을 전제로, 그 배상액수를 얼마나 깎아줄 것인지를 정하는 다음 단계의 법리입니다. 두 법리는 작동하는 국면이 다르므로, 책임 자체를 다투는 주장과 책임제한을 구하는 주장은 함께 준비하되 서로 구별해 순차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범죄사실은 민사법원의 사실인정에 사실상 큰 영향을 미치지만, 손해액수나 책임제한 참작사유에 관한 법원의 판단까지 형사판결에 그대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민사소송에서 별도로 충분한 주장·증명이 필요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책임제한 참작사유 확보부터 공동책임 비율 다툼까지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순서와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형사판결의 손해액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배임죄 유죄가 확정됐더라도 형사판결의 손해액과 민사상 손해배상액이 자동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나 제3자가 취득한 이익의 규모, 회사에 실제로 발생한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다시 짚어 손해액 자체를 다툴 여지가 있는지부터 검토합니다.
책임제한 참작사유를 뒷받침할 자료를 모읍니다 — 이사회 의사록, 내부 결재·감사 체계에 관한 자료, 조직도, 다른 이사·감사의 관여 여부, 평소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보여주는 실적 자료 등을 통해 손해의 발생·확대에 회사 조직체계의 흠결이나 다른 사람의 관여가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합니다.
이득 유무와 반환 여부를 명확히 정리합니다 — 본인이 실제로 취득한 이익이 있는지, 있다면 그 규모를 특정하고, 이미 회사에 반환했거나 원상회복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부각해 참작사유로 활용합니다. 반대로 이득이 전혀 없었다는 사정은 제한 비율을 높이는 유리한 근거가 됩니다.
공동피고 이사들과의 책임 비율을 다툽니다 — 여러 이사·감사가 함께 소송을 당한 경우, 각자의 관여 정도와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같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주장해 이사별로 서로 다른 제한 비율이 인정되도록 합니다. 일률적으로 같은 비율을 적용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손해액 자체를 다투거나 감정을 신청합니다 —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다투기 어렵더라도 구체적인 액수 산정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라면, 회계·감정 자료를 근거로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를 참작해 상당한 손해액을 정하도록(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다툴 여지가 있는지 검토합니다.
1심 단계부터 사실관계를 촘촘히 현출시킵니다 — 책임제한 비율은 사실심 전권사항이므로, 상고심에서 새롭게 다투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참작사유에 관한 주장과 증거는 1심·2심에서 미리 충분히 제출해 두어야 이후 단계에서 불리해지지 않습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책임제한 자료는 지금 확보해야 하는 이유
배임 이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책임 자체를 다투기 어렵다고 해서, 청구금액 전액을 그대로 인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임제한을 뒷받침할 자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소송이 진행된 뒤에 새롭게 제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배임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았다면, 책임 유무를 다투는 것과 별개로 책임제한을 통해 배상액수 자체를 낮출 수 있는지부터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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