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가 개시되도록 하려면 피해자가 고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합니다. 고소란 범죄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며 가해자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입니다.
고소장 양식은 경찰서에도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소인 중에는 바로 경찰서에 가서 그 자리에서 몇 자 끄적거리면서 고소장을 작성하는 분도 있습니다.
고소장은 주민 센터나 은행에 가서 제출하는 민원서류와 차원이 다릅니다. 고소장은 수사의 방향을 정하고 그 자체로 범죄의 증거가 됩니다. 매우 면밀하고 신중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고소장에는 고소인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모든 인적, 물적 증거를 갖추어야 합니다. 경찰은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하고 가해자를 신문하고, 피해자 진술을 확인합니다.
경찰은 언제나 시간, 인력의 부족에 시달리므로 고소장에 없는 내용을 확대하여 수사하지는 않습니다.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진상 파악이 안 되면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렵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고소인 중에는 수사기관이 알아서 범죄를 수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수사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의 양은 매우 많기 때문에, 개개인의 사건 처리를 위해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고소인이 제출한 증거만 검토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고소인이 충분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고소장을 대충 써서 제출하여 결국 무혐의 불송치 결정이 나오게 되면 두 번 다시 처벌하기 힘들어지고 자칫 무고죄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준강간죄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하는 것으로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됩니다. 따라서 준강간죄가 되려면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라야 하고, 가해자가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해야 하고, 이것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야 합니다. 고소하는 사건이 이러한 요건을 모두 갖추어서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을 고소장에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준강간죄 피해자는 심신상실이어서 범행 과정을 알지 못합니다. 술에 만취하여 의식을 잃은 사이에 강간을 당했고 깨어나 보니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강간당한 것은 분명하고 피해자인 것은 맞는데 피해 과정을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피의자는 이 점을 이용하여 무혐의를 주장하며 진실이 아닌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네가 이렇게 하지 않았냐? ~ 한 거 기억 안 나냐?” 피해자는 기억이 없으므로 마땅히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피해자가 무고하게 고소한다고 주장하고 합의금을 뜯어내려 한다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그때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없고 입증할 방법도 없습니다.
가해자에게 혐의가 인정되면 성범죄 전과가 생기고 형벌과 함께 보안처분까지 받게 됩니다. 성범죄가 인정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므로 피의자가 되면 초기부터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적극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겨우 고소장 한 장 작성해서 제출한 것이 전부인데,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요? 준강간죄로 고소해도 절반 정도는 무혐의로 나옵니다.
무혐의로 나오는 이유는 고소인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인정되거나 합의한 성관계라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필름이 끊긴 듯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없어서 당연히 준강간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의식을 잃은 패싱아웃 상태일 수도 있고 단지 기억저장만 실패한 블랙아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둘은 일도양단으로 구별되기보다는 그 중간에 해당하는 무수히 많은 단계가 가능합니다.
(*패싱아웃: 의사능력, 판단 능력 상실로 심신상실로 인정됨
*블랙아웃: 의사능력, 판단 능력은 정상이고 기억저장 능력만 상실한 것)
피의자는 주로 이 부분을 문제 삼아서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이 아니고 블랙아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증거로 모텔 가기 직전의 목격자 진술이나 CCTV 영상을 제출합니다. 고소인이 잘 움직이고 걸어 다녔다는 증거가 있다면 심신상실은 아니고 피의자가 무혐의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는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있었지만 단지 기억저장만 실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준강간 피해자는 범행 당시의 기억이 없으므로 진술할 것이 없어서 부담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피의자가 자신의 무혐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경우 다른 성범죄보다 유죄 인정이 어려우며 피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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