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아람 변호사입니다.
지난 가을 무렵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등학생 자녀가 스터디 카페의 공용 공간에서 휴대폰을 충전하다가 실수로 자신의 충전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충전기를 뽑아와 버렸는데,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괜찮을 거라고 했어. 그냥 가서 조사만 받아도 되겠지?”라는 게 지인의 반응이었습니다. 가능하면 꼭 변호사를 동행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지만 지인은 하찮은 일이니 그럴 것 없다면서 그냥 자녀와 둘만 조사를 받으러 갔고, 한 달 후에 결국 절도 혐의가 인정되어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가 되었다며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모범적으로만 살아오던 한 학생이 ‘소년법원’에 서게 되었으니 부모님으로서는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범죄와 무관하게 성실히 살아온 사람이니, 수사기관이 나를 범죄자로 오해할 리 없다.”, “설령 오해가 있어도 조사만 잘 받으면 금방 풀릴 것이다.”, “검찰이 억울한 사람을 섣불리 기소하거나 혐의를 인정하진 않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선 학생의 사례처럼, 또 이번에 소개할 사건의 의뢰인처럼, 평생 단 한 번도 범죄와 관련된 적이 없던 사람조차도 어느 날 갑자기 ‘절도 용의자’가 되어버릴 수 있고,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기소유예’라는 이름의 처분을 받아 수사경력이라는 무거운 낙인을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멀고 험난합니다. 경찰, 검찰의 판단이 모두 지나간 다음,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머나먼 길을 가야만 비로소 ‘기소유예 처분 전력’을 벗어나 명예가 회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 사건 개요
※ 블로그에 기재된 사례들은 모두 의뢰인 보호를 위하여 세심하게 각색됩니다.
의뢰인 T님은 경기도 신도시에서 거주하며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30대 교사였습니다. 늦게까지 야근하고 퇴근하던 T님은 술집이 밀집한 번화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길 한복판에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구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길 한복판에 놓여 있어, 누가 잠시 두고 가거나 숨겨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술에 많이 취해서 떨어뜨리고 갔나?”
T님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방을 그대로 길에 두면 행인들의 발에 차이거나 자전거에 깔릴 수 있다고 생각해, 가방을 우선 길옆에 있는 벤치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신분증이 안에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살폈습니다. 안에는 옷가지와 책만 있었고, 신분증은 없었습니다. T님은 주변에 있는 경찰서를 휴대폰으로 지도 검색해 찾아가려고 했지만, 경찰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T님은 가방을 그냥 제자리에 돌려놓고 귀가했습니다. 당연히 그는 이 일로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걸려온 경찰의 한 통의 전화는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XX동에서 가방 훔치신 적 있죠? 절도죄로 조사받으셔야 해요.”
T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오해라고 생각했고, 수사관 역시 “큰일이 아닌 것 같고 절차상 조사만 받으시면 된다”고 말해 변호인 선임 없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훔친 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T님이 가방을 가져가는 장면이 방범CCTV에 찍혔는데, 가져다놓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각도상 안 찍히거나 가려서 안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수사관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후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습니다. 담당 검사에게 전화하자, 검사는 합의를 반드시 하지 않으면 전과가 남게 될 것이라고 무조건 합의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죄를 짓지 않는데도 합의를 하면 죄를 인정하게 되는 게 아닌가요”라고 묻자, “무혐의를 받고 싶지 않으면 가방을 돌려놨다는 걸 입증할 증거를 찾아와라, 그러지 않으면 처벌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T님은 혐의를 인정하거나 합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방을 제자리에 놨다’라는 걸 입증할 방법이 일반인으로서는 없었습니다.
가방 소유주는 가방이 비싼 물건이라며 높은 합의금을 불렀고, T님은 결국 극심한 압박 끝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 ‘피의자가 자백하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T님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자백을 한 적도 없는데 자백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기소유예를 함으로써 선처를 해주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이것은 T님에게는 치명적인 결과였습니다. 기소유예는 전과는 아니지만 수사경력으로 남습니다. 향후 취업·승진·비자·해외 이민·결혼과정 등에서 평생 큰 장애가 될 수 있는 기록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직에 있는 사람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만으로도 징계가 개시되거나 징계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나는 죄가 없는데… 왜 이런 처벌 아닌 처벌을 받아야 하지?”
T님은 결국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차라리 벌금형이 나왔다면 정식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주장할 수 있을텐데,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서는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법소원심판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2. 서아람 변호사의 조력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은 단순한 불복 절차가 아닙니다. 이것은 국가 형사권의 자의적 행사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험난한 절차입니다.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이 과연 합리적·정당한 근거에 의해 내려진 결정인가?”
“수사기관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혐의 입증을 했는가?”
“수사과정이 인권을 침해할 정도로 소홀한 부분이 있었는가?”
처음부터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절도죄든 점유이탈물횡령죄이든, 핵심은 “가져가서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의사”, 즉 불법영득의사입니다. 이는 사람의 주관적인 내심의 의사이므로 각종 정황을 종합해서 ‘객관적이고 세심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의자 본인의 진술에 따르면, 가방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가져갈 생각도 없었으며, 경찰에서도 일관되게 “제가 가져간 적이 없습니다”라고 진술했으며 물건을 사용 수익 보관한 그 어떤 정황도 없는데, 오직 ‘가방을 가져가는 장면이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은 곧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너무도 쉽게 단정해 버린 것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의뢰인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가방을 훔칠 이유가 없다는 점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범행에서는 ‘동기’를 생각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경찰과 검찰이 이 사건 과정에서 밀어붙인, 그리고 헌법소원이 제기된 후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견지한 주장은 오직 하나, ‘가방을 가져가는 게 CCTV에 찍혔고 돌려놓는 것은 찍히지 않았다’ 이것뿐이었습니다. 이에 현장에 설치된 CCTV 모델을 확인한 결과, 해당 CCTV는 이른바 ‘회전형’으로, 계속 각도가 바뀌기 때문에 4~6분 이상의 여백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다른 CCTV나 블랙박스 영상 등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피의자의 휴대폰에 경찰서 구글 맵 검색기록이 있는지도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소홀한 수사와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은 기소유예 처분의 직접적 근거가 되었고 그 자체가 기본권 침해의 핵심 사유가 되었습니다.
저는 경찰 조사 녹취록, CCTV 구조 설명, 현장 사진과 영상, 재연 사진, 주변 경찰서까지의 거리를 보여주는 지도, 그 외 각종 정황 증거를 상세히 적시하여 불법영득의사 부존재를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판례 40여 개를 종합해 총 80페이지 분량의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작성했습니다.
“청구인에게는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음에도, 수사기관은 부실한 조사와 자의적 판단으로 기소유예를 하였고 이는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 제11조(평등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습니다.
3. 사건 결과
헌법 소원 심리가 오래 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말 길긴 했습니다. 약 2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래도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확신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2025년 11월,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이 위헌임을 선언했습니다. 재판부는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정황과 수사기록, 그리고 수사기관·검찰의 판단 과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청구인이 호소해 온 억울함이 단순한 감정적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본권 침해로 이어진 사안임을 명확하게 인정했습니다. 수사기관은 절도나 점유이탈물횡령과 같은 재산범죄를 인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불법영득의사’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기소유예 처분이 지극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지적했습니다. 검찰은 합의 사실을 마치 청구인의 ‘반성’이나 ‘범행 인정’으로 해석했지만, 이는 수사기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은 헌법이 요구하는 비례성·평등성·형사절차의 적정성 기준을 모두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마지막으로, 이 기소유예 처분이 실제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기소유예는 겉으로 보기엔 ‘처벌을 피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분명한 불이익이 됩니다. 수사경력은 일정 기간 동안 국가기관,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에서 조회될 수 있으며, 해외 비자·이민 심사나 직업상 결격 요건 판단에서 직접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성인에게 기소유예 전력이 남는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문제이며, 직업상 불이익·인사상의 위험·대외적 신인도 하락 등 현실적인 피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점을 헌법재판소는 명확히 짚어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재판부는 기소유예 처분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했다고 보았고,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청구인의 수사경력은 삭제되었고, 그에게 씌워져 있던 억울한 누명 역시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수사기관과 검찰의 판단을 모두 거슬러 헌법재판소까지 도달한 것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구인이 감내해야 했던 스트레스·불안·불명예의 압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결과가 이번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의뢰인 분께서 만족하셔서 저도 정말 보람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4. 마치며
저는 오랜 기간 검사로 일했지만, 검사로 일하던 때에도 지금도, ‘기소유예’를 무슨 만능 해결책인 것처럼 여기는 것을 경계합니다. 죄가 없다면 없다고 명확히 밝혀 주어야 하고,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있지만 기소를 유예’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소유예는 대부분 초범에게만 주어지므로, 억울하게 기소유예를 받게 되면 다음에 정말 잘못했을 때 기소유예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게 되는 셈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부당한 수사,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 기소유예 남용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는 분들을 돕기 위해 소명을 다할 것입니다. 형사절차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사건은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코 혼자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절차를 알고, 정확한 대응을 하면 충분히 명예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서아람 변호사는 언제나 의뢰인의 권리를 지키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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