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 여럿이 회사를 세우면서 공동대표이사 체제를 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독단적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서로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막상 거래가 급하게 진행되다 보면 공동대표이사 중 한 명이 상대방과 먼저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상대방은 "대표이사가 서명했으니 당연히 유효하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회사 쪽에서 "우리는 공동대표라 1인의 서명만으로는 효력이 없다"고 나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계약 상대방도, 단독으로 서명한 대표이사 본인도 각자 다른 이유로 곤란해지는 지점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공동대표이사 제도와 단독 계약이 충돌하는 지점
공동대표이사는 여러 명의 대표이사가 함께 회사를 대표하도록 정해 놓은 체제입니다. 동업 초기 어느 한쪽에게 대표권이 쏠리는 것을 막고,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서로 합의하도록 설계한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 안전장치가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다가도, 두 대표 사이 신뢰가 흔들리거나 거래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순간 한쪽이 단독으로 계약을 밀어붙이면서 터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계약 상대방이 애초에 이 회사가 공동대표 체제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경우, 그리고 알고는 있었지만 거래가 급해 "일단 서명부터 받고 나머지는 나중에"라는 식으로 넘어간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이후 구제 방법의 성패가 크게 갈립니다. 몰랐다면 표현대표이사 책임을 주장할 여지가 생기지만, 알고도 감수했다면 그 주장 자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집니다.
실무에서는 두 가지 패턴이 자주 보입니다. 하나는 동업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한쪽 대표이사가 상대 동업자 모르게 독단으로 계약을 체결해버리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거래 상대방이 계약 전에 법인등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명함이나 직함만 믿고 서둘러 계약부터 맺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회사 내부 분쟁으로, 후자는 거래 안전과 상대방 보호의 문제로 각각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등기의 대항력과 표현대표이사 책임의 갈림길
상법 제389조는 회사가 대표이사를 두되, 필요하면 정관이나 이사회 결의로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하도록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렇게 공동대표를 정한 때에는 상법 제317조 제2항 제10호에 따라 설립등기(또는 변경등기) 시 그 사실을 반드시 등기해야 합니다. 즉 공동대표이사 여부는 법인등기사항전부증명서만 떼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공시사항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대표권 제한과 공동대표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나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1억 원 이상 계약은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제한은 등기사항이 아니므로, 이를 몰랐던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공동대표는 등기사항이고, 상법 제37조에 따라 등기한 사항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제3자가 몰랐더라도 회사가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원칙적으로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단독으로 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며, 상대방이 선의였는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결론을 바꾸지 못합니다.
다만 능동대표와 수동대표는 구분해야 합니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능동대표)는 공동대표자 전원이 함께 해야 하지만, 반대로 제3자가 회사에 대해 하는 의사표시(수동대표, 예를 들어 해지 통보나 최고)는 공동대표자 중 1인에게만 해도 유효합니다(상법 제389조 제3항이 준용하는 제208조 제2항). 계약 체결은 원칙적으로 무효가 될 수 있지만, 회사에 무언가를 통보하거나 최고할 때는 대표이사 1인에게만 해도 된다는 점을 함께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무조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법 제395조는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의 행위에 대해, 그 이사에게 실제로는 대표권이 없더라도 회사가 선의의 제3자에게 책임을 지도록 정하고 있습니다(표현대표이사). 이 규정은 공동대표이사 사안에도 적용됩니다 — 회사가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평소 "대표이사"라는 명칭을 사용해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용인했다면, 그 단독 계약에 대해서도 회사가 선의의 제3자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93. 12. 28. 선고 93다47653 판결). 반대로 회사가 평소 공동대표 원칙을 지키도록 관리해 왔고 이번이 이례적인 단독 행위였다면, 표현대표이사 책임을 인정받기는 어려워집니다.
숫자로 체감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물품대금 3억 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단독으로 체결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상대방이 계약 전 등기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회사도 평소 그 대표이사의 단독 행위를 특별히 묵인한 정황이 없다면, 원칙으로 돌아가 계약은 회사에 대해 무효가 됩니다. 상대방은 회사가 아니라 단독으로 서명한 대표이사 개인을 상대로 무권대표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민법상 무권대리인 책임 법리 유추)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반대로 그 대표이사가 평소에도 회사 명의로 단독 서명해 온 관행이 있었고 회사가 이를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면, 표현대표이사 책임으로 회사에 3억 원 전액을 청구할 여지가 열립니다 — 같은 금액이라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계약 전 확인부터 사후 구제까지
쟁점이 정리됐다면, 계약 상대방과 회사 양쪽 입장에서 각각 이렇게 대응합니다.
계약 전 등기부 확인은 필수 — 법인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서 대표이사 항목에 "공동대표이사"라는 표시가 있는지, 있다면 몇 명이 함께 서명해야 하는지를 계약 체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 없이 명함이나 직함만 믿고 진행하면 나중에 무효를 주장당해도 다툴 근거가 약해집니다.
공동대표 체제라면 전원 서명 또는 위임장 확보 — 시간이 급해 대표이사 1인만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머지 공동대표이사 명의의 위임장을 함께 받아두어야 합니다. 위임장 없이 구두로 "다른 대표님도 동의했다"는 말만 듣고 넘어가면 이후 무효 분쟁에서 아무 증거가 남지 않습니다.
이미 단독 계약을 체결했다면 용인·방임 정황부터 수집 — 무효를 통보받은 경우, 표현대표이사 책임을 주장하려면 그 대표이사가 평소에도 회사 명의로 단독 서명해 온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과거 계약서, 명함, 회사 인장이나 법인카드 사용 이력, 다른 거래처와의 거래 관행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무권대표행위의 추인 여부도 함께 검토 — 회사(또는 다른 공동대표이사)가 사후에 그 계약 내용을 알고도 이의 없이 이행을 계속하거나 대금 일부를 지급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면, 묵시적 추인으로 평가받아 계약이 유효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추인이 있었는지를 뒷받침할 정황도 함께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회사 입장이라면 단독 행위자에 대한 책임 추궁도 병행 — 다른 공동대표이사 몰래 계약을 체결한 대표이사 개인에게는 회사에 대한 임무 해태를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상법 제399조)을 물을 수 있습니다. 계약 자체는 무효로 정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회사의 손해(신뢰 훼손, 대응 비용 등)는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등기 정비 — 공동대표 체제가 실제 운영에서 계속 혼선을 빚고 있다면, 아예 단독대표 체제로 변경등기하고 대신 내부 전결 규정으로 견제 장치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등기부와 실제 운영 관행이 어긋나 있는 상태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다음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공동대표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
공동대표이사가 얽힌 계약 분쟁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서명은 대표이사가 했으니 당연히 유효하겠지"라고 넘겨짚는 것입니다. 등기 여부, 회사의 용인·방임 정황, 추인 여부에 따라 같은 계약도 무효와 전액 유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끌수록 증거를 모으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공동대표이사가 있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거나, 반대로 공동대표이사로서 상대방과의 계약이 문제된 상황이라면 등기부부터 확인하시고, 표현대표이사 책임 성립 여부와 추인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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