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소개한 고양시 주상복합 사건의 후반전입니다. 상가 관리단이 낸 방해금지가처분은 1심에서 전부 기각됐습니다. 기존 관리단은 건물 전체의 당연설립 관리단으로 인정받았고, 정작 상가 관리단 자신은 규약의 허점 탓에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했으니까요. 보통은 여기서 접습니다. 그런데 상가 측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항고심 진행 중에 규약을 전부 개정하다
항고심이 진행 중이던 2025년 6월, 상가 구분소유자들은 관리단집회를 다시 열어 규약을 전부 개정했습니다. 1심에서 지적당한 흠, 즉 관리대상이 불분명하고 건물 전체 공용부분이 뒤섞여 있던 문제를 정면으로 손봤습니다. 관리대상물을 상가와 그 부속시설로 명확히 한정하고 도면까지 붙였죠. 가처분 사건은 결정 시점을 기준으로 요건을 판단하기 때문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의 보완도 유효하게 반영됩니다. 이 한 수가 승부를 갈랐습니다.
전기의 흐름이 증거가 되다
항고심의 또 다른 백미는 계쟁 공간의 성격을 가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공간이 건물 전체의 공용부분인지, 일부만의 공용부분인지는 결국 건물 구조에 따른 객관적 용도로 정해집니다. 법원은 도면과 사용승인 서류를 펼쳐놓고 아주 기술적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3층의 EPS실은 상가 부분에만 전기를 공급하고 그 사용량을 계량하며, 아파트 세대의 전기는 5층에 있는 별도 EPS실을 통해 공급된다는 것. 지하 2층의 계쟁 주차장도 설계도서상 상가에 할당된 주차구획으로 따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 전기 배선의 계통도와 주차 할당표가 법정에서 결정적 증거가 된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공간들은 상가 구분소유자만의 일부공용부분으로 인정됐습니다.
이기되, 전부 이기지는 못했다
자격을 갖춘 상가 관리단, 그리고 상가만의 공용부분. 두 조각이 맞춰지자 결론이 바뀌었습니다. 법원은 기존 관리단이 EPS실에 자물쇠를 채우고 주차장에 분리수거장을 설치해 관리를 방해해 온 이상, 방해금지를 명할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이 있다며 1심을 취소하고 방해금지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균형이 하나 있습니다. 상가 측이 함께 구한 "계쟁부분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기존 관리단도 여전히 건물 전체의 관리단이므로, 전체 관리에 필요한 범위에서는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한 건물 안에서 전체 관리단과 일부공용부분 관리단이 공존할 때, 두 권한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나눠 갖는다는 것. 향후 비슷한 분쟁에서 청구취지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이기도 합니다. "방해하지 말라"는 통하지만 "쓰지 말라"는 과하다는 겁니다.
이 역전극이 말해주는 것
집합건물 관리권 분쟁은 감정 싸움처럼 보여도 본질은 서류 싸움입니다. 규약의 문구 하나, 설비 계통도 한 장이 억대 관리비의 향방을 가릅니다. 그리고 1심의 패배가 끝이 아닙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졌는지를 정확히 읽고 절차 중에 보완할 수 있다면, 같은 법원 시스템 안에서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상가 구분소유자들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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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 변호사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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