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공장 설비나 건설기계, 영업용 장비를 담보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동산 양도담보 거래가 늘면서, 채무자가 그 기계를 몰래 팔아버려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를 자주 접합니다.
제가 상담한 채권자분들 중 상당수는 “담보로 잡아둔 기계니까, 채무자가 마음대로 팔아버리면 당연히 배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소장부터 준비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면, 몇 달 뒤 “혐의없음” 통지서를 받아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전 판례를 근거로 형사처벌을 자신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수사기관도 법원의 달라진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종전 판례를 전원합의체로 변경했습니다. 수십 년간 유지되던 실무 관행이 뒤집힌 것이어서, 담보를 잡아둔 채권자 입장에서는 대응 방법을 다시 짚어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래에서는 양도담보로 잡은 기계를 채무자가 임의로 처분했을 때 배임죄가 왜 성립하지 않게 됐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채권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은 무엇인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양도담보로 제공한 기계는 채무자가 계속 쓰지만 담보권은 채권자에게 있습니다
점유는 채무자에게 남지만, 담보 목적의 권리관계는 채권자에게 넘어갑니다.
양도담보란 채무자가 금전을 빌리면서 자신 소유의 동산, 이를테면 공장의 기계나 건설장비를 채권자에게 담보로 제공하되, 그 물건을 채권자에게 인도하지 않고 계속 점유·사용하는 방식의 담보입니다. 민법상 동산 인도는 실제 물건을 넘겨주지 않고 점유개정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채무자는 기계를 공장에 그대로 두고 쓰면서도 그 기계에 채권자의 담보권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실무에서는 “서류상으로만 담보로 잡혀 있을 뿐, 어차피 내가 쓰던 기계니까 내 물건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담보설정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한 이상, 채무자는 채무를 다 갚기 전까지 그 기계의 담보가치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감소시켜서는 안 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합니다.
다만 판례는 이런 형태의 담보를 이른바 약한 의미의 양도담보로 보아, 목적물의 소유권이 완전히 채권자에게 넘어간다기보다는 채무불이행 시 채권자가 담보권을 실행하고 환가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 취급해 왔습니다. 이 소유권 귀속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가, 바로 채무자의 임의처분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출발점이 됩니다.
양도담보는 채무자가 점유·사용을 계속하면서도, 채무를 다 갚기 전까지 담보가치를 유지할 계약상 의무를 지는 구조입니다.
2. 예전에는 임의로 팔면 배임죄가 됐지만, 대법원 판례가 바뀌었습니다
2020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수십 년 된 판례를 뒤집었습니다.
과거 대법원은 채무자가 양도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면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가 성립한다고 오랫동안 판단해 왔습니다. 채무자가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를 지는 것을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는 지위, 즉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흐름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골재생산기기를 양도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은 채무자가 그 기계 일부를 제3자에게 매각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채무자가 부담하는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채권자의 사무가 아니라 채무자 자신이 계약에 따라 이행해야 할 급부의무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이로써 채무자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게 됐고, 담보물을 제3자에게 팔아 담보가치를 감소시키거나 상실시키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가 확립됐습니다. 이 판결로 종전에 같은 취지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해 온 여러 대법원판결들도 함께 변경됐습니다.
기계를 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이를 임의로 처분해도, 더 이상 배임죄로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3. 형사처벌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채권자가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 고소보다 민사적 보전·회수 절차가 실질적인 대응 수단이 됩니다.
배임죄로 형사처벌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채무자의 임의처분이 적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채무자는 담보설정계약을 위반한 것이므로, 채권자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담보권자로서 기계에 대한 반환·인도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채무자가 이미 기계를 제3자에게 넘긴 상태라면, 그 제3자가 양도담보 사실을 모르고 평온·공연하게 기계를 넘겨받았을 경우 민법상 선의취득이 인정되어 채권자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형사 고소만 믿고 시간을 끌다가는 담보물 자체를 돌려받을 방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담보물의 임의처분 정황을 포착했다면, 형사 고소 여부를 검토하는 것과 별개로 곧바로 담보물에 대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나 채무자 재산에 대한 가압류 등 보전조치부터 진행하는 것이 실무상 훨씬 중요합니다.
이 법리는 자동차와 같이 등록으로 소유권이 공시되는 동산에도 이어졌습니다.
자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이를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8682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죄 형사처벌이 막혔다면, 남은 선택은 속도를 다투는 민사적 보전·회수 절차입니다.
4. 그래도 사기죄나 강제집행면탈죄로는 처벌될 수 있는 경우가 남아 있습니다
담보설정 경위나 처분 목적에 따라 별도의 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안이 형사처벌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담보로 제공할 기계가 이미 다른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혀 있는데도 이를 숨기고 이중으로 담보를 설정해 대출을 받았다면, 그 대출 실행 자체에 대해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한 범죄입니다.
또한 채무자가 소송이나 강제집행을 피할 목적으로 기계를 은닉하거나 허위로 양도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형법 제327조의 강제집행면탈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이 죄는 채권자가 이미 소송을 제기했거나 제기할 조짐이 뚜렷한 상황에서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다만 두 범죄 모두 배임죄와는 성립요건이 전혀 다릅니다. 단순히 “담보로 잡힌 기계를 팔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처음부터 기망 의사가 있었는지, 강제집행을 피하려는 목적이 뚜렷했는지를 별도로 입증해야 하므로, 구체적인 정황을 꼼꼼히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5. 담보물이 임의로 처분된 정황을 포착했다면, 이렇게 확인해야 합니다
보전조치와 형사 고소 가능성 검토를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담보로 잡아둔 기계가 팔린 정황을 확인했다면 통상 ①담보물 소재와 처분 상대방 확인 → ②관할법원(수원 소재 담보물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재산가압류 등 보전처분 신청 → ③관할 경찰서(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에 사기죄·강제집행면탈죄 성립 여지가 있는지 검토해 고소 여부 결정 → ④필요 시 수원지방검찰청 수사 진행과 병행해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 등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순서로 대응하게 됩니다.
어느 절차든 초동 대응 속도가 회수 가능성을 좌우하므로, 정황을 인지한 즉시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도담보설정계약서와 담보목적물 명세(기계의 종류·시리얼번호 등)를 먼저 확보합니다.
등기소·관할관청 등록 여부, 처분 시점의 기계 소재와 현재 점유자를 파악합니다.
담보 설정 당시 이중담보나 허위 진술 정황, 처분이 소송·강제집행 임박 시점에 이뤄졌는지를 확인합니다.
이렇게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형사 고소가 실익이 있는 사안인지, 민사적 보전·회수 절차부터 서둘러야 하는 사안인지를 가려내면, 실제로 기계를 돌려받거나 손해를 회복할 가능성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담보로 잡아둔 기계가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형사처벌 되겠지”라는 생각에 신고부터 서두르다가 정작 필요한 보전조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담보물을 빼앗긴 채권자 입장에서는 배임죄 성립 여부에 매달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 기계가 어디에 있는지, 제3자가 선의취득할 위험은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보전조치를 서두르는 것이 실질적인 회수 가능성을 높입니다.
반대로 자금 사정이 급해 담보물을 처분한 채무자 입장에서도,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처분 경위에 따라 사기죄나 강제집행면탈죄까지 문제 될 수 있어 초기 대응 방향을 신중히 정해야 합니다.
저는 양도담보 목적물의 임의처분을 둘러싼 분쟁에서 담보물을 빼앗긴 채권자와 처분 경위를 해명해야 하는 채무자,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사실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느 절차부터 밟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바뀐 판례 때문에 오히려 대응이 더 까다로워진 지금, 초기 판단이 흔들린다면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담보로 잡힌 기계를 채무자가 팔았는데, 정말 형사처벌이 전혀 안 되나요?
A. 단순히 양도담보 목적물을 임의로 처분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입니다. 다만 담보 설정 경위나 처분 목적에 따라 사기죄, 강제집행면탈죄 등 별도의 범죄가 성립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Q. 예전에는 배임죄로 처벌됐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바뀐 건가요?
A.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 판례가 변경됐습니다. 이후 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8682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자동차와 같은 등록 동산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Q. 형사고소가 어렵다면, 채권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담보권자로서의 반환·인도청구, 그리고 신속한 가압류·점유이전금지가처분 등 보전조치가 실질적인 대응 수단이 됩니다. 제3자의 선의취득 위험이 있으므로 속도가 중요합니다.
Q. 기계를 산 제3자도 처벌되거나 책임을 지나요?
A. 제3자가 양도담보 사실을 알면서도 매수에 가담했다면 별도 책임을 검토할 여지가 있지만, 양도담보 사실을 모르고 평온·공연하게 매수했다면 선의취득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어 채권자가 반환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Q. 담보로 잡은 물건이 자동차나 건설기계면 다르게 취급되나요?
A.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임의처분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동일합니다. 다만 등록·이전등록 절차가 있는 만큼 소유권 관계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실무 절차는 세부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Q. 담보 설정 당시 이중으로 담보를 잡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면 어떻게 하나요?
A. 대출·담보 설정 당시 이중담보나 허위 사실을 숨긴 정황이 확인되면 사기죄 성립 여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담보설정계약서, 대출 상담 기록, 다른 채권자와의 담보설정 시점 등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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