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나 형제 명의를 빌려, 혹은 사업상 이유로 실제 매수인인 본인 이름 대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를 넘겨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도인은 실제로 누구와 계약하고 누구에게 대금을 받았는지 처음부터 알면서도, 등기부에는 거래와 무관한 제3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거나 연락이 끊기고, 심하면 그 부동산을 몰래 팔거나 담보로 잡혀버리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매수인은 등기부상 아무 권리가 없어 보이지만, 법은 이 구조를 무효로 보고 매도인을 통해 되찾을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매매계약은 살아있고 수탁자 등기만 무효가 되는 구조
3자간 등기명의신탁은 실제 매수인(명의신탁자)이 매도인과 직접 매매계약을 맺고 대금도 치르지만, 등기만 자신이 아닌 제3자(명의수탁자) 이름으로 넘겨받는 구조를 말합니다. 매도인이 처음부터 실제 매수인이 누구인지, 등기를 왜 다른 사람 앞으로 하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매도인이 실제 매수인의 존재를 모르는 계약명의신탁과 구별됩니다.
이 구조에서 헷갈리기 쉬운 지점은 매매계약 자체와 등기의 효력이 서로 다르게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매도인과 신탁자 사이의 매매계약은 그대로 유효하지만,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라 수탁자 앞으로 넘어간 등기는 무효입니다. 결과적으로 등기부에는 수탁자 이름이 올라가 있어도, 법적으로 그 부동산의 소유권은 여전히 매도인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신탁자가 부동산을 되찾으려면 수탁자를 직접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는 애초에 유효한 법률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매도인이 가진 권리, 즉 매도인이 수탁자를 상대로 한 등기말소청구권을 신탁자가 대신 행사하는 우회 경로를 거쳐야 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명의신탁약정 무효와 채권자대위권으로 잇는 두 단계 권리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항은 명의신탁약정을 무효로 정하고, 제2항 본문은 그 약정에 따라 이루어진 등기로 인한 물권변동도 무효로 정합니다. 다만 제2항 단서는 물권을 취득하려는 계약의 상대방(매도인)이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는 등기의 효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데, 이는 매도인이 실제 매수인을 모르는 계약명의신탁에 적용되는 조항입니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는 매도인이 애초에 신탁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 단서가 적용되지 않고, 수탁자 앞 등기는 원칙대로 무효가 됩니다.
등기가 무효라는 것은 소유권이 처음부터 수탁자에게 넘어간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매도인은 신탁자와 맺은 매매계약에 따라 여전히 신탁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를 부담하고, 동시에 수탁자에 대해서는 원인 없이 마쳐진 등기의 말소를 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문제는 매도인이 이 말소청구권을 스스로 행사해 줄 이유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 이미 대금을 다 받은 거래라 나서서 소송까지 할 유인이 없고, 심한 경우 세월이 흘러 매도인의 소재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신탁자가 쓰는 것이 민법 제404조의 채권자대위권입니다. 신탁자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피보전채권으로 삼아, 매도인이 수탁자에게 가지는 등기말소청구권을 매도인을 대신해 직접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대위권 행사에는 매도인의 무자력이 요구되지 않고, 매도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에도 대위권 행사 자체는 가능합니다. 실무에서는 수탁자를 상대로 "매도인을 대위하여" 등기말소 또는 진정명의회복을 구하는 청구와, 매도인을 상대로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청구를 하나의 소송에 함께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탁자가 이미 부동산을 인도받아 점유하며 쓰고 있다면 시효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수인이 목적물을 인도받아 점유하는 동안에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법리는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신탁자가 계속 점유해 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청구권 자체가 시효로 소멸하지는 않습니다(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6647 판결). 다만 점유하고 있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므로, 점유 여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수탁자가 이미 부동산을 제3자에게 팔아넘기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해 버린 경우가 가장 골치 아픈 상황입니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은 명의신탁약정과 등기의 무효를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는데, 여기서 제3자란 수탁자가 등기명의자임을 기초로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사람을 말합니다. 수탁자로부터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근저당권을 설정받은 사람이 이에 해당하면 그 취득은 그대로 유효하게 되고, 매도인이 신탁자에게 소유권을 넘겨줄 의무는 이행불능이 됩니다. 이 경우 신탁자는 부동산 자체를 되찾을 수는 없지만, 수탁자가 처분이나 담보 설정으로 얻은 이익(매매대금이나 피담보채무액 상당)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고 수탁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18다284233 전원합의체 판결).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아파트를 신탁자가 매도인과 계약하고 대금을 전부 치른 뒤 형님 명의로 등기를 넘겨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후 형님이 이 아파트에 5천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버렸다면, 신탁자는 매도인을 대위해 형님 명의 등기 말소와 매도인으로부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되, 근저당권이 남은 채로 소유권을 돌려받게 되는 만큼 형님을 상대로 5천만 원의 부당이득반환도 함께 청구해야 손해를 온전히 메울 수 있습니다.
수탁자의 임의처분을 형사고소로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법원은 2016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해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변경했습니다 —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 형사법이 보호할 신임관계 자체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다만 신탁자의 등기청구권 침해를 알면서도 처분한 사정이 인정되면 제3자 채권침해를 이유로 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은 별도로 물을 수 있습니다. 결국 형사 처벌에 기대기보다, 수탁자가 처분하기 전에 신속하게 민사상 조치를 취하는 쪽이 훨씬 확실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대위소송 제기부터 처분 전 가압류까지 실무 순서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 사건에서는 다음 순서로 대응을 진행합니다.
등기부등본과 매매 관련 자료부터 확보 — 수탁자 명의 등기가 정확히 언제 어떤 원인으로 마쳐졌는지, 매도인과의 매매계약서·대금 지급 내역·중개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지부터 정리합니다. 매도인이 신탁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 즉 계약명의신탁이 아니라 3자간 등기명의신탁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가 소송의 출발점입니다.
처분 우려가 있으면 가압류·처분금지가처분부터 — 수탁자가 아직 부동산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미 매각을 준비 중이거나 관계가 틀어진 상태라면 소송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본안소송 제기 전이라도 수탁자 명의 부동산에 처분금지가처분을 걸어 두어야 판결을 받기 전에 제3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매도인을 대위해 수탁자에게 등기말소, 매도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함께 청구 — 매도인과 수탁자를 공동피고로 삼아, 매도인을 대위하여 수탁자 명의 등기의 말소(또는 진정명의회복)를 구하는 청구와, 매도인을 상대로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청구를 하나의 소송에 함께 제기합니다. 매도인 소재가 불명확하면 공시송달 등 절차를 병행합니다.
이미 처분됐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로 전환 — 수탁자가 이미 제3자에게 팔았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해 소유권 회복이 불가능해졌다면, 청구취지를 수탁자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바꿔 처분대금이나 피담보채무액 상당을 돌려받는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점유 상태를 기록으로 남겨두기 — 신탁자가 부동산을 실제로 점유·사용해 왔다면 소멸시효 문제에서 유리하므로, 점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공과금 납부 내역, 실거주 증빙 등)를 함께 정리해 둡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수탁자가 움직이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이유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는 이런 절차가 굳이 필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관계가 틀어지거나 수탁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순간, 신탁부동산은 가장 먼저 처분되거나 담보로 잡히는 자산이 되기 쉽습니다. 일단 제3자에게 넘어가면 되찾을 방법이 크게 줄어드는 만큼, 등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지금이 가장 유리한 시점입니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으로 실제 소유권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도인과 수탁자 양쪽을 상대로 한 청구를 어떻게 구성할지, 처분 위험은 없는지부터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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