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가 지시한 대로 서류를 만들고 자금을 집행했을 뿐인데, 어느 날 업무상배임 피의자로 소환 통보를 받는 재무담당 임원이 적지 않습니다. 실물 없는 거래, 이른바 가공거래는 회사 장부에는 매출이나 비용으로 남지만 법의 눈에는 회사 재산을 실체 없는 명목으로 유출하는 임무위배 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항변이 법정에서 생각만큼 통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재무담당 임원이 가공거래에 관여했을 때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는 구조, 대표 지시가 면책 사유가 되지 못하는 이유, 처벌 수위와 다툴 수 있는 지점을 차례로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가공거래와 업무상배임 — 재무담당 임원이 처벌 주체가 되는 구조
가공거래란 실물 재화나 용역의 공급이 없는데도 서류상으로만 매출·매입을 만들거나, 실체 없는 용역대금·선급금 명목으로 회사 자금을 외부로 내보내는 거래를 말합니다. 매출을 부풀려 실적을 좋게 보이려는 목적, 비자금을 조성하려는 목적, 대표의 개인 회사나 특수관계 법인을 지원하려는 목적 등 동기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회사 자금이 대가 없는 명목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회계 문제가 아니라 형사 문제가 시작됩니다. 예컨대 거래처와 짜고 실체 없는 컨설팅 계약서를 만들어 대금을 송금한 뒤 일부를 되돌려받아 비자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이 전형적인데, 송금 시점에 이미 회사에는 대가 없는 자금 유출이라는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고, 이를 업무로 처리하는 사람에게는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되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이 무거워집니다. 회사 자금의 관리와 집행을 맡은 재무담당 임원은 회사라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전형적인 주체입니다. 나아가 대법원 1999. 7. 23. 선고 99도1911 판결은 배임죄의 사무처리자에 고유의 권한으로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처리를 직접·간접으로 보조하는 사람까지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결재라인에서 서류를 만들고 자금을 집행한 실무 임원이 "나는 주체가 아니다"라고 다투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가공거래는 장부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재산을 실체 없는 명목으로 유출하는 임무위배 행위로 평가된다 — 자금을 집행한 재무담당 임원은 그 사무처리자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표 지시를 따랐다는 항변 — 기대가능성을 보는 법원의 시각
이 유형의 사건에서 가장 흔한 항변은 "거부할 수 없는 지시였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의 문제인데, 법원의 태도는 명확합니다. 대법원 1999. 7. 23. 선고 99도1911 판결은 직장의 상사가 범법행위를 하는 데 가담한 부하가 직무상 지휘·복종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범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을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그 사건에서는 대표이사 등 상급자의 지시와 결재를 받아 사실상 기계적으로 업무를 집행한 간부도 배임의 공범 책임을 벗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이유는 위법한 지시에는 애초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판례는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것이라면 배임행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무담당 임원에게는 이 법리가 한층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자금의 흐름과 거래의 실체를 가장 잘 아는 위치, 즉 회사 재산을 지켜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시의 위법성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되기 쉬운 것입니다.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로 면책되는 길도 사실상 막혀 있습니다. 이 조항은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을 요구하므로, 인사상 불이익이나 해고 압박 정도로는 요건을 채우지 못합니다. 다만 지시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그 강도와 반복성,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가담 정도와 양형 판단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대표의 지시는 범죄 성립을 막는 벽이 아니라, 가담 경위로서 양형에서 고려되는 사정에 가깝다.
개인적 이득이 없어도 성립한다 — 배임의 고의와 경영판단의 한계
"나는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는 항변도 결론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행위자가 스스로 이익을 취득한 경우뿐 아니라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경우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유출된 자금이 대표 개인이나 거래상대방 회사로 흘러갔더라도,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회사에 손해가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배임죄는 성립합니다. 그리고 이 인식은 확정적일 필요가 없고 미필적 인식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경영판단의 원칙에 기대는 방어도 이 유형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은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하여 가능한 범위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그 예측이 빗나가 회사에 손해가 생겼더라도 배임의 고의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이 보호하는 것은 실체 있는 거래에 대한 판단 착오입니다. 처음부터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가공거래는 판단의 대상이 되는 거래 자체가 없으므로, 위험을 감수한 경영상 결단이었다는 항변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실체 있는 거래의 판단 착오를 보호할 뿐, 처음부터 실물이 없는 가공거래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다.
이득액이 가르는 처벌 수위 — 특정경제범죄법의 가중 구조
기본 법정형은 업무상배임죄의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지만, 가공거래는 건당 금액이 크고 일정 기간 반복되는 특성이 있어 실제 사건에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득액을 기준으로 법정형이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이득액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이득액 50억원 이상 —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이 병과될 수 있음.
실무에서 특히 주의할 점은 합산입니다.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아래 반복된 가공거래는 하나의 죄로 묶여 이득액이 합산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건별로는 수천만 원 규모라도 수년간 누적되면 5억원, 나아가 50억원의 문턱을 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예컨대 실체 없는 경영자문 명목으로 매월 3,000만원씩 3년간 지급했다면 합계는 10억 8,000만원이 되어, 건별로 보면 벌금형도 가능해 보이던 사안이 법정형 하한 3년의 특정경제범죄법 사건으로 바뀝니다. 법정형 하한이 3년 이상인 구간부터는 정상참작감경 없이는 집행유예 요건인 3년 이하의 선고형을 맞추기 어려워, 이득액이 어느 구간으로 산정되느냐가 사실상 실형과 집행유예의 갈림길이 됩니다.
배임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 — 허위 세금계산서와 파생 혐의
가공거래는 대부분 세금계산서를 수반하기 때문에 배임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지 않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발급받으면 조세범 처벌법 제10조 제3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공급가액에 부가가치세 세율을 적용해 계산한 세액의 3배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공급가액 합계가 커지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의2가 적용되어 30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1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되고 벌금까지 병과됩니다.
파생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공 매출로 재무제표가 왜곡되면 분식회계로 외부감사법 위반이 문제되고, 유출된 자금이 대표 개인에게 귀속된 정황이 드러나면 업무상횡령 구도로 재구성되며, 가공 매입으로 부가가치세를 환급받거나 법인세를 줄였다면 조세포탈까지 얹힐 수 있습니다. 어느 죄명으로 사건이 구성되는지에 따라 수사의 범위와 처벌 수위가 함께 달라지므로, 초기 단계에서 혐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수취 — 조세범 처벌법 제10조 제3항.
공급가액 합계 30억원 이상 — 특정범죄가중법 제8조의2로 가중.
유출 자금의 대표 개인 귀속 — 업무상횡령 구도로 재구성 가능.
재무제표 왜곡 — 분식회계로 외부감사법 위반 문제.
공동정범과 방조범의 갈림길 — 가담 정도를 판단하는 요소
같은 가공거래에 관여했더라도 죄책의 무게는 같지 않습니다. 거래 구조를 설계하고 주도했다면 공동정범으로, 타인의 범행을 알면서 실무적으로 도운 정도라면 방조범으로 평가되어 형이 정범보다 감경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갈림길에서 몇 가지 요소를 집중적으로 봅니다. 유출된 이익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됐는지, 거래의 상대방·금액·명목을 누가 정했는지, 반대 의견이나 우려를 표시한 기록이 있는지, 가담한 기간과 횟수, 그리고 결재 권한의 범위입니다.
이익의 귀속 — 자금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흘러갔는가.
설계 주체 — 거래 상대방·금액·명목을 누가 정했는가.
거부·이의의 흔적 — 반대 의견이나 우려를 남긴 기록이 있는가.
가담 태양 — 기간·횟수·결재 권한의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가.
실무적으로는 지시의 존재를 보여주는 이메일·메신저·결재 문서·회의록이 핵심 자료입니다. 이런 자료가 기대가능성 자체를 부정해 무죄로 이끌기는 어렵지만, 종속적 지위에서 지시에 따라 가담했다는 경위를 입증해 공범 구조에서의 위치와 양형을 다투는 토대가 됩니다. 반대로 첫 조사에서 지시 관계와 본인의 인식 시점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진술하면 주도적 가담자로 평가될 위험이 커지고, 한번 어긋난 진술은 재판 단계까지 따라다닙니다.
다툴 수 있는 지점 — 임무위배성·고의·이득액 산정
가공거래로 의심받는다고 해서 모두 배임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축은 거래의 실체입니다. 실물 흐름이 일부라도 존재했는지, 선급금이나 용역의 실질이 있었는지에 따라 애초에 임무위배 행위인지 자체가 달라집니다. 순환거래나 선지급 구조처럼 외형상 가공거래와 닮았지만 사업상 실질이 있는 거래라면 그 경계를 다투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입니다. 둘째 축은 고의입니다. 거래가 정상 거래로 위장되어 있어 재무담당 임원이 가공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고의가 부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미필적 인식으로 족하다는 것이 판례이므로, "알 수 있었던 정황"이 얼마나 있었는지가 실제 공방의 중심이 됩니다.
셋째 축은 손해와 이득액의 산정입니다. 배임죄의 손해에는 현실적인 손해뿐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까지 포함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라, 자금이 나중에 회수됐다는 사정만으로 무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회수·담보·반환 경위는 이득액 평가와 양형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특히 이득액이 5억원·50억원의 경계선 부근이라면 산정 방식을 다투는 실익이 큽니다. 특정경제범죄법 적용 여부, 즉 법정형의 하한 자체가 여기서 갈리기 때문입니다.
가공거래 배임 사건의 승부처는 대체로 거래의 실체와 이득액 산정에 있다 — 죄명과 법정형이 이 두 지점에서 갈린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표 지시대로 했고 개인적으로 챙긴 돈이 전혀 없어도 처벌되나요?
A. 배임죄는 제3자로 하여금 이익을 취득하게 한 경우에도 성립하므로, 유출된 자금이 대표나 거래상대방에게 갔더라도 임무위배와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처벌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이득이 없었다는 사정은 범죄 성립을 막는 사유라기보다 가담 경위와 양형에서 고려되는 사정입니다.
Q. 지시를 거부하면 해고될 상황이었는데도 면책이 안 되나요?
A.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을 요구하므로, 인사상 불이익이나 해고 압박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판례도 지휘·복종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기대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그러한 사정은 양형에서 의미 있게 참작될 수 있습니다.
Q. 대표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각서를 써줬다면 방어가 되나요?
A. 형사책임은 각서나 내부 합의로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문서는 관여자들이 위법성을 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정황으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시의 존재와 종속적 지위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담 정도를 다투는 데 활용될 여지는 있습니다.
Q. 가공거래 금액이 크면 처벌이 얼마나 무거워지나요?
A.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법정형이 올라갑니다. 반복된 거래는 합산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문턱을 넘기 쉬우므로, 이득액 산정을 다투는 것이 방어의 핵심이 됩니다.
Q. 회사가 나중에 자금을 전부 회수했다면 배임이 안 되나요?
A. 판례는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만으로도 손해를 인정하므로, 사후에 회수됐다는 사정만으로 범죄 성립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수와 변제의 경위는 이득액 평가와 양형에서 실질적으로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Q. 수사 통보를 받았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A. 첫 조사 전에 지시·결재·메신저 기록 등 가담 경위를 보여주는 자료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거래의 실체와 본인이 가공성을 인식한 시점을 명확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 진술이 공범 구조에서의 지위를 사실상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사에 응하기 전에 방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안전합니다.
맺음말
대표의 지시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가담 경위일 뿐이라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가공거래는 업무상배임을 중심으로 허위 세금계산서, 경우에 따라 횡령과 조세포탈까지 겹겹이 붙는 구조이고, 이득액에 따라 법정형이 계단식으로 올라갑니다. 결국 다툴 수 있는 지점은 거래의 실체, 가공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득액 산정이며, 이 세 축을 초기에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사건의 방향을 정합니다.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재무 담당자일수록 평소 결재와 이의 제기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수원·경기남부의 중소·중견기업처럼 대표 한 사람의 결정이 자금 집행 전반을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재무 임원이 이런 갈림길에 서는 일이 드물지 않으므로, 수사 단계에 이르기 전이라도 거래 구조에 문제 소지가 보인다면 미리 법률 검토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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