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성범죄 피의자 초기 대응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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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성범죄 피의자 초기 대응 지침 

안영진 변호사



직장인 A씨는 어느 날 오후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찰입니다. 성범죄 혐의로 고소가 접수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조사 일정을 잡으셔야 합니다.”

평범했던 일상은 이 짧은 통화 한 번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A씨는 “제가 왜요? 그런 적 없는데요? 아, 잠깐만요…”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혐의를 인정하시는 건가요?”라고 묻자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답했고, 결국 별다른 설명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문제는 통화가 끝난 뒤였습니다. A씨의 당황한 태도와 모호한 답변은 수사기록에 “피의자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지 않고 동문서답함”이라는 취지로 남았습니다. 본인은 단지 놀라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지만, 수사기관은 전화에서 드러난 태도와 표현도 사건을 판단하는 자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가 쓴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에서는 경찰의 첫 연락을 사건의 초기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설명합니다. 성범죄 사건은 첫 통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조사 전에 어떤 자료를 확보했는지, 피의자신문조서를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따라 이후의 대응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경찰의 첫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실제 피의자 조사에 출석하기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경찰의 첫 전화에서는 사실관계를 설명하지 마십시오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누구나 먼저 결백을 주장하거나 무슨 사건인지 캐묻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때 즉석에서 혐의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전화로 “제가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경찰은 그 내용을 토대로 수사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가 최초 통화에서 혐의를 인정했다는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확한 고소 내용과 증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단정했다가 나중에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게 되면 진술을 번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이 사건에 관해 물어보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일정을 확인한 뒤 바로 연락드리겠다”는 정도로만 답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억울함을 설명하는 것보다 어떤 혐의로 고소되었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기억과 자료를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누가 저를 고소했나요?”, “무슨 일로 고소된 건가요?”라고 묻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전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추측하며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위 가운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을지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소 내용은 이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석 일정도 상담 없이 바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찰이 특정 날짜와 시간을 제시하더라도 “일정을 확인한 뒤 연락드리겠다”고 답하고, 조사 전에 필요한 준비를 마친 다음 일정을 조율해야 합니다.

경찰 출석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한 혐의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준비 없이 조사받으러 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2. 전화를 끊은 직후에는 시간 순서대로 기억과 증거를 정리하십시오

경찰과 통화를 마친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건 당일의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지고, 사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실제 기억과 추측이 섞이기 쉽습니다. 가능하면 통화한 당일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사건 당일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일을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18:00에 퇴근한 뒤 친구와 저녁 식사를 했고 카드 결제 내역이 남아 있다면 그 사실을 함께 기록합니다. 20:00에 고소인과 합석해 술을 마셨고 카카오톡에 “같이 한잔 할래?”라는 대화가 남아 있다면 해당 내용도 표시합니다. 22:00에 고소인과 둘만 남아 대화했고, 23:00에 함께 택시로 이동했으며, 23:30에 모텔에 도착해 로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택시 결제 내역과 CCTV, 커피값 카드 내역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순간만 떼어 놓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사건 전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이후에도 연락하거나 만났는지 등을 함께 살펴봅니다.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에 소개한 ○○○○법원 2017. X. X. 선고 2016고합XX 판결에서도 법원은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과 놀이공원과 미술관에 갔고, 딸을 데리고 피고인을 만난 적이 있으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딸에게 아이폰을 선물한 사정을 무죄 판단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보았습니다. 사건 당일의 행동뿐 아니라 사건 전후의 관계도 범행의 진위를 판단하는 자료가 된 사례입니다.

기억을 적었다면 각 내용과 연결되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야 합니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에 “집에 잘 들어갔어?”, “오늘 즐거웠어”와 같은 사건 이후의 대화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모텔 로비나 식당, 길거리 CCTV가 존재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가 먼저 팔짱을 꼈는지, 누가 먼저 손을 잡았는지처럼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영상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카드 결제 내역은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는 자료가 되고, 통화 기록은 사건 직후 누구와 얼마나 통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건 당일 또는 이후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게시되어 있다면 그 자료도 보관해야 합니다. 다만 개별 자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전체 사건 경위와 함께 판단해야 하므로, 특정 메시지나 사진 한 장만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 찾아서는 부족합니다. “상대방이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모텔로 데려간 것은 사실이다”, “상대방이 술에 취해 있었다”와 같이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정도 적어두어야 합니다. 불리한 사실을 숨긴 채 상담을 받으면 변호사도 정확한 전략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객관적 증거와 불리한 정황을 함께 검토해야 혐의를 부인할지,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할지, 합의를 시도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은 경찰 전화를 받은 직후 감정적으로 내려서는 안 됩니다.

3. 고소 내용은 정보공개청구로 정확하게 확인하십시오

경찰과의 첫 통화에서 고소 내용을 추측하기보다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해 고소장 중 혐의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 수사서류 열람·복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2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의자·피진정인, 그 변호인은 필요한 사유를 소명하고 고소장, 고발장, 진정서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다.”

통상 피의자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고소장 전문이 아니라 혐의사실 부분입니다. 고소인의 개인정보, 참고인에 관한 내용, 증거방법 등은 제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혐의사실을 확인하면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는 정보공개포털(https://www.open.go.kr)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통상 7~10일 정도가 소요되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PDF 파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사건과 관할 기관의 처리 상황에 따라 공개 범위나 처리 기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소장을 확보한 뒤에는 고소인의 주장과 자신이 작성한 타임라인을 대조해야 합니다. 날짜와 장소가 맞는지, 실제로 있었던 행동과 다르게 적힌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적인 자료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나누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이 과정을 거친 뒤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4. 피의자 조사에서는 짧고 정확하게 답하고 조서를 끝까지 확인하십시오

고소 내용을 검토하고 증거를 정리했다면 실제 피의자 조사에 대비해야 합니다. 조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묻는 말에 짧고 정확하게 답하는 것입니다.

수사관이 “그날 몇 시에 만났습니까?”라고 물었다면 기억이 명확한 경우 “7시입니다”라고 답하면 됩니다. “원래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늦었고, 그 전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와 같이 질문받지 않은 사정을 길게 설명하면 불필요한 진술이 늘어납니다.

수사관은 피의자의 진술을 조서에 기록합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앞뒤 표현이 어긋나거나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세부사항을 단정할 위험이 커집니다. 억울하다는 마음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반드시 적극적인 방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사건이 오래되었다면 일부 장면이나 대화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말하면 객관적인 자료와 충돌할 수 있고, 한 차례 거짓말이 확인된 뒤에는 다른 진술의 신빙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유리한 사실도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고소인이 먼저 만나자고 문자했다”는 사실이 있다면 그 내용만 말하면 됩니다. 이를 “고소인이 집요하게 따라다녔다”고 부풀릴 경우 다른 대화 내용이나 주변인의 진술과 어긋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조사에 출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가 동석하면 수사 과정에서 부당하거나 반복적인 질문이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고,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필요한 조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사가 끝난 뒤에는 사건의 쟁점과 증거를 정리한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해 수사기관의 판단에 필요한 내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조사가 끝났다고 바로 서명해서는 안 됩니다. 피의자신문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자신의 진술과 다르게 적힌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은 피의자가 “진술한 대로 기재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보장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아니요,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실수로 손이 스친 적은 있습니다”라고 진술했는데 조서에는 “아니요, 만지지 않았습니다”라고만 적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표현은 의미가 다릅니다. 전자는 우연한 신체 접촉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고의성을 부인하는 진술이고, 후자는 신체 접촉 자체를 전부 부인하는 진술입니다.

이 경우 조서를 열람하면서 “실수로 스친 적이 있을 뿐 고의로 만진 적은 없다”는 취지가 정확히 반영되도록 수정이나 추가 기재를 요청해야 합니다. 조서에 서명한 뒤에는 당시 기재 내용에 동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조사보다 조서 열람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5. 수사 단계에 맞는 목표를 정하고 초기 대응부터 준비하십시오

경찰 단계에서는 불송치 결정을 목표로 대응합니다. 경찰이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최초 진술의 일관성, 사건 전후의 객관적 자료, 고소인 진술과 배치되는 정황을 어떻게 정리해 제출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더라도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 재판 없이 절차가 끝날 수 있습니다.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혐의없음 처분을 목표로 다투게 되고, 혐의를 인정하면서 합의가 이루어진 사건이라면 여러 사정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는 기소유예 가능성을 검토하게 됩니다.

기소된 뒤에는 대응 목표가 다시 달라집니다. 혐의를 인정하는 사건이라면 합의, 공탁, 반성문과 같은 양형 자료를 준비해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목표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무죄를 주장한다면 고소인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 객관적 증거, 사건 전후의 정황을 세밀하게 분석해 법정에서 다투어야 합니다.

성범죄 피의자로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상황이라면 분노와 불안 때문에 당장 상대방에게 연락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 내용을 설명하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인 연락과 해명은 새로운 오해를 만들거나 수사에서 불리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제가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를 쓴 이유도 첫 연락을 받은 피의자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책에서는 “이 책이 억울하게 고소·수사를 당하여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 희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결과를 기다리는 데서 생기지 않습니다. 경찰과의 첫 통화 내용을 기록하고, 사건 당일의 타임라인을 작성하며, 삭제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고, 고소 내용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성범죄 사건은 같은 죄명으로 수사를 받더라도 만남의 경위, 당사자의 관계, 음주 정도, 사건 전후의 연락, 객관적인 자료에 따라 대응 방향이 달라집니다. 인터넷에서 본 사례나 주변 사람의 경험만으로 자신의 사건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경찰의 첫 연락을 받았다면 조사 일정부터 확정하기보다 현재 알고 있는 사실과 보유한 자료를 먼저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기 진술을 하기 전에 사건의 쟁점을 확인하고 대응 방향을 세우는 것, 그것이 불필요하게 불리한 상황에 빠지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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