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건물·상가·아파트에서 관리 주체를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면, 한쪽이 상대를 고소한 뒤 그 사실을 안내문·공지문으로 게시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곧바로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게시한 고소 사실이 진실하고, 알린 내용이 입주자·구성원 공동의 관심사(관리권 등)이며, 표현이 절제돼 있고 이해관계 있는 사람들에게 통상의 방법으로 알린 것이라면, 형법 제310조에 따라 처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관리 분쟁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
상가나 집합건물에서는 기존 번영회(입점상인회)와 새로 꾸려진 관리단이 관리권을 두고 부딪치는 일이 잦습니다. 아파트라면 입주자대표회의와 기존 관리 주체 사이의 갈등도 비슷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쪽이 상대 대표를 업무방해·횡령 등으로 고소하고, "누구를 어떤 혐의로 고소했다"는 내용을 엘리베이터나 게시판에 붙여 입주자들에게 알리곤 합니다. 문제는 그 직후 상대가 "내가 고소당했다는 걸 온 건물에 알려 망신을 줬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안내문 게시가 형사처벌 대상인지, 실제 무죄가 인정된 판결로 살펴보겠습니다.
짚고 넘어갈 법 조항
형법 제307조 제1항(사실적시 명예훼손) —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
형법 제310조(위법성 조각) —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면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즉, '고소당했다'처럼 상대에게 불리한 사실이라도 그것이 진실하고 공익 목적이라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건은 '공익성'을 어떻게 인정받느냐입니다.
쟁점 1 | 건물 관리 문제도 '공익'이 될까
형법 제310조의 공익은 나라 전체나 온 국민에 관한 것만 뜻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특정 단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이익도 공익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건물의 관리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관리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입주자·구분소유자까지 포함한 건물 공동체 모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려는 안내문은 그 성격상 공익적 사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쟁점 2 | 공익성은 무엇을 보고 판단하나
법원은 어떤 사실이 공익에 관한 것인지 따질 때 다음을 함께 저울질합니다.
알린 내용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공적 사안인지)
누구에게 알렸는지(불특정 다수인지, 이해관계자에 한정됐는지)
그로 인해 상대의 명예가 얼마나 훼손되는지
어떤 방식·동기로 알렸는지(악의적인지, 필요한 범위인지)
이 저울에서 공동체가 얻는 이익이 개인의 명예 손상보다 크다고 평가되면 공익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쟁점 3 | '고소했다'는 안내는 의견 표명이 될 수 있다
상대를 고소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단순히 흠집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동이 위법하다"는 판단·의견을 밝히는 성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소 사실 자체가 실제로 있었던 진실이라면,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이 그런 의견을 표시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안내문에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는 표현이 없고, 상대가 점포를 임대만 주고 있어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게시로 인한 명예 훼손의 실질은 크지 않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실제 판결은 어떻게 판단했나
한 상가 집합건물에서, 오래 관리를 맡아 온 번영회와 새로 구성된 관리단이 관리권을 두고 대립했습니다. 관리단 대표는 번영회 회장을 업무방해로 고소한 뒤, "건물 관리권은 관리단에 있으며, 이를 방해한 번영회 회장을 고소했다"는 취지의 공지문을 엘리베이터 안팎(평소 공지를 붙이던 곳)에 게시했습니다. 이에 번영회 회장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법원은 ▲관리권 귀속은 건물 공동체 전체의 관심사인 점, ▲고소 사실이 진실이어서 위법하다는 의견 표명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점, ▲공격적 표현이 없었고 통상의 게시 장소를 이용한 점, ▲피해자가 임대인이어서 일반인이 특정하기 어려워 명예 훼손 정도가 공익에 비해 작은 점 등을 들어, 이 게시가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형법 제31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안내문을 붙이기 전 점검할 다섯 가지
첫째, 진실인지 확인합니다. 고소장 접수 사실 등 게시할 내용이 객관적 사실인지 먼저 챙깁니다.
둘째, 공적 사안인지 봅니다. 관리권·관리비 등 구성원 공동의 이익에 관한 내용인지 정리합니다.
셋째, 알리는 대상을 좁힙니다. 이해관계 있는 입주자·구분소유자를 대상으로, 통상의 게시 방법을 씁니다.
넷째, 표현을 절제합니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단정적으로 몰아붙이는 표현을 피하고, 사실과 의견을 담담히 씁니다.
다섯째,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사적 보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보 공유·권익 보호가 주된 목적임을 드러냅니다.
반대로, 이런 경우엔 처벌될 수 있습니다
무죄 판결만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고소 내용을 과장·왜곡하거나 허위를 섞은 경우
온라인·SNS 등 불특정 다수에게 퍼뜨린 경우
모욕적·공격적 표현으로 상대를 인신공격한 경우
주된 의도가 사적 감정·보복에 있는 경우
특히 허위가 섞이면 형법 제310조는 아예 적용되지 않고, 허위사실 명예훼손(제307조 제2항, 5년 이하 징역 등)이라는 더 무거운 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대를 고소한 사실을 알리기만 해도 명예훼손인가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될 수는 있으나, 그 사실이 진실하고 공익 목적이면 형법 제310조로 처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Q. 건물 관리 분쟁이 '공익'에 해당하나요? 관리권 귀속 등은 건물 구성원 전체의 관심·이익에 관한 사항이므로 공익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Q. 엘리베이터·게시판에 붙이는 방식은 괜찮나요? 평소 공지에 쓰이는 장소이고 대상이 이해관계자에 한정되며 표현이 절제돼 있으면, 공익성 판단에서 유리합니다.
Q. 고소가 나중에 무혐의로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 '고소했다'는 사실 자체가 진실이면 그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 곧바로 허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결과를 단정적으로 왜곡하면 문제될 수 있습니다.
Q. 어떤 표현이 특히 위험한가요?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표현은 공익성을 잃게 만들어 명예훼손·모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무리
관리단·번영회 등 집합건물 분쟁에서 상대를 고소한 사실을 안내문으로 게시했더라도, 그 고소 사실이 진실하고 내용이 공동체 공동의 이익에 관한 것이며 표현이 절제돼 있다면, 형법 제310조에 따라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허위·과장·공격적 표현이 섞이면 오히려 무거운 처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관리 분쟁에서 고소 사실이나 상대의 문제를 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진실성·공익성·표현 방법·게시 범위를 미리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게시 전에 변호사와 문구를 상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본 가이드는 실제 선고된 하급심 판결과 관련 법령에 기초한 일반적 법률정보로, 등장인물·단체는 익명 처리하였으며 구체적 사건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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