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정리된 회계장부나 전표가 남아 있지 않은데도, 어느 날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부가 없으니 입증이 안 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수사와 재판은 오히려 계좌 거래내역을 한 건씩 따라가며 돈의 흐름을 다시 짜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반대로 자금을 관리하던 입장에서 억울하게 횡령으로 몰린 경우에도, 계좌에 찍힌 흐름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장부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계좌에 남은 숫자와 그 사용처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장부가 없어도 계좌 흐름으로 재구성되는 횡령, 무죄로 직결되지 않는 이유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자기 것처럼 써버리는 범죄입니다. 회사 돈을 관리하던 사람이 그 돈을 개인 용도로 빼돌린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장부나 회계자료가 없으면 무죄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형사 실무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은 회계장부가 부실하거나 아예 없더라도 금융계좌추적을 통해 자금의 입출금 시점, 상대방, 금액을 그대로 확보합니다. 계좌에는 언제 얼마가 누구에게 나갔는지가 고스란히 찍혀 있고, 이 기록만으로도 "회사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다시 개인 지출로" 이어지는 흐름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장부가 없다는 사정은 "그 지출이 회사를 위한 정당한 것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는 뜻이 되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유형의 사건은 두 축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계좌추적으로 확보된 거래내역이 적법한 절차로 수집되었는지, 다른 하나는 그 돈의 사용처를 두고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는지입니다. 이 두 지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장부가 없으니 괜찮다"고 방심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횡령죄 성립요건과 불법영득의사, 계좌추적을 둘러싼 입증과 증거능력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합니다(형법 제355조 제1항,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 회사 경리·대표·자금담당처럼 업무상 지위에서 보관하던 돈을 유용하면 업무상횡령죄가 되어 형이 무거워집니다(형법 제356조,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금액이 커지면 특별법이 겹칩니다. 빼돌린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됩니다(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식의 인출을 여러 번 반복했다면 이는 하나의 죄로 묶여(포괄일죄) 개별 금액이 아니라 합산액으로 판단됩니다. 한 번에 5억을 빼돌리지 않았더라도, 수십 차례 나눠 인출한 합계가 5억을 넘으면 특경법이 적용되어 집행유예 가능성이 크게 좁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들의 진짜 승부처는 불법영득의사입니다. 불법영득의사란 보관자가 위탁의 취지에 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권한 없이 그 재물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처분하는 의사를 말합니다. 이를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거로 증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돈을 인출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장부 없이도 유죄"라는 말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판례는, 회사 자금을 인출·사용한 사람이 그 사용처·목적·경위에 관하여 납득할 만한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하고 증빙자료도 제출하지 못하며,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정황까지 있다면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사용처를 조리 있게 설명하고 충분한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횡령으로 볼 수 없습니다. 즉 계좌추적으로 "회사 돈이 나갔다"는 흐름이 드러나면, 그 지출이 회사를 위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할 장부·전표·계약서를 내놓는 일이 사실상 피고인에게 넘어옵니다. 장부가 없다는 사정이 무죄의 근거가 아니라 소명 실패의 원인이 되는 구조입니다. 참고로 빼돌린 돈을 나중에 반환하거나 변제했더라도 불법영득의사 자체는 그대로 인정되며, 이는 양형에서 참작될 사정일 뿐입니다.
계좌 거래내역은 어떻게 확보될까요. 금융거래정보는 원칙적으로 명의인의 동의 없이 제공될 수 없지만(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 수사기관은 법원으로부터 금융계좌추적용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아 은행에서 거래내역을 넘겨받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자료로 입출금 시점과 상대방을 특정해 자금 흐름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수집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거래자료를 받기 전에 금융기관에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위법한 집행이고, 그렇게 얻은 거래내역은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금융실명법 제4조 제2항이 정한 방식대로 영장 사본을 첨부해 정보제공을 요구하고 그 자료가 영장의 집행 대상·범위에 포함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1도11170 판결). 계좌추적 자료가 사건의 핵심 증거인 만큼, 그 수집 절차의 적법성을 따지는 것이 방어의 중요한 축이 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사용처 소명부터 영장 적법성·증거능력 검토까지 다섯 단계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자금 사용처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하고 소명자료부터 확보 — 계좌추적은 "돈이 나갔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그 돈이 어디에 왜 쓰였는지는 별개입니다. 인출·이체된 금액마다 거래처 지급, 접대비, 대여금 정산 등 회사를 위한 지출이었음을 뒷받침할 세금계산서·계약서·영수증·품의서를 시점별로 맞춰 두어야 합니다. 이 소명이 불법영득의사를 다투는 가장 직접적인 무기입니다.
회사 지출과 개인 유용을 명확히 구분 — 회사 자금과 개인 자금이 뒤섞여 있으면 전체가 횡령으로 몰릴 위험이 큽니다. 계좌 거래내역을 회사 회계와 하나씩 대사(對査)해, 정당한 경비 지출과 다툼이 되는 부분을 분리하고 다툼 부분에만 대응을 집중해야 합니다. 뒤섞인 자금을 방치하면 소명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계좌추적 자료의 수집 절차와 증거능력 검토 — 금융계좌추적용 영장이 어떤 계좌·기간·범위로 발부됐는지, 영장 원본 제시 등 집행 절차가 적법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영장 범위를 벗어난 계좌나 절차를 어겨 수집된 내역이라면 위법수집증거 배제를 주장할 수 있고, 핵심 증거가 빠지면 검사의 입증 구조 자체가 흔들립니다.
불법영득의사를 정면으로 다투기 — 회사를 위한 지출, 이자·변제기를 정한 정당한 대여, 사후 정산이 예정된 가지급금 등 인출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음을 구체적 근거로 제시합니다. 다만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를 위한 용도가 아닌 곳에 거액을 인출·사용한 정황이 드러나면 불리해지므로, 절차와 용도를 함께 소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사 초기 진술 관리와 양형 준비의 병행 — 조사 초기의 진술은 이후 번복이 어렵고 불법영득의사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사실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임의로 진술하면 오히려 정황증거가 됩니다. 방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반환·변제와 피해 회복을 별도로 진행해 양형을 준비하되, 이는 유무죄 다툼과 구분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계좌 기록은 사라지지 않으니 소명은 초기에 준비해야 하는 이유
횡령 사건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장부가 없으니 괜찮겠지"라며 손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계좌 기록은 남아 있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흐름을 스스로 설명해야 할 부담은 오롯이 본인에게 돌아옵니다. 소명자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으기 어려워지고, 초기 진술 한마디가 뒤에 판단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회사 자금 사용을 두고 횡령이 문제되고 있다면, 계좌 흐름과 그 사용처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하시고, 증거능력과 불법영득의사까지 함께 검토한 대응 순서를 서둘러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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