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통해 송금해도 불법 외환업무일까?
가상자산 재정거래(차익거래) 사건 상담에서 가장 강력해 보이는 항변이 있습니다. "환치기처럼 은행 밖에서 몰래 주고받은 게 아니다. 등록된 외국환은행을 통해 정식으로 송금했다. 그런데 왜 무등록 외국환업무인가?"
실제로 이 사건의 1심과 항소심도 그 논리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등록된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을 통해 외국환업무를 한 이상 무등록으로 보기 어렵다"고요.
그런데 대법원이 뒤집었습니다. 은행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협 변호사의 이력
[학력]
경찰대학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건설환경공학부(교통공학 전공)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경력]
법무법인(유) 광장
법무법인(유) 지평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경찰대학 교무과 경위
법률사무소 신임 대표변호사
경찰청 소송대리인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 법률지원 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처벌의 취지부터 보면 답이 보입니다
대법원은 무등록 외국환업무를 처벌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외국환업무취급기관 등이 외국환업무를 독점적으로 취급하게 함으로써,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적법하게 이루어지도록 관리·감독하여 외국환거래법령의 규범력과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것.
핵심은 '자금 흐름의 모니터링'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외국 간의 지급·추심 및 수령'(제3조 제1항 제16호 (나)목)은 법 제정 이래 지금까지 사실상 외국환은행의 독점 영역입니다.
기준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기능'
그래서 대법원이 제시한 잣대는 이렇습니다.
등록 없이 (나)목 외국환업무를 업으로 했는지는, ① 행위의 경위와 목적 ② 규모와 횟수 ③ 기간 ④ 영업성 등을 종합해, 외국환은행이 취급하는 (나)목 업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계속·반복적으로 수행했는지로 판단한다.
방점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기능'입니다. 송금 수단이 무엇이었나가 아니라, 그가 한 역할이 은행의 외환송금과 같았나를 봅니다.
실제 사건 구조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국내외 거래소 시세차)을 노린 재정거래였습니다.
다수 전주(錢主)로부터 자금 집금 →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모음 → 수입대금인 것처럼 거짓 증빙을 만들어 은행에 제출 → 해외 수취업체 계좌로 외화 송금 → 해외 거래소에서 코인 매수 → 국내 거래소로 옮겨 매도 → 차익 정산 후 수수료 수령
대법원이 유죄 방향으로 본 근거는 넷입니다.
첫째, 불특정 다수 전주의 이익을 위해 대가를 받고 계속 반복했습니다. 피고인별로 수십 회에서 수백 회, 합계 983억 원에서 2조 원이 넘는 송금에 관여하고 송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챙겼습니다. 이 규모면 전주들은 불특정 다수로 볼 여지가 큽니다.
둘째, 은행의 외환송금과 실질적으로 같은 기능이었습니다. 전주에게서 외국에서 쓸 목적의 자금을 받아 은행을 통해 해외 계좌로 입금되게 한 것은, 다른 은행을 매개로 외국은행에 지급지시를 전해 수취인에게 외화를 지급하게 하는 외국환은행의 외환송금과 실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셋째, 수수료에 '규제 회피의 대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결정적입니다. 당시 은행들은 가상자산 매수 목적 외환송금을 제한하고 있었고, 2021. 3. 25.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는 신규 거래 거절·기존 거래 종료 의무가 생겼습니다. 즉 정상적 방법으로는 대규모 송금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했죠. 그렇다면 규제 회피에 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었고, 수수료엔 규제를 회피해 송금 용역을 제공한 대가가 포함돼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넷째, 은행을 통했어도 위험은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모아 외국으로 송금하는 일을 반복하는 자는 규제 회피 통로로 쓰일 위험이 크고, 이는 실제 송금이 외국환은행을 통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은 위계로 은행이 규제회피의 매개체가 되어 그 위험이 현실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정리하면, 은행 통과는 방패가 아닙니다. 거짓 서류로 은행을 속여 통과했다면, 오히려 은행이 감시망 역할을 못 하게 만든 것이니 처벌 취지에 정면으로 반합니다.
나도 가상자산사업자일까? 갈림길은 '누구의 이익인가'
두 번째 쟁점입니다. 거래소를 열심히 쓰는 개인 투자자도 신고 대상일까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대법원이 선을 명확히 그었습니다.
자기 계산으로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거래소를 통해서만 매매·교환을 반복하는 일반 이용자 → 특별한 사정 없으면 해당 안 됨
불특정 다수인 고객·이용자의 편익을 위하여 가상자산거래를 하고 그 대가를 받는 행위를 계속·반복하는 자 → 원칙적으로 해당함
판단은 개정 취지(자금세탁·공중협박자금조달 방지 체계 편입)에 더해 목적·종류·규모·횟수·기간·양태를 종합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합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불특정 다수 전주들의 편익을 위해 대행하여 매매·이전하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반복했으므로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갈림길은 '얼마나 많이 거래했나'가 아니라 '누구의 이익을 위해, 대가를 받고 했나'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파기·환송이지 유죄 확정이 아닙니다. 환송심이 이 법리에 따라 다시 판단합니다.
재정거래 자체가 범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타인 자금을 모아 ▲거짓 증빙으로 은행을 속여 ▲대가를 받고 ▲대규모로 반복한 구조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원칙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가 아닙니다.
소액·소수 횟수·자기 자금이었다면 영업성·계속반복성이 부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거짓 증빙으로 은행을 속이면 업무방해(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 벌금)까지 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은행으로 정식 송금했는데도 무등록 외환업무인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은행의 외환송금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계속·반복했다면 경로가 은행이었다는 사정만으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Q.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를 하면 처벌되나요? 차익거래 자체는 범죄가 아닙니다. 타인 자금을 모아 거짓 증빙으로 송금하고 대가를 받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Q. 개인 투자자도 FIU 신고를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자기 계산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일반 이용자는 원칙적으로 해당하지 않습니다.
Q. 어떤 경우에 가상자산사업자가 되나요? 불특정 다수의 편익을 위해 거래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를 계속·반복하면 원칙적으로 해당합니다.
Q. 유죄가 확정된 건가요? 아닙니다. 파기·환송이라 환송심에서 다시 심리합니다.
정리하며
메시지는 하나로 압축됩니다.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본다.
무등록 외환업무 처벌의 취지는 자금 흐름의 모니터링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증빙으로 은행을 속여 통과한 송금은 은행을 이용한 게 아니라 은행의 감시 기능을 무력화한 것입니다. 대법원이 "실제 송금이 외국환은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못박은 이유죠.
가상자산사업자 판단도 같은 결입니다. 기준은 거래량이 아니라 '누구의 이익을 위해, 대가를 받고 하는가'입니다.
가상자산·외환 사건은 외국환거래법·특정금융정보법·업무방해·범죄수익은닉이 한꺼번에 얽히고, 규모가 커질수록 죄명이 늘고 형이 무거워집니다. 방어의 출발점은 늘 같습니다. 자금이 누구 것이었는지, 대가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송금 목적을 어떻게 소명했는지를 자료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계좌 흐름·송금 증빙·거래소 내역·정산 구조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해 소명의 뼈대를 세워 드리겠습니다. 가상자산 거래나 해외 송금으로 조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로톡 상담 요청 또는 로톡 기재 연락처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실제 선고된 대법원 판결과 관련 법령·대법원 판례에 기초한 일반적 법률정보로, 등장인물·법인은 익명 처리하였고 사실관계는 추상화하였으며 구체적 사건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외국환거래법 및 특정금융정보법은 개정이 잦으므로 개별 사안은 반드시 행위 당시의 법령을 확인하고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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