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어떤 범죄 사건의 피의자가 술에 취해서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심신미약을 노리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습니다.
술에 취해서 범행을 하면 감형이 될까요?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것을 심신미약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술에 취했든, 약물을 투약했든, 정신질환에 의해서든 뭐가 뭔지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경우를 심신미약이라고 합니다.
그럼 먼저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소위 '필름이 끊긴 경우'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과연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다면 심신미약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없다는 것이 곧바로 심신미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 본 적 있죠? 술 진탕 마셨는데 너무 멀쩡해요. 멀쩡하게 얘기도 하고 친구들 다 택시 태워 보내고 집에 무사히 들어갔는데 근데 다음날 “야, 어제 뭐 실수한 거 없냐? 필름이 끊겼어.”라고 하는 경우요.
이렇게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음주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을 블랙아웃(Black out)이라고 합니다. 알코올이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활동을 저하시켜서 기억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뇌의 다른 부분이 정상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심신미약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따라서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법원이 무조건 심신미약으로 봐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피의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에요.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가 눈을 떠보니 모르는 남자와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에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실은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곧바로 심신미약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기억만 못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만취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면 어떨까요? 길가에 서 있는 전봇대와 씨름을 하는 정도가 된다면...?
그런 경우에는 심신미약이 인정될 수도 있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맨 정신에서 범행을 계획하고 결의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술에 취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범행을 한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나쁜 놈이겠어요?
여기에 대해서 "근데 그러면 일부러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는 걸로 악용하면 어떡하나요?"라는 의문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판례 리서치를 해봐도 최근에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이 된 예는 흔치가 않습니다. 실무적으로 거의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현재는 성폭력범죄 등의 사건에 대해서는 심신미약 감형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아예 법률로 정해놨기 때문에 더욱 더 인정되는 경우가 줄었고요.

즉 음주 만취라고 해서 법적으로 반드시 감형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아까 말한 대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경우보다는 조금은 죄질이 덜 나쁘다는 점을 이유로 형량을 정할 때 참작이 되기는 하죠. 성범죄 사건 등에서는 그마저도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이고요.
그리고 아까 악용 소지가 있냐는 부분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얘기를 하자면, 애초에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투약하는 경우에는 실제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어도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규정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actio libera in causa)’라고 하는데요, 범죄를 예견하면서 자의로 심신미약 상태를 야기하는 경우에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실 초범이라면 자기가 술을 마시면 심신미약 상태에서 사고를 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선처의 여지가 있지만 한번 그런 적이 있다면 애초에 술에 만취하는 것 자체가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재범을 하는 경우에는 지금보다 훨씬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무튼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긴 것만으로는 심신미약이 아니다. 만취한 경우에 심신미약이 인정될 수도 있으나 쉽지 않다. 다만 술에 취해서 우발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경우에는 형량에 어느 정도 참작은 될 수 있다는 정도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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