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 갚겠다."고 말하면 무조건 소멸시효 이익 포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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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돈 갚겠다."고 말하면 무조건 소멸시효 이익 포기일까? 

최동남 변호사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시현 최동남 변호사입니다.

민사 소송, 특히 채권·채무 관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소멸시효입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일정 기간 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는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시효가 이미 완성된 후, 채무자가 "돈을 갚겠다"라고 말하거나 채무 일부를 변제하는 '채무승인'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근 대법원에서 기존의 법리를 변경하는 매우 의미 있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판결).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상인인 원고(채무자)가 상인인 피고(채권자)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금원을 차용하고, 그 담보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안입니다.

원고는 피고에게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합계 1,800만 원을 송금하였는데, 이 시점에 일부 차용금의 이자채무에 대한 소멸시효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피고의 경매신청에 따라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어 배당표가 작성되자, 원고가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은 "원금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채무자가 채무를 일부 변제한 때에는, 이자채무에 관하여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종전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2. 기존의 법리 –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 추정

종래 대법원은 1967년 이래 약 50년 이상, "채권이 법정 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소멸시효로 소멸된다는 것은 보통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시효 완성 후에 채무의 승인을 한 때에는 일응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이른바 '추정 법리'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 추정 법리는 ①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는 점과 ② 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는 점, 두 가지를 모두 채무승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추정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자신의 채무가 정확히 언제 시효로 소멸했는지 법률적으로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단순히 "도의적으로 갚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효 이익을 포기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채무자에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3. 변경된 법리 : ‘인식’과 ‘효과 의사’ 두 가지 모두를 입증해야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종전 추정 법리를 타당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이를 변경하였습니다. 그 핵심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판결의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가.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의 추정 —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음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는 소멸시효기간, 기산점, 중단·정지 사유 등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단지 소멸시효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는지는 개별 사안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경험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판결).

나.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추정 — 역시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음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채무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의 채무자라면 자신의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오히려 경험칙에 비추어 보면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판결).

4. 변경된 판례의 실무적 의의

이번 판결은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법률 행위의 해석을 더욱 엄격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 의사해석의 중요성: 앞으로는 채무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구로 승인을 했는지에 대한 '의사해석'의 문제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대두될 전망입니다.

· 채권자의 입증책임 강화: 채권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이 갚는다고 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며, 상대방이 시효 완성을 인지하고도 포기했다는 점을 더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습니다. 즉, 채무자의 ① 시효완성 사실에 대한 인식과, ② 시효이익을 포기하겠다는 효과의사 2가지에 대한 채권자의 개별적·구체적 입증 부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 채무자 보호의 기틀: 법률 지식이 부족한 채무자가 채권자의 독촉에 못 이겨 한 일시적인 의사표시로 인해 부당하게 시효 이익을 상실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 개인회생 등 도산절차에서의 의의 : 개인회생절차에서 채무자가 채권자목록에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기재하거나 변제계획에 따라 일부 변제를 한 경우에도, 이번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그것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회생절차에서의 변제는 변제계획에 따른 강제적 변제이고,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않을 경우 면책불허가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5. 결어

이번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판결은 약 5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추정 법리'를 폐기한 대단히 의미 있는 판례 변경입니다. 앞으로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자의 일부 변제나 채무승인이 있었던 사안에서는,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미 시효가 지난 채무에 대해 독촉을 받고 계시거나, 반대로 시효가 완성된 줄 알았던 채무자가 다시 변제 의사를 밝혀온 상황이라면, 반드시 민사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여 당시의 의사표시가 법률적으로 '시효이익의 포기'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검토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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