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소집절차나 결의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많은 분들이 "하자만 입증하면 결의취소소송에서 이긴다"고 단정하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회사 측에서 "설령 하자가 있어도 법원이 재량으로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어 당황하게 됩니다. 반대로 회사를 대리하는 입장에서는 소집통지나 결의방법에 사소한 흠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제도를 근거로 방어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해하십니다. 문제는 이 재량기각이라는 것이 아무 하자에나 적용되는 만능 방패가 아니라는 점이고, 반대로 원고 입장에서도 하자만 있으면 무조건 승소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하자가 있어도 법원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예외적 제도
주주총회 결의취소소송은 소집절차나 결의방법이 법령·정관에 위반되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또는 결의내용이 정관에 위반한 경우에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원칙적으로 이런 하자가 인정되면 법원은 결의를 취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법 제379조는 예외를 하나 두고 있습니다. 하자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결의의 내용과 회사의 현황·제반사정을 참작했을 때 그 결의를 취소하는 것이 오히려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재량으로 청구 자체를 기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재량기각이라 부릅니다.
다만 이 제도는 위법한 결의를 그대로 살려두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극히 예외적으로만 작동합니다. 결의가 법률상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고, 하자의 정도가 경미해야 하며, 취소함으로써 회사나 주주에게 실질적 이익이 없다는 사정까지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검토 대상이 됩니다. 아래에서 그 요건과 실제 소송에서의 공방 지점을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재량기각 3가지 요건과 무효·부존재확인소송과의 구별
상법 제376조는 총회의 소집절차 또는 결의방법이 법령·정관에 위반하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때, 혹은 결의내용이 정관에 위반한 때 주주·이사·감사가 결의일로부터 2월 내에 결의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2월의 제소기간은 제척기간이라 하루라도 넘기면 소 자체가 각하됩니다.
이렇게 제기된 소송에서 상법 제379조는 "결의취소의 소가 제기된 경우에 결의의 내용, 회사의 현황과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그 취소가 부적당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법원은 그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판례와 학설이 정리하는 재량기각의 요건은 대체로 세 갈래입니다.
① 결의 자체가 법률상 존재할 것 — 대법원 1978. 9. 26. 선고 78다1219 판결은 재량기각을 하려면 먼저 주주총회 결의 자체가 법률상 존재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사회 결의 없이 소집된 경우처럼 하자가 결의의 부존재 사유에 해당한다면, 애초에 취소할 "결의"가 없는 셈이어서 제379조를 적용할 여지 자체가 없습니다.
② 하자가 경미하여 결의의 결과에 영향이 없을 것 — 대법원 1993. 10. 12. 선고 92다21692 판결은, 일부 주주에게 소집통지가 누락됐더라도 상당수 주주가 출석해 만장일치로 결의했다면 그 하자는 결의를 부존재·무효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단순한 취소사유에 그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자가 있어도 그 결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뚜렷하다면 재량기각을 검토할 실익이 생깁니다.
③ 취소함으로써 회사·주주에게 실질적 이익이 없을 것 — 결의가 이미 집행되어 원상회복의 실익이 없거나, 취소해도 같은 내용의 결의가 다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법원은 회사의 현황과 제반사정을 근거로 청구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사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채 결산이 승인된 경우처럼 하자가 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사안에서는, 이를 단순히 경미하다고 보기 어려워 재량기각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세 요건을 실제 사례에 대입해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발행주식총수의 90%를 넘는 주주가 출석해 만장일치로 결의했는데, 알고 보니 지분율 1%도 안 되는 소수주주 한두 명에게 소집통지가 늦게 도착한 경우라면, 그 주주가 출석했더라도 결의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반대로 지분율 30%를 가진 주주에게 아예 통지가 가지 않았거나, 통지기간이 법정기간보다 크게 부족해 다수 주주가 준비 없이 참석한 경우라면 그 하자가 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재량기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즉 통지 누락 자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하자가 결의의 성립에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가 저울추를 움직입니다.
참고로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다29616 판결은 감자무효의 소(자본감소 무효를 다투는 소송)에서, 하자가 자본감소 결의의 효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라면 그 하자가 추후 보완되지 않더라도 법원이 제반 사정을 참작해 재량기각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의취소소송이 아니라 감자무효소송에 관한 것이지만, "하자가 결의 결과 자체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재량기각 판단의 핵심 저울이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한 가지 반드시 구분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재량기각은 결의취소의 소(상법 제376조)에만 인정되는 제도입니다. 결의내용이 법령을 위반한 경우의 결의무효확인의 소나 애초에 결의로 볼 수 없는 결의부존재확인의 소(상법 제380조), 부당결의 취소·변경의 소(상법 제381조)에는 재량기각 규정이 준용되지 않습니다. 법령을 위반한 결의는 회사의 현황이 어떻든 무효인 것이지, "현황을 참작해 무효로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즉 소송 유형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재량기각의 방어벽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원고·회사 양쪽 입장에서 준비해야 할 것
재량기각은 원고와 피고 회사 양쪽 모두에게 소송 전략의 방향을 바꾸는 변수입니다.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준비합니다.
원고(취소를 구하는 측) — 하자의 중대성을 구체적으로 입증 — 소집통지 누락이 일부 주주에 그치지 않았는지, 통지기간 부족으로 실제 의결권 행사에 지장이 있었는지, 그 하자가 없었다면 결의 결과가 달라졌을 개연성이 있는지를 구체적 정황과 함께 주장해야 합니다. 단순히 "절차가 어긋났다"는 주장만으로는 법원이 재량기각을 검토할 여지를 넓혀줄 뿐입니다.
원고 — 결의부존재 사유 해당 여부를 함께 검토 — 이사회 결의 없이 소집되었거나 소집권한 없는 자가 소집한 경우처럼 하자의 정도가 결의취소를 넘어 결의부존재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예비적으로 함께 주장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부존재확인소송에는 애초에 재량기각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고 — 취소로 얻는 실익을 구체적으로 제시 — 결의가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는 점, 취소되면 회사 운영이나 주주의 지위에 실제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취소해도 아무 실익이 없다"는 회사 측 주장을 미리 차단해야 합니다.
회사(재량기각을 구하는 측) — 하자의 경미성을 소명하는 자료 준비 — 실제 출석률과 의결권 행사 비율, 통지 누락이 있었던 주주의 지분 비중, 결의 안건에 대한 사전 설명·동의 정황 등을 정리해, 하자가 있었어도 결의 결과에 실질적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회사 — 회사 현황과 제반사정을 구체적으로 소명 — 결의가 이미 집행되어 원상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막대한 비용·혼란을 초래한다는 점, 같은 안건을 다시 결의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재무자료나 지분구조 자료로 뒷받침해 법원의 재량 판단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2월의 제소기간부터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
결의취소소송은 결의일로부터 2월이라는 제척기간이 걸려 있어, 재량기각 공방 이전에 소 제기 시점부터 늦어지면 다툴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원고 입장에서는 하자의 경중을 서둘러 판단해 부존재 주장 병행 여부를 정해야 하고, 회사 입장에서도 재량기각을 준비하려면 출석률·의결권 행사 자료를 미리 정리해두어야 시간에 쫓기지 않습니다.
결의취소소송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소송을 당한 상황이라면, 하자의 성격이 재량기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인지, 또는 오히려 결의부존재에 해당해 재량기각 자체가 문제 되지 않는 사안인지부터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소장에 담을 청구와 준비할 증거자료의 방향이 처음부터 달라집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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