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썼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거나 수사를 받게 되면, 정작 당사자는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쓴 건 맞지만 그게 횡령인지 배임인지가 왜 중요하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어느 죄명으로 기소하느냐, 법원이 어느 죄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성립요건 자체가 달라지고, 유·무죄를 다투는 지점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동업자금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담보로 잡아 둔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 회삿돈으로 무리한 투자를 결정해 손해를 끼친 경우처럼 사안이 조금만 달라져도 횡령과 배임 중 어느 죄가 적용되는지 갈리며, 이 판단을 잘못하면 방어 전략 전체가 어긋날 수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횡령죄와 배임죄, 같은 조문 두 항이 서로 다른 객체로 갈라지는 지점
횡령죄와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제1항과 제2항에 나란히 규정돼 있습니다. 둘 다 타인과의 신뢰관계를 배반해 재산상 손해를 끼친다는 본질은 같지만, 조문을 나눈 이유는 침해하는 객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횡령죄는 이미 내 손에 맡겨진 남의 "물건"을 빼돌리는 죄이고, 배임죄는 남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를 저버려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남에게 얻게 하는 죄입니다.
실무에서 이 구별이 문제 되는 사안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회사 직원이 법인카드나 회사 계좌를 개인적으로 쓴 경우, 동업자 한쪽이 동업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 담보로 받아 둔 물건이나 채권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계 모임이나 조합의 자금을 다른 곳에 유용한 경우, 명의만 빌려준 부동산을 명의자가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까지 전부 횡령이 될 수도, 배임이 될 수도 있는 사안들입니다.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도 검찰과 변호인,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갈리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죄명이 왜 이렇게까지 중요한가 하면, 죄명에 따라 성립요건과 죄수(범죄 개수) 판단이 달라지고, 뒤에서 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이득액 산정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느 죄로 다툴 것인지를 초기에 정확히 가려야, 무죄를 다툴 지점과 양형을 다툴 지점이 분명해집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재물이냐 재산상 이익이냐, 취득객체로 갈리는 두 죄
횡령죄(형법 제355조 제1항)가 성립하려면 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 ② 그 재물에 관한 위탁신임관계, ③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위탁신임관계가 '특정된 재물 자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한 관계만으로는 상대방이 그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배임죄(형법 제355조 제2항)가 성립하려면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 ②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③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것이 필요합니다. 배임죄의 주체인 '사무처리자'는 아무에게나 인정되지 않고, 일정한 범위에서 판단의 자유와 독립성, 책임을 가지고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심부름하듯 돈을 전달만 하는 관계라면 사무처리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두 죄를 실제로 가르는 기준은 '취득객체'입니다. 횡령죄는 행위객체와 취득객체가 모두 '재물'인 경우로 한정되는 반면, 배임죄는 취득객체가 '재산상 이익'이면 성립하고, 재물도 배임죄의 행위객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담보로 잡은 물건 자체를 빼돌렸다면 재물 자체를 취득한 것이어서 횡령에 가깝지만, 그 물건을 담보로 한 채권의 가치, 즉 재물의 재산적 가치 중 일부만을 침해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재물죄인 횡령죄가 아니라 이득죄인 배임죄로 의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특정 용도가 정해진 금전 위탁의 경우에는 비교적 명확하게 횡령죄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위탁자가 특정한 용도에 사용하도록 맡긴 금전을 수탁자가 그 용도에 쓰지 않고 임의로 소비하면 위탁받은 금전 자체에 대한 보관자 지위가 인정되어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예컨대 펀드 출자금이나 계약상 정산 목적으로 지급된 돈처럼 용도가 뚜렷이 특정된 자금을 다른 목적에 써버린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면 회사 자금으로 무리한 투자 결정을 내려 회사에 손해를 끼쳤지만 그 자금 자체를 개인 소유로 돌린 것이 아니라 사무처리자로서의 판단을 그르친 경우라면 횡령이 아니라 배임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판례는 횡령죄가 성립하는 범위를 갈수록 엄격하게 좁히는 흐름을 보입니다. 대법원 2022. 6. 23. 선고 2017도3829 전원합의체 판결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에게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하고 이를 임의로 소비한 사안에서, 그 금전이 채권양수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에 해당한다거나 채권양도인이 이를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했습니다.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이 흐름은, 종전이라면 횡령으로 다뤄질 수 있었던 사안들이 배임죄 성립 여부로 다시 검토되거나 아예 무죄로 판단될 여지를 넓혔다는 점에서 실무상 의미가 큽니다.
죄수(범죄 개수) 판단에서도 두 죄는 갈립니다. 횡령죄는 재물죄이므로 한 번 횡령행위를 하면 그 재물 전체에 대해 횡령죄가 기수에 이르고, 그 이후 같은 재물을 다시 처분하는 행위는 불가벌적 사후행위로 별도 처벌되지 않습니다. 반면 배임죄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객체로 하므로, 행위객체가 같더라도 임무위배행위를 반복할 때마다 별도의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금을 유용한 사건에서는 이 차이만으로도 공소사실의 개수와 이득액 합산, 나아가 양형이 크게 달라집니다.
형량 자체는 두 죄가 같습니다. 단순 횡령·배임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법 제355조), 업무상의 지위를 이용한 업무상횡령·업무상배임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법 제356조)입니다. 다만 이득액이 커지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됩니다.
이득액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 —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이득액 50억 원 이상 —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위 각 경우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 병과 가능
여기서 '이득액'은 죄명과 무관하게 범죄행위로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을 뜻하지만, 죄명이 횡령이냐 배임이냐에 따라 애초에 이득액으로 잡을 수 있는 범위와 산정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죄명 다툼이 단순한 명칭 논쟁이 아니라 가중처벌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다툼인 이유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죄명 다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사실관계가 파악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방어 전략을 세웁니다.
위탁받은 대상이 '특정된 재물' 자체인지부터 확인 — 계약서·정산서·입금 내역 등을 통해 애초에 맡겨진 것이 특정 물건이나 특정 용도가 정해진 금전인지, 아니면 포괄적으로 처리해 달라고 맡긴 사무인지를 가려야 합니다. 전자에 가까울수록 횡령, 후자에 가까울수록 배임 쪽으로 다퉈야 합니다.
피의자·피고인의 실제 지위를 규명 — 등기·명의·점유 관계 자료를 모아 당사자가 '재물 보관자'였는지 '사무처리자'였는지를 명확히 합니다. 단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면 사무처리자성 자체를 다퉈 배임죄 성립을 막을 수 있고, 반대로 특정물 보관자에 불과했다면 배임 대신 횡령으로 좁혀 이득액 산정을 다툴 수 있습니다.
검찰이 산정한 이득액을 재검토 — 실제 회수된 금액, 변제·공제된 부분, 손해와 무관한 항목이 포함돼 있는지를 따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5억 원·50억 원 구간 진입 자체를 다툽니다. 이득액이 구간 경계를 넘나드는 사안일수록 이 다툼의 실익이 큽니다.
공소장 변경 가능성에 대비 — 법원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으면 공소장 변경 없이도 횡령을 배임으로, 또는 그 반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 죄명만 다투다가 법원이 다른 죄명을 인정해 버리면 방어가 무력화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양쪽 법리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실질적 피해 회복을 양형 자료로 활용 — 수사·재판 진행 중이라도 변제·공탁 등으로 실제 손해를 회복하면 이득액 산정과 양형 모두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죄명 다툼과 별개로 초기에 준비해 둘 부분입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죄명부터 정확히 가려야 하는 이유
횡령이든 배임이든 "어차피 남의 돈에 손을 댄 건 마찬가지"라며 죄명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정작 무죄를 다툴 수 있는 지점이나 가중처벌 구간을 피할 수 있는 지점을 놓치게 됩니다. 진술과 증거 확보는 수사 초기일수록 유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계좌 내역이나 위탁 경위를 뒷받침할 자료를 모으기 어려워집니다.
회사 자금이나 위탁받은 재산 문제로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면, 맡겨진 것이 재물인지 사무인지부터 짚어보시고, 이득액과 죄수까지 염두에 둔 대응을 서둘러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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