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한 사안입니다).
“그냥 어깨를 주물렀을 뿐인데…”
40대 중소기업 팀장 B씨는 어느 날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직접 채용한 신입 여직원이 “팀장님에게 강제로 어깨를 주물러졌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B씨는 억울했습니다. 신입사원이 야근으로 피곤해 보여 “고생 많다”며 어깨를 두드려 준 것뿐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일하면서 성범죄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습니다. 팀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자상한 팀장님’으로 통했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검찰은 B씨를 기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피고인은 팀장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감독 관계에 있었죠?”
“네.”
“그 지위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어깨를 주물렀나요?”
“네, 하지만 그건…”
B씨는 그대로 유죄 판결을 받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변호인은 한 가지 쟁점에 집중했습니다.
“이 행위가 진정한 의미의 ‘추행’인가?”
변호인은 피해자가 평소 B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먼저 어깨를 주무르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찾아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평소 관계, 사건 전후의 맥락에 비추어 피고인의 행위를 두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추행’으로 보기 어렵다.”
무죄였습니다.
같은 신체 접촉도 상황에 따라 추행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계를 판단할 때는 두 사람의 관계와 행위가 이루어진 맥락 등이 함께 검토됩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집필한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이하 『방어 지침서』)의 내용을 토대로, 직장이나 조직 안에서 문제 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의 구성요건과 방어 논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
가. 법조문의 내용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범죄가 성립하려면 보호·감독 관계, 위계 또는 위력, 추행이라는 요소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나. 보호·감독 관계의 범위
보호·감독 관계가 일반적인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만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관계에는 정규직 상사뿐 아니라 프리랜서에게 일감을 주는 발주처 담당자나 인턴을 지도하는 실무자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고용관계에서는 사장과 직원, 아르바이트생을 감독하는 매니저, 가사도우미와 고용주 등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종교단체의 상급자와 신도, 의사와 환자처럼 업무나 고용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도 포함됩니다. 채용 면접관과 지원자도 보호·감독 관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도5646 판결은 이렇게 판시했습니다. “직장 안에서 사실상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상황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채용 절차에서 영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
정규직 관계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진로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라면 보호·감독 관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 위계와 위력
위계란 상대방을 착각에 빠뜨려 정상적인 성적 판단을 어렵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컨대 “이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건강검진의 일부입니다”라고 속인 뒤 신체에 접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힘을 뜻합니다. 반드시 물리적인 폭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사라는 지위 자체가 위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싫다고 말하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용했다면 위력 행사로 판단될 여지가 있습니다.
라. 추행의 판단 기준
모든 신체 접촉이 추행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습니다.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2005. 7. 14. 선고 2003도7107 판결)
여기서 유의할 표현은 ‘객관적으로’입니다.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추행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행위의 내용과 장소, 두 사람의 관계, 사건 전후의 사정 등을 종합해 성적 의미가 있는 행위인지 판단합니다.
2. 무죄 판결 사례
제가 『방어 지침서』에 소개한 사례를 보면 법원이 어떤 사정을 근거로 추행 여부를 판단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례 1. 업무를 설명하며 어깨띠 위치를 가리킨 행위
○○○○법원 2015. X. X. 선고 2014고단XX 판결
[사실관계]
디자인 업체 대표인 피고인은 여직원에게 어깨띠 디자인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인쇄될 위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양쪽 가슴 근처에 손을 대며 “이 정도에 하면 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는 이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피고인의 행위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1항에서 정한 ‘추행’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단의 근거]
법원은 단순히 손이 가슴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만 보지 않았습니다. 해당 행위가 실제 디자인 작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는지, 접촉 방식에 성적 의미가 있었는지 등을 함께 살폈습니다.
피고인은 어깨띠 디자인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고, 손도 가슴에 직접 닿지 않고 그 근처에서 멈췄습니다. 이런 사정이 추행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례 2. 피해자가 먼저 신체 접촉을 해왔던 경우
○○○○법원 2021. X. X. 선고 2021고정XX 판결
[사실관계]
맥주전문점을 운영하는 피고인은 아르바이트생인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주물렀습니다. 피해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CCTV에는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의 어깨를 주무르거나 피고인에게 기대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어깨동무를 했을 때 피해자가 피고인의 팔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는 장면도 확인됐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법정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배를 만지거나 기대는 등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사건 당시 전후 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위력을 사용하여 추행하였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도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판단의 근거]
법원은 행위가 개방된 펍에서 이루어진 점, 피해자가 평소 먼저 신체 접촉을 하기도 했던 점, 문제 된 행동 당시 뚜렷한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점 등을 검토했습니다.
같은 어깨동무라도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와 방식, 두 사람의 평소 관계에 따라 법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평소 먼저 신체 접촉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이후의 모든 접촉에 동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행위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상황을 따로 살펴야 합니다.
3. 직장 내 추행 사건의 방어 쟁점
가. 추행에 해당하는지 다투는 방법
가장 먼저 검토할 부분은 해당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지입니다.
행위가 업무 지시나 격려, 위로 등 비성적 목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야 합니다. 접촉 부위와 방법, 지속 시간도 중요합니다.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 성적 의미가 강한 부위가 아니라 어깨나 팔, 등이었는지, 접촉이 짧고 우발적이었는지도 판단 자료가 됩니다.
행위가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공개된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지, 피해자가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사건 이후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도 함께 검토됩니다.
어느 한 사정만으로 결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정황이 모여 행위의 성적 의미를 판단하는 근거가 됩니다.
나. 위력을 이용했는지 다투는 방법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보호·감독 관계가 있었더라도, 그 관계를 이용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했는지는 별도의 쟁점입니다.
피해자가 평소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했는지, 피고인의 지시를 거부한 사례가 있었는지, 피고인이 인사고과나 계약 갱신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 된 행동 이후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았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위력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게 정식 인사권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위력 관계가 부정되기는 어렵습니다. 피해자가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었고 실제로 거절하기도 했다는 정황이 있다면 보다 구체적인 방어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 평소 관계와 사건 전후의 맥락
앞서 살펴본 2021고정XX 판결처럼, 두 사람의 평소 관계는 추행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 나눈 카카오톡 대화, 함께 찍은 사진,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본 동료의 진술, 피해자가 먼저 신체 접촉을 한 장면이 담긴 CCTV 등이 관련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친근한 대화를 나누거나 과거에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이 특정 행위에 대한 동의를 곧바로 뜻하지는 않습니다. 증거는 문제 된 행위의 성격과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범위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라. 고소 시점과 동기
고소가 이루어진 시점과 그 전후의 사정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승진 누락이나 징계, 계약 종료, 업무상 갈등 등 다른 사건과 고소 시점이 맞물려 있다면 수사와 재판에서 고소 경위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 된 행동이 있은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 고소가 이루어졌고, 그 직전에 근무 평가나 계약 종료와 관련된 갈등이 있었다면 그 사정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 고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소 동기에 관한 주장은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될 때 제기해야 합니다.
마. 객관적 증거의 확보
방어 논리는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설득력을 얻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CCTV,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이메일, 업무 기록, 목격자 진술 등을 확보해야 합니다.
CCTV에는 사건 당시뿐 아니라 전후 두 사람의 행동이 함께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실이나 매장 CCTV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존 영상 위에 새 영상이 저장되므로 가능한 한 빨리 보존을 요청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주고받은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는 전체 대화의 흐름이 드러나도록 보관하는 편이 좋습니다. 일부 메시지만 잘라 제출하면 대화의 의미가 왜곡됐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메일과 업무 보고서도 사건 이후의 근무 상황과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사건 당시 함께 있던 동료가 있다면 연락처를 확보하고,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목격한 내용을 정리해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4. 피해야 할 대응
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행동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고소했냐”고 따지거나 “이러면 너도 손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연락은 회유나 압박, 2차 가해로 해석될 수 있고 양형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보복 협박죄 등 별도의 혐의가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고소가 접수된 뒤에는 변호인을 거쳐 의사소통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나. 증거를 없애거나 진술을 맞추는 행동
CCTV를 삭제하거나 다른 직원에게 특정한 내용으로 진술해 달라고 부탁해서는 안 됩니다. 증거인멸이나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별도의 범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증거는 원본 상태로 보존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뿐 아니라 사건 전후의 전체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성급하게 진술하는 행동
수사기관에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하면 행위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사건에서는 어떤 신체 접촉이 있었는지, 그 접촉이 추행에 해당하는지, 위력을 이용한 것인지 등이 각각 쟁점이 됩니다. 법률관계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진술은 이후 번복하기 어렵습니다.
진술 전에는 당시 상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대조한 뒤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5. 조직 문화와 업무상 위력
법원은 직장 내 모든 신체 접촉을 추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접촉이 이루어진 경위와 장소, 당사자의 관계를 함께 살핍니다. 다만 법원이 말하는 맥락이 언제나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 직원이 상사에게 먼저 어깨를 주물렀다고 해도 그 행동이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싫다”고 말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나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는 이런 권력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마련된 범죄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신체 접촉을 맥락과 관계없이 추행으로 판단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어”라고 말한 행동과 성적 의도로 특정 부위를 만진 행동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은 이 사이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합니다. 누가 먼저 접촉했는지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접촉의 부위와 방법, 지속 시간, 장소, 당사자의 반응, 평소 관계를 함께 검토합니다.
방어 과정에서도 “나는 이런 행위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추상적인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두 사람이 평소 어떤 관계였고 문제 된 행동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를 객관적인 증거로 설명해야 합니다.
6. 직장 내 추행 사건에 대응하려면
직장 내 추행 사건에는 조직 안의 권력관계와 당사자 사이의 인간관계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억울한 입장이라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구성요건과 증거를 차분히 정리해야 합니다.
앞서 상세히 말씀드렸지만, 한번 더 정리합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항은 세 가지입니다.
1. 문제 된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지 검토합니다.
2. 사건 전후의 상황과 평소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를 확보합니다.
3. 검사의 증명책임을 염두에 두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진술합니다.
성범죄 혐의는 수사 단계부터 당사자의 직장생활과 평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초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분노나 억울함을 먼저 드러내기보다 자료를 보존하고,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뒤 법률 상담을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