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재성 변호사입니다.
연인과 크게 다툰 다음 날 밤, 경찰관이 찾아와 서류 한 장을 건넵니다. "오늘부터 상대방 주거지 100미터 이내 접근과 전화·문자 연락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입니다." 당황한 마음에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직 판사가 승인한 것도 아니니, 사과 문자 한 통 정도는 괜찮겠지.'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경찰이 한 조치는 판사의 사후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인터넷에도 "법원의 사후승인을 받은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면 처벌된다"는 식의 설명이 적지 않게 돌아다닙니다.
대법원이 2026년 9월 3일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오늘은 긴급응급조치가 무엇인지, 대법원이 승인 전 위반을 왜 처벌된다고 보았는지, 그리고 통보를 받은 분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긴급응급조치, 누가 어떻게 내리나요
스토킹처벌법 제4조는 스토킹행위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루어질 우려가 있고 스토킹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을 요하는 경우, 사법경찰관이 직권 또는 피해자의 요청으로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이 피해자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그리고 전화·문자·메신저 같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입니다.
경찰은 조치를 한 뒤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후승인 청구를 신청하고, 검사는 조치가 있었던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지방법원 판사에게 승인을 청구해야 합니다(같은 법 제5조). 청구가 없거나 판사가 승인하지 않으면 경찰은 즉시 조치를 취소해야 하고요. 즉 경찰의 통보와 판사의 승인 사이에는 길게는 이틀 남짓의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왜 승인 전 위반도 처벌된다고 보았을까
이번 사건(대법원 2026. 9. 3. 선고 2026도100088 판결)의 피고인은 판사의 승인이 나기 전 단계에서 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항소심(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도 유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피고인은 승인 전에는 긴급응급조치의 효력이 없다는 취지로 상고했지만, 대법원 제1부는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이 든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스토킹처벌법 어디에도 판사의 사후승인이 있어야 비로소 긴급응급조치의 효력이 생긴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2) 처벌 조항인 제20조 제3항도 검사가 승인을 청구하지 않거나 판사가 승인하지 않은 경우만 처벌에서 제외할 뿐, 승인 전 위반을 제외하고 있지 않습니다.
3) 긴급응급조치는 당장 일어날 우려가 있는 스토킹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이므로, 대법원은 「지방법원 판사의 승인 전 단계에서도 긴급응급조치를 이행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그 가벌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핵심은 이행 의무가 생기는 시점입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찰관으로부터 조치의 내용과 불복방법 등을 고지받은 때부터 즉시 이를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위반 시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그렇다면 승인이 나지 않으면 모두 무죄일까요
판결 문언을 거꾸로 읽어 '나중에 판사가 승인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기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법 조문상 승인이 청구되지 않거나 기각된 경우는 처벌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통보를 받는 순간에는 알 수 없는 사정이고, 그 사이 보낸 연락은 별도의 스토킹행위로 평가될 위험이 큽니다.
더구나 2023년 법 개정으로 스토킹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되었습니다. 조치 위반은 이후 법원의 잠정조치나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불리한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지요. 이번 판결은 '고지받은 순간부터 지킨다'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당장 기억해 두실 것
1) 통보를 받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조치의 내용, 기간, 불복방법을 확인하고 서류를 보관하십시오. 사과나 해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직접 연락, 제3자를 통한 메시지 전달, SNS 댓글이나 '좋아요'까지 모두 멈추시는 것이 맞습니다.
2) 이미 연락을 하셨다면 고지받은 시각, 연락한 시각, 판사 승인 시각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십시오. 고지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고지 전의 연락은 아니었는지가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이 되거든요.
3)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되시면 위반으로 맞서지 마시고 법이 정한 불복 절차를 밟으셔야 합니다. 형사와 성범죄·스토킹 사건을 꾸준히 다뤄온 경험상, 초기 진술과 대응 방향이 이후 잠정조치·기소 여부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정리하며
이번 판결로 '판사 승인 전에는 효력이 없다'는 주장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긴급응급조치는 경찰관이 내용을 알려 준 그 순간부터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다만 고지 절차나 위반 행위의 성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개별 사정을 꼼꼼히 따져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긴급응급조치나 접근금지 통보를 받으셨거나, 이미 조치 위반으로 조사를 앞두고 계신 분이라면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먼저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안별로 적용 법리와 대응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문의 주십시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