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각서'를 쓰고 싸웠는데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폭행치사는 무죄 — ‘야차룰’은 안돼요
'싸움 각서'를 쓰고 싸웠는데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폭행치사는 무죄 — ‘야차룰’은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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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각서'를 쓰고 싸웠는데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폭행치사는 무죄 — ‘야차룰’은 안돼요 

신지수 변호사

들어가며

아파트 동대표 회의는 관리비, 용역 발주, 주차 문제처럼 돈과 권한이 걸린 안건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감정 대립이 격렬해지기 쉽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사건은 그 대립이 최악의 형태로 폭발한 사례입니다. 두 동대표가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싸움 각서'까지 작성한 뒤 몸싸움을 벌였고, 그중 한 사람이 급성심장사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1심과 항소심 모두 폭행치사가 아닌 폭행죄만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망하였고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인정되었는데도 왜 폭행치사는 무죄가 되었는지, 그리고 '싸움 각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결과적 가중범의 법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이기에, 보도된 판결 내용을 토대로 평석해 봅니다.

사안의 개요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2024년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열린 동대표 회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건은 불법 주·정차 차량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문제였습니다. 40대 동대표와 50대 동대표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져 감정이 격해지자, 피해자인 50대 동대표가 먼저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제안하였고, 상대방이 이를 수락하여 두 사람은 회의실 밖으로 나가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피고인이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얼굴 등을 가격하였는데, 피해자는 몇 걸음을 걷다가 쓰러졌고 심폐소생술과 병원 이송에도 불구하고 사망하였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사망 원인은 급성심장사였습니다. 검찰은 폭행치사죄로 기소하였습니다.

폭행죄와 폭행치사죄, 이름 한 글자의 거리

두 죄의 법정형 차이는 극적입니다.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지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반면 폭행치사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하한이 3년이어서 실형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집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폭행치사에서 폭행으로 축소 인정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죄명의 교체가 아니라 형벌의 무게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피고인에게는 폭행죄에 대하여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고, 항소심은 검사와 피고인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여 이를 유지하였습니다.

결과적 가중범의 두 개의 퍼즐 — 인과관계와 예견가능성

폭행치사죄는 강학상 '결과적 가중범'입니다. 기본범죄인 폭행을 저질렀는데 의도하지 않은 더 무거운 결과인 사망이 발생한 경우 형을 가중하는 구조인데, 그 성립에는 두 개의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과관계, 즉 그 폭행으로 인하여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였을 것. 둘째는 예견가능성, 즉 사망이라는 결과를 행위자가 예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법원은 폭행치사죄가 결과적 가중범으로서 폭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외에 사망의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 곧 과실이 있어야 한다고 반복하여 판시해 왔습니다. 흔히 두 요건을 하나로 뭉뚱그려 '때려서 죽었으니 폭행치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과관계와 예견가능성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고, 어느 하나라도 증명되지 않으면 결과적 가중범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첫 번째 퍼즐인 인과관계는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퍼즐인 예견가능성에서 공소사실이 무너졌습니다. 항소심은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발로 찬 사실은 인정되나 당시 일행에게 몸이 붙잡혀 있어 온 힘을 다해 강하게 걷어차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보더라도 폭행의 정도가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을 들었습니다. 1심 역시 피해자에게 평소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었고 체격도 피고인보다 컸던 점에 비추어 폭행으로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항소심은 피고인이 자신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죽을 줄은 알 수 없었다'는 이 판단이 폭행치사 무죄와 폭행죄 유죄를 가른 것입니다.

'싸움 각서'는 면죄부인가

이 사건이 화제가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각서입니다. 서로 싸우기로 합의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각서까지 썼으니 죄가 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이번 판결에서 각서는 폭행치사 무죄의 직접적 근거가 아니라, 사건의 경위와 예견가능성을 판단하는 여러 정황 중 하나로 언급되었을 뿐입니다. 법리적으로도 형법 제24조의 피해자의 승낙은 그 승낙에 따른 행위가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에만 위법성을 조각합니다.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를 사전에 합의하였다 하여 폭행의 위법성이 사라진다면 사적 결투가 합법화되는 결과가 되므로, 이러한 승낙은 사회상규에 반하여 효력이 없습니다. 실제로 피고인은 폭행죄에 관하여는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싸움 각서'는 면죄부가 되기는커녕, 싸울 의사가 있었다는 증거로 남을 뿐입니다.

평석 — 공동주택 분쟁 현장이 새겨야 할 교훈

첫째, 이 판결은 결과적 가중범에서 검사의 증명 대상이 '결과'가 아니라 '예견가능성'까지라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 앞에서도 법원은 폭행의 강도, 피해자의 건강 상태와 체격, 사망 기전의 특수성(급성심장사)을 개별적으로 심사하여 예견가능성의 증명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형사 변론의 관점에서는 국과수 감정의 해석, 목격자 진술을 통한 유형력 강도의 재구성이 승부처가 된다는 점을, 유족 측의 관점에서는 형사 결론과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이상 별도로 추궁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 사건은 보도 시점 기준 미확정 사건으로, 상고가 제기되면 대법원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고 피고인은 무죄추정을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둡니다.

둘째, 공동주택 자치기구의 관점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동대표 회의의 갈등은 폭행, 모욕, 명예훼손, 문서 위조와 같은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실무 지침은 단순합니다. 감정이 폭발할 것 같으면 회의를 중단하고 자리를 떠날 것, 밀치기와 멱살잡이도 모두 폭행죄이며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도 맞받아치면 쌍방 폭행이 된다는 점을 기억할 것, 갈등은 주먹이 아니라 문자·이메일·내용증명·회의록이라는 기록으로 다툴 것. 관리비나 운영을 둘러싼 분쟁이라면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제도적 경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 각서'와 같은 문서는 어떤 경우에도 작성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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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동대표 회의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형사 법정의 결과적 가중범 공방으로 끝난 이 사건은, 공동주택 분쟁이 언제든 형사사건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 운영 과정의 갈등이 폭행·모욕 등 형사 문제로 비화하였거나, 그 예방을 위한 회의 운영 체계를 정비하고자 하신다면, 이러한 문제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법무법인 랜드로 신지수 변호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서 공동주택 분쟁의 민사·형사 전 국면을 함께 살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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