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금, 통장 명의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보이스피싱 피해금, 통장 명의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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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금, 통장 명의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남천우 변호사

1. 보이스피싱 피해금, 통장 명의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보내고 난 뒤, 그 돈이 들어간 계좌의 명의인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에 피해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입금했던 계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 사람을 상대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묻는 상담이 이어집니다. 정작 전화로 피해자를 속인 사람은 잡히지도, 특정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손을 뻗을 수 있는 상대가 통장 명의인뿐인 상황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늘 비슷합니다. "그 계좌 주인을 상대로 소송하면 돈을 받을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받아낼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갈리고, 그 갈림은 어떤 청구를 어떤 근거로 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2. 부당이득반환과 손해배상은 다른 길입니다

피해자가 통장 명의인을 상대로 들 수 있는 청구는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법률상 원인 없이 내 돈으로 이익을 얻었으니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로, 당신이 범행을 도왔으니 내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둘은 요건이 다르고, 그래서 인정되는 국면도 다릅니다.

3. 돈이 그대로 빠져나갔다면 부당이득은 막히기 쉽습니다

부당이득에서 말하는 이익은 단순히 계좌에 돈이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뜻합니다. 대법원도 어떤 사실로 재산이 실제로 늘어나는 적극적 증가나, 당연히 발생했을 손실을 면하게 되는 소극적 증가가 있어야 이익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다25830, 25847 판결). 그런데 보이스피싱 계좌는 대개 돈이 입금되자마자 곧바로 다른 계좌나 가상자산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입금 직후 전액이 제3자에게 이체되었다면 명의인에게 남은 것이 없어 실질적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만큼 부당이득반환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당이득만으로 접근하면, 자금이 통과만 한 전형적인 대포통장에서는 벽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다만 일부 금액이 명의인에게 남아 있었거나, 명의 제공의 대가가 그 계좌로 함께 들어온 정황이 있다면 그 부분에 한해 이익을 다퉈볼 여지가 생깁니다. 이 지점은 계좌 거래내역을 한 줄씩 따져봐야 드러납니다.

4. 손해배상은 '과실에 의한 방조'에서 길이 열립니다

부당이득이 막히는 사안에서 실질적인 무기가 되는 것은 손해배상, 그중에서도 과실에 의한 방조입니다. 민법은 불법행위를 방조한 사람도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책임을 지우는데, 여기서의 방조에는 고의뿐 아니라 과실에 의한 방조도 포함되고, 그 과실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입니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자기 계좌나 명의가 범죄에 쓰이리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제공하였고 그것이 피해 발생으로 이어졌다면, 직접 사람을 속이지 않았더라도 방조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때에도 명의 제공과 피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책임이 성립합니다.

여기서 형사 결과만 보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장이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사기방조로는 기소되지 않고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등으로만 처벌되는 경우가 많은데, 형사상 사기방조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정이 민사상 과실방조 책임까지 곧바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 범죄의 성립과 민사 손해배상은 요건과 증명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5. 결국 '예견할 수 있었는가'가 결과를 가릅니다

과실방조가 인정될지는 명의인이 자기 계좌가 범죄에 쓰일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한 가지 사정으로 단정하지 않고, 명의를 넘기게 된 목적과 경위, 그 대가나 이익이 있었는지, 상대방의 신원, 계좌가 범행에서 차지한 비중, 이용 상황을 확인했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합니다(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대가를 약속받고 계좌·카드·인증수단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넘겼다면 예견가능성이 인정되기 쉽고, 반대로 아무런 대가 없이 정말로 속아서 넘긴 사정이 분명하다면 책임이 부정되거나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명의인의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배상액이 피해액 전부로 정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피해자도 대출이나 수사 절차를 사칭한 전화에 속아 송금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법원이 과실상계나 책임제한으로 배상 범위를 상당 부분 줄이는 일이 흔합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의 현실적인 눈높이를 처음부터 가늠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6. 통장 명의인을 상대로 한 소송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런 사건은 결국 계좌 거래내역과 형사기록에서 승패가 갈립니다. 돈이 어디로 얼마나 빠져나갔는지, 명의인이 어떤 경위로 무엇을 받고 명의를 넘겼는지가 부당이득과 손해배상의 인정 여부를 동시에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들은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 같은 절차로 끌어와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소장을 내기 전 단계의 설계가 중요합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송금한 돈을 통장 명의인에게 돌려받는 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다면, 입금 계좌의 거래내역과 형사사건 진행 상황을 함께 보면서 어떤 청구가 가능한지부터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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