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심사청구·재심사청구·행정소송의 3단계 구제 체계
1. 들어가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불승인 통지를 받은 근로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현실적 물음은 단순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법제도적 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은 일반 행정심판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전심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며, 불복 단계별 제소기간과 선택 가능한 경로가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기간을 하루라도 놓치면 소송 자체가 각하되는 것이 이 분야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 칼럼은 산재 불승인 이후의 불복 절차를 단계별로 정리하고, 실무상 반드시 유의해야 할 쟁점들을 판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2. 산재 불복 절차의 전체 구조
산재보험법은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급여 결정에 대한 불복 체계를 다음과 같이 설계하고 있습니다.
(보험급여 청구) →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또는 불승인 결정) → 심사청구 → 재심사청구 → 행정소송(1심 행정법원) → 항소심(고등법원) → 상고심(대법원)
각 단계의 기관, 기간, 효과가 다르며, 특히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는 일반 행정심판법상의 행정심판이 아닌 산재보험법이 별도로 규정한 특별행정심판절차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급여 결정에 대하여는 행정심판법에 의한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3. 심사청구 - 공단 내부의 시정절차
가. 청구 대상과 제기 방법
심사청구는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급여 결정에 불복하는 자가 공단에 대해 취소 또는 변경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청구인은 불승인 결정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처분을 한 근로복지공단 소속 지사를 경유하여 공단에 심사청구서를 제출하거나, 고용·산재정보통신망(토탈서비스)을 통해 전자적으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60일 이내에 결정하여야 합니다(산재보험법 제105조 제1항).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 심사청구 절차의 성격에 대하여 이를 보험급여 등에 관한 처분을 한 근로복지공단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심사를 통하여 당해 처분의 적법성과 합목적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공단 내부의 시정절차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두3859 판결).
나. 심사청구 단계에서의 처분사유 추가·변경 문제
실무상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공단이 심사청구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당초 처분의 근거와 다른 사유를 처분사유로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인데, 대법원은 이를 적극적으로 허용합니다. 즉, 심사청구 절차는 처분청이 스스로의 내부 시정절차를 통해 처분의 적법성과 합목적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당초 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유라도 처분사유로 추가·변경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두3859 판결). 이는 심사 단계에서 공단이 새로운 불승인 사유를 추가하더라도 그 사유가 이후 취소소송의 판단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므로, 신청인 입장에서는 심사청구 단계부터 예상 가능한 모든 반박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4. 재심사청구 - 고용노동부 소속 독립 재결기관의 심사
가. 청구 기관과 기간
심사청구에 대한 공단의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심사청구 결정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고용노동부 소속의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이하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산재보험법 제106조 제3항). 재심사청구서는 원처분을 행한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제출하거나 재심사위원회에 직접 접수할 수 있습니다.
재심사위원회의 재결은 공단을 기속하며(산재보험법 제109조 제2항), 이 재결은 행정소송법 제18조를 적용할 때 행정심판에 대한 재결로 봅니다(산재보험법 제111조 제2항).
나. 재결기간이 도과된 경우의 예외적 소제기
재심사위원회가 재결을 지연하는 경우, 무작정 재결을 기다려야 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일찍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관계법령에 재심사에 대한 재결기간이 법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재심사 제기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여도 행정청이 재결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 재결을 기다리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그 상당한 기간은 행정소송법 소정의 2개월을 기준으로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80. 11. 25. 선고 80누318 판결). 현행 산재보험법하에서도 이 법리의 기본 취지는 유지된다고 볼 것입니다.
5. 행정소송 - 임의적 전심절차와 제소기간의 실무
가. 전심절차의 임의성 — 2002년 이후 바뀐 법리
과거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반드시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를 모두 거쳐야 한다는 이른바 필요적 전심절차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행정소송법이 임의적 행정심판전치주의로 개정된 이후,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의 보험급여에 관한 결정에 대하여 취소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심사청구 및 재심사청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두6811 판결).
현행 법리에 따르면 불복하는 자는 다음의 세 가지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심사청구·재심사청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취소소송 제기
2. 심사청구만 거친 후 취소소송 제기
3. 심사청구·재심사청구를 모두 거친 후 취소소송 제기
나. 제소기간 - 선택한 경로에 따라 기산점이 달라짐
제소기간은 어느 경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산점이 다르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경로 ① 바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본문)
경로 ② 심사청구만 거친 경우: 심사청구에 대한 결정의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 이내
경로 ③ 재심사청구까지 거친 경우: 재심사청구에 대한 재결의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 이내
특히 경로 ③을 선택한 경우, 심사청구 결정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재심사청구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이후 제기된 재심사청구는 부적법하고, 그 부적법한 재심사청구에 대한 재결서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하더라도 제소기간을 준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 기간을 준수하지 못해 사건이 본안 판단조차 받지 못하고 각하되는 사례가 실무에서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6. 불복기간 도과 후에도 새롭게 청구할 수 있는가
종전 처분이 불복기간 도과로 확정된 이후에도 동일한 상병에 대하여 새롭게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지 문제되나, 대법원은 이를 긍정하였습니다. 행정처분이나 행정심판 재결이 불복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확정된 경우 그 확정력은, 당해 처분의 효력을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의미일 뿐, 판결에서와 같은 기판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는 법리에 근거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이상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새로운 거부처분이 있으면 그 위법 여부를 소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누17181 판결). 다만 이 경우에도 소멸시효(현행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원칙적으로 3년, 유족급여 등은 5년)의 완성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여야 합니다.
7. 나오며
산재 불복 절차는 근로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중요한 제도이지만, 그 구조는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복잡성이 오히려 실질적 권리구제의 장벽이 되지 않도록, 불승인 통보를 받은 즉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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