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소유의 부동산이 대표이사 개인의 판단만으로, 심지어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은 채 헐값에 넘어가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회사나 다른 주주 입장에서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대표이사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재산을 팔아넘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대표이사가 형식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할 권한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 권한 자체가 없는 사람이 대표를 사칭한 경우와 달리, 권한은 있지만 그 권한을 사익을 위해 남용한 경우이기 때문에 계약의 효력을 다투기가 훨씬 까다롭습니다. 매수인이 대표이사와 가까운 사이였거나 거래 조건 자체가 지나치게 이례적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입증하고 어떤 절차로 부동산을 되찾아올 수 있는지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대표권 범위 안의 처분은 원칙 유효, 무효가 되는 예외 요건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회사의 영업에 관해 재판상·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을 가집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1항). 부동산을 팔고 사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이 권한 범위 안에 있으므로, 대표이사가 회사 명의로 체결한 매매계약은 설령 그 속내가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일단은 유효한 회사의 행위로 취급됩니다. 아예 대표권이 없는 사람이 회사를 사칭해 계약을 맺은 경우와는 이 지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 대표권남용은 권한은 분명히 있되 그 권한을 엉뚱한 목적에 쓴 경우를 말합니다.
다만 이 원칙에는 두 갈래의 예외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사 내부 절차, 즉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중요재산 처분인데도 이를 거치지 않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글에서 다루는 대표권남용 — 형식적 권한은 있지만 그 진의가 회사 이익이 아니라 사익에 있었고,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입니다. 두 경우 모두 "원칙은 유효, 예외적으로만 무효"라는 틀 안에서 판단되며, 무효를 주장하는 회사 쪽이 상대방의 악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도 공통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민법 107조 유추적용과 상대방의 악의·과실 판단기준
판례는 대표권남용 문제를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해 해결합니다. 이 조항은 원래 진의 아닌 의사표시(비진의표시)에 관한 규정으로, 표의자가 진심이 아닌 것을 알고 한 의사표시도 원칙적으로 유효하지만 상대방이 그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대표권남용에도 그대로 끌어와,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대표권을 남용했더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가 된다"는 법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 회사 소유 공장부지가 대표이사를 통해 처분된 사안에서 확인된 법리입니다).
핵심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를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입니다. 실무상 고려되는 사정은 거래대금이 시가에 비해 현저히 낮거나 이례적으로 유리한 조건인지, 매수인이 대표이사와 친족·특수관계에 있는지, 매수인이 회사의 재정 상태나 대표이사 개인의 사정을 미리 알 만한 위치에 있었는지, 거래 협상과 대금 지급이 통상적인 절차와 다르게 이례적으로 신속·비공개로 진행됐는지 등입니다. 예를 들어 시가 1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대표이사가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에 3억 원대에 넘겼다면, 이 가격의 현저한 괴리 자체가 상대방의 악의나 과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이 됩니다. 다만 이런 사정을 조합해 상대방의 악의·과실을 입증할 책임은 무효를 주장하는 회사 쪽에 있고, 단순히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이득을 봤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표권남용과 자주 뒤섞이는 쟁점이 이사회 결의 흠결입니다. 회사의 중요한 자산 처분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상법 제393조 제1항), 이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처분한 경우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경우에도 상법 제209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상대방에게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거래는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즉 "이사회 결의를 안 거쳤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실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데도 확인하지 않은 중과실이 있어야 회사가 무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 대표권남용과 마찬가지로 거래 안전이 원칙, 무효는 예외라는 틀이 여기서도 이어집니다.
민사상 무효 여부와 별개로, 대표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했다면 업무상배임죄(형법 제355조 제2항, 제356조)가 성립할 수 있고, 회사에 대해서는 상법 제399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도 별도로 물을 수 있습니다. 계약의 사법상 효력을 다투는 것과 형사고소·손해배상청구는 서로 다른 절차이므로, 어느 쪽을 먼저 진행할지, 병행할지는 확보된 증거와 회복하려는 이익(부동산 자체의 회수인지, 손해배상인지)에 따라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증거 확보부터 등기말소·부당이득반환청구까지 다섯 단계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거래 정황 증거부터 확보 — 매매계약서, 등기부등본, 거래대금 흐름을 보여주는 계좌 내역, 매수인과 대표이사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법인등기부상 임원 이력, 친족관계 등), 거래 당시 시세를 보여주는 감정평가서·인근 실거래가 자료를 먼저 모아야 합니다. 가격의 현저한 괴리와 특수관계 여부가 악의 판단의 핵심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정관·이사회 의사록 확인 — 해당 부동산 처분이 이사회 결의 대상이었는지, 실제 결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합니다. 결의가 없었다면 대표권남용과 별개로 상대방의 중과실을 다투는 추가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내용증명으로 무효 통지와 원상회복 요구 — 매수인에게 대표권남용을 근거로 계약이 무효임을 통지하고,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및 부동산 반환을 요구합니다. 이미 제3자에게 전매됐다면 부당이득반환을 함께 요구해 이후 소송에서 이행제공·최고 시점을 명확히 남겨 둡니다.
등기말소청구소송 또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 협의가 안 되면 법원에 계약무효 확인과 함께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를 구합니다. 등기 회복이 어려운 상황(선의의 전득자 등)이라면 매수인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이나 손해배상청구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재산 도피가 우려되면 처분금지가처분부터 — 매수인이 부동산을 다시 팔거나 담보를 설정할 조짐이 있다면 본안소송을 기다리지 말고 처분금지가처분을 먼저 신청해 두어야 합니다. 아울러 대표이사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나 업무상배임 고소도 함께 검토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매수인에게 넘어간 뒤로는 되돌리기 더 어려워집니다
대표권남용으로 넘어간 부동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3자에게 다시 전매되거나 담보가 설정될 위험이 커집니다. 선의의 전득자가 나타나면 등기 자체를 되돌리기 어려워지고, 결국 손해배상으로만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습니다.
회사 재산이 대표이사의 사익을 위해 부당하게 처분된 정황이 있다면, 가격과 거래 경위부터 점검하시고 등기 회복이 아직 가능한 시점에 대응 절차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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