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딥페이크 지인 나체 합성사진' 제작을 의뢰하여 소지하고 있던 남성에게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는 소식, 모두 들어보셨나요?
위 소식을 접하신 분들은 아마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 사진을 합성하여 나의 나체 사진을 만들어서 '소장'하는 행위, 이른바 "딥페이크 지인능욕"을 당하는데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면? 아마 다들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실텐데요.
정말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남의 사진으로 나체 사진을 제작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인지, 아래와 같은 목차로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판례의 사실관계와 쟁점
형법 제243조 '음화제조죄'의 '음화'에 컴퓨터 파일도 포함될 수 있을까?
새로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으로는 왜 처벌할 수 없나요?
결론
2. 사실관계와 쟁점(딥페이크 처벌)
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0도1669 판결 분석
피고인은 서울 모 유명대학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 피고인은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음란합성사진 제작자인 불상의 사람에게 SNS를 통해 접촉하여, 지인인 여성들의 얼굴이 합성된 나체 사진을 17 차례 의뢰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이른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것입니다.
이에 피고인은 형법 제243조의 '음화제작죄'의 '교사범'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사범: 타인을 교사해서 범죄실행의 결의를 생기게 하여 범죄를 실행하게 하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 형법 제31조 제1항은 교사범을 범죄를 직접 실행한 정범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편, 형법 제243조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을 '음화제작죄'의 교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와 관련하여 문제가 된 것은, 바로 피고인이 위와 같이 의뢰하여 제작한 '합성 나체사진'이 형법 제243조가 말하는 '음화'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정확히는 피고인이 제작 의뢰한 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파일'의 형태로만 보관되어 있었을 뿐, 이를 출력해서 하드카피로 보유하고 있다거나 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 파일'도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가 문제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의 실현을 위해 '파일'도 '음란한 물건'이라고 보아야 해!"
VS
"파일까지 음란한 물건이라고 해석하는게 반드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아니야!"
3. 형법 제243조 '음화제조죄'의 '음화'에 컴퓨터 파일도 포함될 수 있을까?
'어떤 행위가 범죄로 되고 그 범죄에 대하여 어떤 종류와 범위의 형벌을 부과할 것인가는 행위 이전에 미리 성문의 법률에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고 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많이 접해보셨죠?)
이는 국가의 형벌권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권력이기 때문에, 형법 규정의 단어와 문구들은 매우 엄밀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자가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형법 제243조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컴퓨터 파일형태의 사진'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보편화된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화된 사진보다는 컴퓨터 파일 형태로 사진을 보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러한 컴퓨터 파일 역시 '물건'이라고 보아, 신종 범죄들에 형벌을 가하여야 할지, 볼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파일이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대법원의 오래된 입장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그 입장을 변경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법원 1999. 2. 24. 선고 98도3140 판결]
형법 제243조(음화반포등)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서 컴퓨터 프로그램파일 은 위 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참고로 형법 제316조 제2항의 비밀침해죄 등 우리 형법은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대한 범죄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이란 '사람의 지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방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록'을 의미하는 것으로, 굳이 따지자면 컴퓨터 파일은 이에 해당된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형법의 다른 조문들을 살펴보아도 '컴퓨터 파일'을 의미하는 다른 용어(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가 있는 만큼, '음란한 물건'에 '컴퓨터 파일로 된 사진'이 포함된다고 보기는 좀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4. 새로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으로는 왜 처벌할 수 없나요?
그럼 지인능욕은 현재로서는 처벌이 어려운 것일까요?

사실 컴퓨터 파일 형태로 된 음란한 사진을 제작한 경우, 2020년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 등)에 의해 처벌될 수 있습니다.
위 조항은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사건의 피고인은 왜 위 규정으로 처벌받지 않은 것일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위 조항은 2020년에서야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피고인이 합성 나체사진 제작을 의뢰한 것은 2017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형법 규정은 원칙적으로 조항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행해진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행위 당시에 이미 범죄로 규정된 행위'였어야 처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형법이 죄형법정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결론
이처럼 형법의 적용과 처벌은, '나쁜 놈은 벌줘야 한다'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소 다르게 돌아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다른 한 쪽은 무조건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주장하여 무죄 판결을 목표로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최근 발생하는 성범죄들은 형법 규정보다는 '성폭력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범죄들을 세밀하게 규정하고 처벌 수위도 훨씬 높여놓은 특별법이 바로 성폭력처벌법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성범죄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분들, 고소를 진행하신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실 '성폭력처벌법'에 대하여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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