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6. 5. 27. 선고 2015도17518, 2015전도263(병합) 판결 분석
-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위계등간음) 등 -
# 들어가며
경찰에서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 근무하던 때부터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맞닥뜨리는 케이스면서도 가장 고민이 되는 케이스가 바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들입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임에도 유죄 판결까지 선고가 되는 몇 안되는 사건이 바로 성범죄 사건이지요. 성범죄는 보통 피해자와 가해자가 둘이 있는 상황에서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즉시 112 신고가 이루어져 별도의 증거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있기가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으니 비교적 쉽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정말 성폭력 가해를 한 사실이 없는데 무고당한 상황이라면, 정말 억울하게 성범죄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부작용도 있습니다. 실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봐오기도 했고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기소·불기소 혹은 유죄·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누가 더 신빙성 있게 주장하는가, 혹은 누가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을 철저히 깨뜨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한 판례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유죄·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누가 더 신빙성 있게 주장하는가, 혹은 누가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을 철저히 깨뜨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 사실관계
피고인은 장애인 직업재활센터에서 근무하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같은 센터에서 재활 훈련을 받는 지적장애 3급인 여성입니다. 피해자는 약 3개월간 피고인으로부터 재활센터 곳곳에서 간음(강간) 및 추행 피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피고인은 그러한 사실이 없다며 이를 전부 부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원심(2심)의 판단
법원이 피해자 진술을 믿지 않은 이유
원심은 "피해자가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서 그 피해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는 데 (장애인으로서의) 특수성이 참작되어야 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래와 같은 점으로 보아 피해자 진술에 충분한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는 피고인에게 1심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된 것을 뒤짚은 것인데요(!). 1심 판결을 2심에서 뒤짚는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일입니다. 2심 변호인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원심이 말한 "아래와 같은 점"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의 메모(즉, 객관적 증거)와 피해 주장 내용의 불일치 : 피해자는 자신이 간음, 추행을 당한 날을 자신의 용돈기입장에 각각 별표, 동그라미로 표시하였다며, 이를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별표, 동그라미가 표시된 날짜와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 날짜 등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피해자와 피고인의 직업재활센터 출퇴근기록(즉, 객관적 증거)과 피해 주장 일자의 상이함 :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날짜에 정작 피해자가 출근한 기록이 없거나, 피고인이 출장을 간 날인 경우가 다수 있었습니다.
피해장소와 시간이 다수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와 시간이어서, 간음이나 추행이 이루어지기 어려움 :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장소와 시간대가 재활센터의 다른 작업자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와 시간대(예를 들면 쉬는 시간의 화장실)였기 때문에, 그런 장소에서 그 시간에 간음, 추행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발목을 주물러 달라고 하거나, 다른 장애인과의 갈등을 상담하는 쪽지를 피고인에게 보내거나, 피고인을 걱정하며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한 점 등은 '피해자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법원이 피고인 진술을 믿은 이유
여기에, 피고인은 애초에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내가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실이 있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흔히 아시는 '자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법원이 믿어준 것은 바로 "진실과 상관 없이 일단 합의를 하여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합의를 해줄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피해자 가족을 만났고,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답변을 강요받아 어쩔 수 없이 자백하였다"라는 피고인의 주장에 일리가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과 피고인의 진단서가 제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대법원의 주요 판시 사항
대법원은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보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인에 대한 무죄 판결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한 중요한 법리를 재차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유죄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 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에만 터잡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증명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가 한 진술 자체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은 물 론이고 피해자의 지적능력, 성품 등 인격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사실 중 일부에 위와 같은 증명력이 없고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나머지 피해 사실에 관한 진술만은 진실하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 진술내용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 등을 치밀하게 검증하여 그 진술이 형사재판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증명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구체적 범죄사실, 특히 공소사실에 특정된 범죄의 일시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의 주된 대상이 되므로 위와 같은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증거가 부족한데도 다른 시기에 범행하였을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있다고 쉽게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 판례 분석(핵심은 결국..)
피해자의 입장이든 가해자의 입장이든간에, 이 판례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사실 중 일부에 증명력이 없고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나머지 피해 사실에 관한 진술만은 진실하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
그리고 "공소사실에 특정된 범죄의 일시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의 주된 대상이 되므로 다른 시기에 범행하였을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있다고 쉽게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즉,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 사실이 여러 개일 경우, 하나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음이 드러난 것도 모자라 '허위로 꾸며낸 것'일 가능성마저 있다면, 나머지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특히 성범죄의 경우 '범죄 일시'가 언제인지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매우 중요(어느 날짜인지에 따라 소위 말하는 알리바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 날짜에 피고인에게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다면, 설령 '피해'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섣불리 유죄 판결을 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 나오며
피해자의 입장이시라면, 불의의 피해를 입으신 그 즉시 일기, 메모장, 달력 등 피해 사실을 그때 그때 잘 기록해두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고, 가해자의 입장이시라면, 여러 개의 피해 주장 사실 중 어느 하나라도 '허위'라는 점을 입증할 작은 증거를 찾으시고, 이를 가지고 피해자의 다른 피해 주장도 믿을 수 없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주장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외 알리바이를 입증할 각종 기록들을 찾아보시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보입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성범죄 사건은 결국 피해자 진술을 입증할(혹은 반박할) 객관적인 증거를 작은 것이라도 누가 더 많이 제출할 수 있느냐가 유무죄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중요한 역할은 결국 이러한 부분을 치밀하게 발굴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효율적으로 재판부에 어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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