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2268
#들어가며
최근 36주낙태브이로그 영상이 매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여성이 임신 사실을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가 36주차가 되어서야 이를 발견, 낙태를 하게 되었고, 이를 브이로그 형식으로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 여성은 아마도 '낙태죄가 위헌 결정을 받아 처벌받지 않으니 상관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36주낙태브이로그가 살인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수사에 착수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낙태는 여성의 권리이므로 주수에 상관없이 처벌해서는 안 된다.
vs
일정 주수가 지나면 엄연히 사람으로 평가해야하고, 보호함이 마땅하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과 함께 36주낙태브이로그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낙태죄는 언제 폐지되었을까?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잠정 적용 기한으로 정한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낙태죄는 사라졌습니다.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1)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2) 그 제한의 정도가 과하다(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낙태죄가 현실 속에서 실효적이지 않다는 점(처벌 여부와 상관 없이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처벌도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임신 주수에 상관 없는 모든 낙태 행위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외 사례를 들더라도 일정 주수를 기준으로 낙태죄의 처벌 가능성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입법자가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여 적절한 처벌규정을 마련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위 잠정 적용 기한 내에 별다른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현재 모든 낙태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냥 살인죄로 처벌하면 되는거 아냐?
그럼 낙태죄 대신 살인죄로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살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살해하였어야 합니다.
또한 판례는 '사람'의 범위에 대해서 산모가 출산을 위해 규칙적인 진통을 겪는 시점부터 태아가 '사람'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산모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태아로서 낙태죄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36주낙태 처벌 가능성은?
그렇다면 '36주낙태브이로그'는 아예 처벌할 수 없는 것일까요?
처벌할 수 없다면 수사기관은 왜 수사에 착수한 것일까요?
아마도 수사기관은 임신 36주에는 태아가 언제 태어나도 상관이 없는 상황으로서, 사실상 그 태아가 사람과 같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살인죄'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34주 태아를 낙태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법원 판례"가 있다고 합니다.
대법원 판례가 아닌 하급심 판례로 보이고, 아직 살인죄의 '사람'의 범위를 판단하는 데에 기준이 되는 판례는 아닐 것입니다.
처벌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미지수입니다.
낙태죄에 대한 입법이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은 '사람'의 범위에 대한 판례 변경을 통해
'태아'라는 생명에 대한 보호 범위를 넓혀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에서 정면으로 낙태와 살인의 범위에 대해 제대로 판단을 내려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사회 규범이 보다 구체화되고 변화해 갈 것입니다.
#번외
36주낙태브이로그의 처벌 가능성과는 별개로, 낙태죄의 부재와 원치않은 임신을 한 여성,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보호 체계가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임에 우려를 표하고 싶습니다.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아직까지도 처벌해야하는 낙태와 그렇지 않은 낙태에 대한 법적인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와 별개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에 대한 의료적 보호, 원치 않은 임신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 등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낙태 약물인 '미프진'은 해외에서는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불법입니다. 그러다보니 수술할 상황이 아닌 여성들은 불법적으로 약물을 구매해서 자신들의 '자기결정권'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매한 약물의 정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보니 이 여성들의 건강은 사실상 큰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아이들의 생명권, 이들의 건강 등 낙태죄를 둘러싼 모든 법익과 권리는 적절히 지켜져야 합니다.
이러한 권리들을 균형있게 보호하기 위한 적정선을 찾아 아이들과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부디 이번 36주낙태브이로그 사건을 계기로 그 사회적 논의가 다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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