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가정폭력 당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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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가정폭력 당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엄세연 변호사

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떤 증거를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고민 끝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분들 중 상당수가 상대방이 물건을 부순 사진이나 집안이 엉망이 된 현장 사진만 가지고 오시곤 하는데요. 물론 이러한 자료들도 중요한 증거이지만, 실제로는 ‘피해 직후’에 어떻게 기록하고 대응하느냐가 사건을 입증하는 데 큰 차이를 만듭니다.

 

특히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입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초기 대처와 증거 확보의 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은 연인 간에 발생한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고했다가 일이 너무 커지면 어쩌지..

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112에 신고해야 합니다. 피해자분들이 "이 정도로 신고까지 해야 하나", "관계가 더 악화될까봐 겁난다"는 이유로 폭력 당시에 신고를 망설이시는데요. 그러나 112 신고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112 신고사건처리표'와 '출동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이 문서에는 폭력이 발생한 시각, 장소, 현장 상황,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등이 상세히 기재됩니다. 따라서 이후 상대방이 폭행 사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더라도, 이와 같은 경찰의 공식 기록은 법정에서 매우 신빙성 높은 증거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112 신고를 통해 임시조치·긴급임시조치 등 다양한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하거나, 접근금지·퇴거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에 긴급임시조치를 신청하도록 돕습니다.

 

다른 증거 자료들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도 준비할 수 있지만, 현장 신고는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폭력 피해를 입으셨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장 먼저 112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112 신고 후에는 반드시 당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 정도 상처로 병원까지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겉보기에는 가벼워 보이는 상처라도 의학적으로는 상당한 부상일 수 있습니다. 특히 목을 조르거나 머리를 맞은 경우, 외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내부 출혈이나 신경 손상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또한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단서는 '상해진단서'와 '상해소견서' 두 가지가 있는데, 가능하면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상해진단서는 의사가 상해의 정도와 치료 기간을 명시한 공식 문서로, 법적 효력이 더 강합니다. 상해진단서에는 상처의 위치, 크기, 정도뿐만 아니라 '전치 2주', '전치 3주' 등 치료에 필요한 기간이 명시되는데, 이는 단순폭행죄와 상해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폭력 피해와 병원 진료 사이의 시간 간격입니다. 폭력을 당한 지 며칠이 지나서 병원을 방문하면, 상대방 측에서 "그 상처가 정말 그때 생긴 것이냐"며 인과관계를 다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당일,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병원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발급받아 두시기 바랍니다.

 

몰래 녹음하면 불법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폭력 전후의 대화 내용입니다. 상대방이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협박하는 말을 했거나, 폭력 후에 사과하거나 변명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면, 이 모든 것이 폭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특히 "때려서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식의 통화 녹음이나 메시지는 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폭력 상황이 벌어질 때 가해자 몰래 녹음을 하는 것도 증거로서 매우 유용할 수 있습니다. 흔히 "몰래 녹음은 불법 아닌가요?"라고 물으시지만, 본인이 직접 참여한 통화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며, 제3자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경우만 불법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피해자로서 폭언·협박·가스라이팅·모욕 등을 당하는 상황을 녹음하는 것은 합법적인 증거 확보 수단입니다.

 

폭력 피해가 발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진술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특히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처럼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미루게 되는 경우가 많고,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면 증거 확보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따라서 폭력 발생 직후에는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기록하고, 녹음·메시지 저장·통화기록 캡처·CCTV 확인 요청 등 가능한 모든 형태의 증거를 즉시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합의금 받았으면 신고 안되나요?

이미 가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일정한 금전적 보상을 받은 피해자분들이 “이제 신고 못하는 건가요?”라고 많이 질문하시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합의금을 받았다고 해서 형사 고소나 신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고 시점과 합의 경위에 따라 사건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해자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신고한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앙갚음으로 신고했다", "상대가 합의금을 노리고 허위로 진술했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교제폭력의 경우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감정적 갈등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심을 받기가 더 쉽습니다.

 

실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법원은 ‘합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무조건 종결하지 않습니다. 합의는 양형(형의 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범죄사실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의 경우, 신고 단계에서는 사실관계 입증에 집중하고, 합의나 금전적 보상 문제는 수사 진행 이후에 변호사와 상의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피해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회복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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