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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대금 상계 요건, 하자 손해배상채권부터 상계항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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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대금 상계 요건, 하자 손해배상채권부터 상계항변까지 

김상훈 변호사

납품받은 자재에 하자가 있어 라인이 멈추고 재작업 비용까지 물었는데, 거래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물품대금 청구서부터 보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은 손해만큼 빼고 보내겠다"며 금액을 임의로 깎아 송금했다가, 몇 달 뒤 나머지 대금과 지연손해금까지 청구하는 소장을 받아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서로 돈을 주고받을 관계라면 그냥 상계하면 될 것 같지만, 상계는 마음속으로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춘 의사표시가 있어야 효력이 생깁니다. 요건 하나를 놓치면 손해배상채권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대금 미지급 책임만 먼저 떠안게 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물품대금 청구에 손해배상으로 맞설 때 갈리는 두 갈래

계속적인 거래관계에서는 한쪽이 물품대금채권을, 다른 쪽이 하자나 납기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각각 갖게 되는 일이 흔합니다. 문제는 이 둘을 실제로 맞바꿀 수 있느냐, 맞바꾼다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얼마만큼 맞바꿀 수 있느냐입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은 대개 두 갈래 중 하나에 서게 됩니다.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쪽인데 손해배상채권으로 그 지급을 막으려는 경우, 또는 대금을 받아야 하는 쪽인데 상대방이 갑자기 손해배상을 들고 나와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무엇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지가 정반대로 갈립니다. 지급을 막으려는 쪽은 자기 손해배상채권이 상계에 쓸 수 있는 채권인지부터 점검해야 하고, 받아야 하는 쪽은 상대방의 상계 주장이 요건을 갖췄는지를 깨뜨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자주 벌어지는 실수가 임의 감액 송금입니다. 상계 의사표시 없이 "손해 본 만큼 뺐다"며 일부만 보내면, 법적으로는 상계가 아니라 그냥 일부 변제로만 취급됩니다. 나머지 대금은 그대로 남아 이행지체에 빠지고, 그때부터 지연손해금이 붙습니다. 거래 정지나 신용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대금을 청구하는 쪽도 상대의 상계 주장을 "억지"라고만 보고 넘기면 곤란합니다. 상계는 요건만 갖추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채권을 소멸시키는 강력한 제도이고, 그 효과는 의사표시를 한 날이 아니라 훨씬 이전 시점으로 소급하기 때문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상계적상 요건과 상법 제69조 통지의무, 소급효와 기판력

상계의 출발점은 민법 제492조 제1항입니다. 쌍방이 서로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채무를 부담하고, 쌍방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 각 채무자는 대등액에 관하여 상계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를 상계적상이라 부르고, 상계하는 쪽의 채권을 자동채권, 상계당하는 채권을 수동채권이라 합니다. 물품대금채권과 손해배상채권은 둘 다 금전채권이므로 동종성 요건에서 걸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문제되는 것은 대립성입니다 — 채권·채무가 같은 당사자 사이에 있어야 하므로, 계열사가 입은 손해나 대표자 개인이 가진 채권으로 회사의 물품대금채무를 상계할 수는 없습니다.

변제기 요건은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이 서로 다르게 적용됩니다. 자동채권은 반드시 변제기가 도래해 있어야 합니다. 아직 변제기가 오지 않은 채권으로 상계를 허용하면 상대방의 기한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빼앗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수동채권은 변제기 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상계하는 사람이 자기 기한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민법 제153조 제2항). 실무적으로 이 비대칭은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손해배상채권은 이행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여서 성립과 동시에 이행기가 도래한 것으로 다루어지므로, 물품대금의 결제일이 아직 남아 있어도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먼저 상계할 수 있습니다.

다음 관문은 자동채권에 항변권이 붙어 있는지입니다. 항변권의 대항을 받는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상계하면, 상계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상대방이 항변권을 행사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상계는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대법원 1969. 10. 28. 선고 69다1084 판결). 다만 물품대금 사안에서는 예외 법리가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하자담보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의무와 매매대금 지급의무는 서로 동시이행관계에 놓이는데(민법 제583조, 제536조), 대법원은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더라도 서로 현실적으로 이행할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상계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정리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6. 7. 28. 선고 2004다54633 판결). 돈과 돈을 맞바꾸는 사안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에서 상계 주장이 무너지는 지점은 대부분 상계 요건 자체가 아니라 상법 제69조입니다. 상인 간의 매매에서 매수인은 목적물을 수령한 때 지체 없이 검사해야 하고, 하자나 수량 부족을 발견하면 즉시 통지를 발송해야 합니다. 이를 게을리하면 계약해제·대금감액은 물론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봉쇄됩니다.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하자라면 6개월 내에 발견해 즉시 통지해야 같은 효과가 유지됩니다. 이 규정은 상거래를 신속하게 매듭짓기 위한 것이어서, 검사와 통지를 제때 했다는 입증책임은 매수인에게 있습니다. 다만 매도인이 하자를 알고 있었던 악의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같은 조 제2항).

통지가 늦었다고 해서 손해배상 카드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15. 6. 24. 선고 2013다522 판결은 상법 제69조 제1항이 민법상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대한 특칙일 뿐이어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불완전이행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그 사건에서도 토지를 인도받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로부터 6개월이 훨씬 지난 뒤에야 토양오염 하자를 통지했지만, 하자담보책임에 기한 청구는 배척되고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인정되었습니다. 다만 구성이 바뀌면 입증의 무게도 달라집니다 — 무과실책임인 담보책임과 달리 불완전이행은 상대방의 귀책사유를 매수인 측에서 다투어야 합니다.

상계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는 국면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 고의의 불법행위 채무는 수동채권이 될 수 없습니다 — 채무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 때에는 그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민법 제496조). 피해자에게 현실로 변제하게 하고 불법행위를 억지하려는 취지입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그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는 것은 막히지 않습니다.

  • 압류·가압류가 먼저 들어오면 상계가 잘립니다 —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는 그 후에 취득한 채권으로 상계해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민법 제498조).

  • 상계금지 특약 — 당사자가 상계를 금지하는 약정을 둘 수 있으나, 그 특약으로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는 못합니다(민법 제492조 제2항). 계속거래 기본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계약서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압류가 걸린 경우의 기준은 대법원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이 정리했습니다. 압류 당시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면, 그 변제기가 압류된 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는 경우에만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거래처의 자금 사정이 나빠져 다른 채권자가 물품대금채권을 압류한 뒤에야 손해배상채권을 만들어 상계하려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채권양도 통지를 받은 뒤라면 통지를 받은 때까지 양도인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사유로만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민법 제451조 제2항), 압류·양도 여부는 상계에 착수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요건을 갖췄다면 그 효과는 의사표시를 한 날이 아니라 상계적상 시점으로 소급합니다(민법 제493조 제2항). 이때 충당 순서가 있습니다. 상계적상 시점까지 수동채권에 붙은 이자·지연손해금을 먼저 계산해 자동채권으로 그것부터 소각하고, 남은 금액으로 원본을 소각합니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물품대금 1억 원이 결제일을 넘긴 지 6개월이 된 시점에 3,000만 원의 하자 손해배상채권으로 상계적상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상계적상 시점까지의 지연손해금 — 1억 원 × 상사법정이율 연 6%(상법 제54조) × 6개월 = 300만 원

  • 자동채권 3,000만 원 중 300만 원이 먼저 지연손해금에 충당

  • 남은 2,700만 원으로 원본을 소각 → 잔존 원본 7,300만 원

  • 이후 1년간의 지연손해금도 1억 원이 아니라 7,300만 원 기준 — 연 6%로 600만 원이 아닌 438만 원

소급효는 시효 국면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도 완성 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채권자는 여전히 상계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495조). 물품대금채권은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로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고(민법 제163조 제6호), 상법 제64조의 5년 상사시효보다 짧은 규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므로 오래된 미수금 사건에서 이 조문이 실익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자동채권의 시효 완성 전에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이르렀어야 한다는 점이 요건이므로, 시효가 지난 뒤 뒤늦게 만들어 낸 채권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송에서의 상계는 일반 항변과 무게가 다릅니다. 판결이유 중의 판단에는 원칙적으로 기판력이 미치지 않지만, 상계를 주장한 청구의 성립 여부에 관한 판단은 상계하자고 대항한 액수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집니다(민사소송법 제216조 제2항). 자동채권을 나중에 별소로 이중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예외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상계항변에 쓴 손해배상채권이 그 액수만큼 소진된다는 뜻이므로, 손해배상채권 전액을 한 번에 상계항변으로 던질지 일부만 대항할지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하자 통지부터 예비적 상계항변까지 다섯 단계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 하자를 발견한 즉시 서면으로 통지 — 상법 제69조의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나머지가 의미를 갖습니다. 품목·수량·납품일·로트번호, 하자의 구체적 내용과 발견 경위, 검사 방법과 결과를 특정해 발송 시점이 남는 방식(내용증명 또는 수신확인이 되는 이메일)으로 보냅니다. 통화나 방문 협의만으로는 나중에 통지 시점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즉시 드러나지 않는 하자라면 수령일로부터 6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려 있으므로, 검사 일정 자체를 앞당겨 잡아야 합니다.

  • 손해액을 '채권'으로 만들어 둡니다 — 상계는 대등액에서만 효력이 생기므로 금액이 특정되지 않으면 상계 범위 자체가 잡히지 않습니다. 하자 부분 수리비 견적서와 세금계산서, 대체품 긴급 구매 계약서와 단가 차액 자료, 재작업 투입 인건비 산정 내역, 하위 거래처로부터 받은 클레임 통지와 감액 합의서, 생산 중단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일지를 모읍니다. 하자의 원인이 다투어질 사안이라면 폐기 전에 시료를 보존하고 공인기관 시험성적서나 증거보전 신청을 검토합니다.

  • 상계 의사표시를 정확한 형식으로 — 상계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며, 여기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이지 못합니다(민법 제493조 제1항). "협의가 되면 상계하겠다"는 식의 문구는 조건부 의사표시로 읽혀 효력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자동채권의 발생원인·금액·변제기, 수동채권으로 삼을 대금이 어느 세금계산서·어느 납품분인지, 대등액에서 상계한다는 취지를 명시해 내용증명으로 발송하고 도달을 확인합니다.

  • 상계하고 남는 대금은 제때 지급합니다 — 상계로 소멸하는 것은 대등액뿐이므로 잔액을 미루면 그 부분에서 다시 이행지체가 시작됩니다. 상계액 자체가 크게 다투어질 상황이라면 잔액을 지급하면서 상계 주장을 유보하거나, 채권자가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변제공탁을 검토합니다. 상대방 채권에 압류가 경합해 누구에게 지급해야 할지 불분명하다면 집행공탁이 안전한 선택이 됩니다.

  • 소송에서는 예비적 상계항변으로 순서를 짭니다 — 주위적으로는 하자에 따른 대금감액이나 계약 일부 해제로 대금채무 자체가 그만큼 발생하지 않았다고 다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상계를 주장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상계항변에는 기판력이 붙어 자동채권이 그만큼 소진되므로 대항 액수를 미리 정해야 하고, 상법 제69조 통지가 늦은 사안이라면 담보책임 대신 불완전이행 구성으로 옮겨 귀책사유를 함께 주장해야 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통지 시점을 놓치면 상계 카드가 먼저 사라집니다

물품대금과 손해배상채권을 맞바꾸는 문제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어차피 서로 줄 돈이 있으니 나중에 정산하면 된다"며 아무 서면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상법 제69조의 검사·통지 의무는 하자 담보책임을 묻기 위한 전제요건이고, 즉시 드러나지 않는 하자에도 수령일부터 6개월이라는 시한이 붙어 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손해가 아무리 실제로 발생했더라도 상계에 쓸 자동채권 자체가 흔들립니다.

반대로 대금을 받아야 하는 쪽이라면, 상대방의 상계 주장을 감정적으로 받아치기 전에 요건부터 하나씩 짚는 편이 빠릅니다. 통지가 제때 있었는지, 손해액에 근거 자료가 붙어 있는지, 자동채권이 정말 같은 당사자 사이의 채권인지, 이미 채권이 압류되거나 양도된 뒤는 아닌지 — 이 중 하나만 무너져도 상계 주장 전체가 힘을 잃습니다.

거래처와의 사이에서 물품대금과 손해배상이 얽혀 있다면, 지금이 검사·통지 기간 안인지부터 먼저 확인하시고, 손해액을 특정할 자료와 상계 의사표시의 형식까지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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