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를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대주주가 인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배임죄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정작 형사책임을 지는 사람과 민사상 돈을 물어줘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발행을 결정한 이사와 저가로 물량을 받은 대주주, 이 둘의 책임은 근거 조문부터 처벌 수위까지 완전히 다른 갈래로 갈립니다. 어떤 경우에 이사만 책임지고, 어떤 경우에 대주주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 구체적 기준으로 살펴봅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전환사채 저가발행, 왜 대주주 배임 문제로 번지나
비상장회사나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에서 자금이 필요할 때 신주 대신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환사채는 일정 기간 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어서, 발행가액을 시가보다 낮게 잡으면 그 차액만큼 인수인이 이득을 보고 회사와 기존 주주는 지분가치 희석이라는 손해를 입는 구조가 됩니다. 문제는 이 전환사채를 회사의 대주주나 오너 일가가 직접 인수하는 경우입니다.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물량을 확보해 지분율을 늘리거나 경영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통상 두 명의 행위자가 등장합니다. 발행을 결의하고 실행한 이사와, 그 전환사채를 저가에 넘겨받은 대주주(인수인)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거래로 이익을 주고받았지만 법적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책임의 성격과 크기도 다르게 갈립니다. 이사는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서 형사상 배임 책임을 지는 반면, 인수인인 대주주는 원칙적으로 상법상 민사책임을 지는 데 그치고, 형사책임은 별도의 요건이 충족될 때만 문제됩니다. 이 글에서는 그 갈림의 기준을 실제 법령과 판례를 근거로 짚어보겠습니다.
발행을 결정한 이사의 형사책임 — 업무상배임과 특경법 가중처벌
전환사채를 적정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으로 발행해 본인이나 제3자에게 인수시킨 이사는 업무상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형법 제356조는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배임행위를 한 사람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손해액은 통상 적정 발행가액과 실제 발행가액의 차액, 즉 회사가 받았어야 할 자금과 실제로 받은 자금의 차이로 산정됩니다.
이득액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형법이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제3조가 적용돼 형량이 크게 뛰어오릅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여기에 이득액 이하 상당의 벌금을 병과할 수도 있습니다. 전환사채는 발행 규모가 커지기 쉬운 자금조달 수단이라, 저가발행의 차액이 조금만 커져도 특경법 적용 구간에 쉽게 들어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사의 저가발행 배임죄는 손해액이 곧 형량을 가르는 핵심 변수이고, 그 손해액이 5억원을 넘는 순간 사건의 성격이 형법 사건에서 특경법 중형 사건으로 바뀝니다.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기준 — 발행방식과 회사 손해 판단
전환사채 저가발행이라고 해서 항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2009. 5. 29. 선고 2007도4949 전원합의체 판결(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에서, 전환사채가 주주배정 방식으로 발행되고 기존 주주들이 정관과 법령에 따른 인수 청약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스스로 청약하지 않아 실권한 결과 제3자가 그 물량을 넘겨받게 된 경우라면, 이는 주주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지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처음부터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대주주나 특정인에게 직접 전환사채를 몰아준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경우 기존 주주에게는 애초에 인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발행가액이 시가보다 현저히 낮다면 그 차액만큼 회사가 입은 손해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즉 같은 저가발행이라도 발행방식(주주배정인지 제3자배정인지)과 기존 주주의 인수 기회 보장 여부가 배임죄 성립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분수령이 됩니다.
주주배정 + 기존 주주 실권 → 손해 인정에 신중, 무죄 취지로 판단될 여지
제3자배정 + 특정인에게 직접 저가 배정 → 손해 인정 가능성 높음
정관상 근거 없는 제3자배정 → 발행 자체의 절차적 하자까지 함께 문제될 수 있음
저가에 인수한 대주주, 형사배임죄가 곧바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혼동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사가 저가로 발행해 배임죄 책임을 진다고 해서, 그 전환사채를 넘겨받은 대주주도 자동으로 같은 형사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이 있어야 성립하는 신분범입니다. 단순히 저가에 물건(전환사채)을 인수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는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배임죄의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시 말해 대주주가 이사 자리에 있지 않은 이상, 시세보다 싸게 전환사채를 인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형사처벌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인수 과정에서 대주주가 이사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즉 단순히 유리한 조건을 제안받아 응한 것인지 아니면 저가발행 자체를 이사와 함께 기획하고 주도했는지에 따라 책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 구분을 다음 두 항목에서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대주주의 민사책임 — 상법상 차액 지급의무
대주주가 형사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민사책임에서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상법 제424조의2는 이사와 통모하여 현저하게 불공정한 발행가액으로 주식을 인수한 자는 회사에 대해 공정한 발행가액과 실제 발행가액의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급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상법 제516조 제1항이 이 규정을 전환사채 발행에도 그대로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어, 전환사채를 저가에 인수한 대주주에게도 같은 법리가 적용됩니다.
이 책임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통모, 즉 대주주가 이사와 서로 짜고 불공정한 가액을 정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합니다. 단순히 결과적으로 싸게 인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발행가액 결정 과정에 관여하거나 사전에 협의한 정황이 있어야 통모로 평가됩니다. 둘째는 제3자 배정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주주 전원이 지분 비율대로 균등하게 배정받는 주주배정 방식에는 이 책임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청구 대상 발행가액이 공정한지는 시가가 있으면 시가를, 없으면 순자산가치·수익가치 등을 종합해 산정한 가액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대주주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이 아니라 회사에 차액을 물어주는 민사상 지급의무이며, 이사와의 통모와 제3자배정이라는 두 요건이 모두 갖춰져야 발생합니다.
대주주가 형사책임까지 지는 경우 — 공범과 신분
다만 대주주가 단순한 인수자에 머물지 않고 저가발행 자체를 이사와 함께 계획하고 실행에 관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형법 제33조는 신분관계로 인해 성립하는 범죄에 신분 없는 사람이 가담한 경우에도 공범 규정을 적용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주주에게 이사와의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 즉 단순히 이익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발행가액 결정 등 범행 진행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정이 인정되면, 신분이 없더라도 배임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형법 제33조 단서는 신분관계로 인해 형의 경중이 달라지는 경우 신분 없는 자를 무거운 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가 없는 대주주가 배임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더라도, 이사에게 적용되는 업무상배임(형법 356조, 10년 이하 징역)이 아니라 단순배임(형법 355조 제2항,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으로 처단됩니다. 즉 같은 사건에 함께 가담했더라도 신분 유무에 따라 적용 조문과 상한 형량 자체가 갈리는 것입니다.
실무에서 책임 소재를 가르는 증거와 대응 방법
실제 사건에서는 이사와 대주주 중 누가 어디까지 책임을 지는지가 결국 증거로 결정됩니다. 발행가액을 정한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대주주가 안건 상정이나 가액 산정에 직접 관여한 이메일·문자·회의 참석 기록이 있는지, 발행가액 산정 근거자료(외부 평가법인 보고서 유무, 산정 방식의 합리성)가 남아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반대로 대주주가 발행 조건을 사후에 통보받고 인수 여부만 결정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면 통모나 공모 자체가 부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회사나 소수주주 입장에서는 이사를 상대로 한 배임죄 고소·고발과 별개로, 저가에 전환사채를 인수한 대주주를 상대로 상법 제424조의2에 따른 차액 지급 청구를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청구하지 않는 경우에는 상법상 대표소송 요건을 갖춘 소수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청구할 방법도 있습니다. 반대로 대주주 입장에서 통모를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발행가액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객관적 자료를 조기에 확보해두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사회 의사록·품의서 — 발행가액을 누가, 어떤 근거로 정했는지 보여주는 핵심 자료
외부 평가 보고서 유무 — 시가·순자산가치 산정의 합리성을 뒷받침
대주주의 관여 정황 — 통모 여부와 공동정범 성립 가능성을 가르는 자료
발행방식(주주배정/제3자배정) 확인 — 상법 424조의2 적용 여부와 배임죄 손해 판단의 출발점
자주 묻는 질문
Q. 대주주가 전환사채를 시세보다 싸게 인수하기만 해도 배임죄로 처벌받나요?
A. 원칙적으로는 아닙니다. 배임죄는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단순히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한 대주주는 형사책임의 주체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발행가액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면 별도로 공범 성립 여부가 검토될 수 있습니다.
Q. 대주주가 회사에 물어줘야 하는 차액은 어떻게 계산하나요?
A. 상법 제424조의2에 따라 공정한 발행가액과 실제 인수가액의 차액이 기준이 됩니다. 시가가 있으면 시가를, 없으면 순자산가치·수익가치 등을 종합해 산정한 가액을 공정한 발행가액으로 보고 그 차액을 계산합니다.
Q. 기존 주주 전원에게 청약 기회를 줬는데 다들 포기해서 대주주가 물량을 받았다면 문제가 되나요?
A. 대법원 2007도4949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이 경우 이사의 배임죄 손해 인정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만 상법 제424조의2에 따른 대주주의 민사책임은 제3자배정에만 적용되므로, 진정한 주주배정이었다면 이 조항 자체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Q. 이사와 대주주가 사실상 같은 사람(오너)이라면 어떻게 되나요?
A. 이사 지위에서 발행을 결정했다면 업무상배임죄의 신분자로서 책임을 지고, 이득액이 크면 특경법 가중처벌 대상이 됩니다. 인수인 지위에서는 별도로 상법상 차액 지급의무도 함께 문제될 수 있어, 두 책임이 한 사람에게 함께 귀속되는 경우가 실무상 오히려 더 흔합니다.
Q. 회사가 대주주에게 차액 청구를 하지 않으면 소수주주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상법상 대표소송 요건(발행주식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 보유 등)을 갖춘 소수주주라면 회사를 대신해 대주주를 상대로 차액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소 제기 전 서면으로 회사에 청구를 요청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Q. 형사 고소와 민사상 차액 청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이사를 상대로 한 업무상배임 고소와 대주주를 상대로 한 상법 제424조의2 청구는 상대방과 책임의 성격이 달라 별개로 진행할 수 있고, 실무에서도 두 절차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맺음말
전환사채를 저가에 발행하고 인수하는 구조는 이사와 대주주라는 두 행위자가 얽혀 있지만, 법이 묻는 책임은 서로 다른 트랙 위에 있습니다. 발행을 결정한 이사는 형법과 특경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지고, 그 손해액이 클수록 형량도 무거워집니다. 반면 저가에 인수한 대주주는 원칙적으로 상법상 차액 지급이라는 민사책임을 지는 데 그치고, 형사책임은 이사와의 통모·공모가 구체적으로 입증될 때만 별도로 문제됩니다.
결국 실제 사건에서 책임의 크기를 좌우하는 것은 발행방식(주주배정인지 제3자배정인지), 발행가액 산정의 합리성, 그리고 대주주가 그 과정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입니다. 이사·대주주 어느 쪽에 있든 관련 사건에 연루됐다면 초기 단계에서 이 세 갈래 기준에 맞춰 자료를 정리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 배임·횡령 사건은 발행 절차와 회계 자료를 함께 봐야 하는 만큼, 수원지방법원 관할 사건을 포함해 기업형사 사건을 다뤄온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조력을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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