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들은 외롭습니다.
가족에게도 끝까지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잖아도 힘드신데 나까지 걱정을 끼치는 게 싫다는 이유에서요.
불면에 시달리며 정신과약을 복용하면서 혼자 견디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끔 가족분들은 어쩌다 너무 달라진 피해자를 보고 추궁하다 우연히 피해사실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는 가족들의 합의 종용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길게 끌어봐야 너만 손해다, 빨리 합의하고 끝내라"구요.
실제로 처음에는 처벌 의사가 강하시다가 어느순간 어머니의 강권으로 합의하시는 분들을 꽤 많이 목격했습니다.
심지어 합의금 액수가 죄질에 비해 다소 부족해보이는데도 빨리 종결하기를 원하세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가족분들은 더 강하게 말씀하시면서 "절대 합의는 없다"고 하기도 하시지요.
사실 가족들이 피해 사실을 어느정도까지는 알 수 있지만. 자세히 구체적으로 다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범죄 특성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남성수사관 앞에서도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공소장에 기재를 하려면 범행사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돼요.
그래서 수사관들도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성범죄 당할 때 당신이 취한 자세가 어땠는지까지,
어느쪽 팔로 당신의 어느 부위을 제압했는지 질문할 것이고,
피해자는 그때 경험을 최대한 다시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전형적 특성은 재경험, 재각성이지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억지로 다 잊었는데, 그 사람을 처벌하려면 세세하게 다 기억해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구체적으로 기억해내지 못하면 불리해지고 피해자들은 또 자신을 탓하게 되지요.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 아니냐,
어떨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기억 못할 수 있느냐"는 추궁을.
긴 소송 과정에서 한번쯤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피해자 다음으로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진짜 진실은 변호사도 모를 수 있고 아마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법적인 사실관계는 피해자보다 더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대신 싸워줄 수 있지요.
여기서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의 특이점이 발생합니다.
가족보다 나의 어떤 부분을 더 잘 아는 변호사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라포가 형성되고 더 밀착됩니다.
피해자를 공격하는 어떤 주장을 듣고 변호사가 더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는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약간의 몫을 대신 가져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피해자가 혼자 남겨지는 모습을 지난 12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봐 왔습니다.
피해자가 혼자 남겨지는 순간, 그래도 옆에 마음에 맞는 변호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건이 종결되고 피해자분들이 일상을 회복해서 취업도 하고, 상도 타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소식을 전해줄 때
말로 못할 보람을 느낍니다.
그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 변호사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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