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성추행, 공중밀집장소추행죄: ‘지하철의 손’은 당신을 범죄자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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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성추행, 공중밀집장소추행죄: ‘지하철의 손’은 당신을 범죄자로 만든다 

민경철 변호사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지하철에서 우연히 가방을 들고 여자의 옆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전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지하철 타는 남성은 모두 예비 범죄자’로 간주해도 될 판입니다.

그것도 CCTV도, 목격자도 없이 오직 한 사람의 말만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 일명 ‘공중밀집장소추행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성추행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강제추행죄를 지하철 같은 공간에선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생긴 조항입니다. 하지만 없어도 처벌은 가능했습니다.

 

법원은 이미 80년대부터 ‘기습추행’이라는 법리를 만들어냈고, ‘갑자기 만졌으니까 폭행이 있었다’는 해석으로 강제추행죄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조항을 적용하든 처벌은 비슷합니다.)

 

즉, 당신이 무심코 손을 움직였거나, 심지어 가방이 스친 것만으로도 강제추행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니냐?’고요? 아니요.

이미 판례로 존재합니다.

 

그것도 2019년에 대법원까지 올라간 유명한 사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왜냐고요?

피해자의 진술이 바뀌긴 했지만, ‘허위 진술의 동기가 없다’는 웃기는 이유였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출근길 만원 전동차 안. 피해자는 피고인이 5분간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스타킹 겉면에서 팬티 속의 날개형 생리대를 밀어내고, 검지와 중지로 음부를 아플 정도로 휘저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판타지 소설의 묘사처럼 구체적입니다.

문제는 이 묘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스타킹과 팬티를 그대로 둔 채(※뚫지 않았음)로 생리대를 밀어내고 음부를 휘젓는다?

과학을 무시해야 가능한 장면입니다.

 

2심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실제 상황과 모순된다고 보았습니다.

우선, 피해자는 스타킹만 신고 있었는데도 타인의 손이 음부 쪽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처음엔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더구나 피해자는 피고인이 가방을 들고 있던 손으로 추행했다고 했지만, 그 손에는 무게 있는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고, 그 손으로 추행을 하면 가방이 피해자 몸에 닿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점을 지적하자 피해자는 “아니다, 가방은 닿지 않았다”고 하다가, 나중에 진술을 바꿔 “그럼 반대 손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런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1심은 “중요한 부분은 일관됐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일관된 것인지, 상식적으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2심은 합리적이었습니다.

피고인이 그런 자세에서 그런 동작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3심, 즉 대법원은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와, 피해자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고요?

 

허위진술의 동기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과연 허위진술의 동기가 없었을까요?

 

범행의 동기를 찾는 것은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는 관점입니다.

‘묻지마 살인’이 판치는 지금, 큰 의미가 없습니다.

 

혼잡하고 밀폐된 지하철에서 안 그래도 짜증났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부딪혀서 불쾌해서 얼마든지 성추행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진술이 증거가 아니라, 판결의 종착점이 된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하철 성추행 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CCTV? 있어도 도움이 안 됩니다.

목격자? 그런 건 흔치 않습니다.

 

결국 법은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성인지감수성이 판치는 지금, 피해자라는 이름만 붙으면 진술의 일관성 여부조차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다소 바뀌었더라도, 허위진술의 동기만 없으면 괜찮다고 하니까요.

 

정리하자면, 이 판례는 물리학, 생리학, 상식, 논리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중요하게 본 것은 단 하나, 피해자의 감정입니다.

 

왜냐면 시대정신이 ‘감수성’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증거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감정의 진정성이 더 강한 증거로 취급됩니다.

 

피해자가 아팠다고 하면, 실제로 손이 닿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느낌이 있었으면 충분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지하철을 타는 남성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책은, 혼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여성이 혼자 있는 공간에 서 있다면 무조건 자리를 옮기십시오.

 

당신이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불쾌하다고 느꼈다면, 당신의 손은 이미 성추행범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스쳐 지나가는 접촉도 추행으로 간주될 수 있고, 피해자 진술만으로 인생이 뒤집히는 시대입니다. 피고인이 아무리 상세히 반박해도, 피해자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시대입니다. 법원이 감정으로 움직일 때, 사실은 사라지고 ‘정서’가 정의를 대체합니다.

 

그럼 이건 누굴 위한 법입니까?

피해자? 아닙니다.

 

이건 법을 감정으로 소비하려는 대중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눈치를 보는 사법부가 손잡은 결과입니다.

 

그 사이에서 억울한 사람은 그냥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로 취급될 뿐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당신이 섰던 자리, 그게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유죄가, 지금 우리 곁에서 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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