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도시개발조합이 시행한 사업지에서 체비지를 사 둔 분들이, 조합 장부인 체비지대장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는 분쟁이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매수인분들 상당수는 “대금을 다 냈고 대장에도 내 이름이 올라 있으니 사실상 내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반대로 조합장 쪽은 “대장은 내부 정리용 장부일 뿐인데 이름을 지운 게 무슨 죄냐”고 맞섭니다. 그러다 같은 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는 정황까지 보이면, 매수인은 “이름을 지운 것 자체가 배임 아니냐”며 고소를 고민하게 됩니다.
대법원은 2022년 10월 14일 선고한 2018도13604 판결에서, 도시개발법에 따라 시행된 사업이라면 체비지대장 등재는 매수인 권리의 공시방법이 아니므로 조합장이 대장의 매수인 명의를 임의로 말소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이름을 지운 행위’만을 판단한 것이어서, 그 뒤에 실제 처분이 이어졌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체비지 매수인의 권리가 법적으로 무엇인지, 대장 명의 말소가 왜 곧바로 배임이 되지 않는지, 어떤 사정이 더해지면 처벌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체비지 매수인의 권리는 소유권이 아니라 조합에 대한 채권입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기 전의 체비지 매수인은 대장에 이름이 있어도 소유자가 아닙니다.
체비지는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가 사업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환지로 정하지 않고 보류지로 남겨 둔 토지 중 일부로 정한 땅입니다(도시개발법 제34조 제1항). 조합이 시행자라면 체비지를 팔아 사업비를 마련하는 것이 사업 구조의 일부이고, 시행자는 체비지 용도로 지정된 환지 예정지를 환지처분 전에도 사용·수익하게 하거나 처분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36조 제4항).
그러면 소유권은 언제 누구에게 넘어갈까요. 도시개발법 제42조 제5항은 체비지는 시행자가 환지처분이 공고된 날의 다음 날 소유권을 취득하되, 이미 처분된 체비지는 그 체비지를 매입한 자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매수인이 대금을 모두 냈거나 땅을 점유하고 있거나 대장에 이름이 올라 있더라도, 이전등기를 마치기 전까지는 소유자가 아닙니다.
과거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 시절에는 매수인이 토지를 넘겨받았거나 대장에 등재되면 소유권의 전신 격인 ‘물권 유사의 사용수익권’을 취득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행 도시개발법은 위 단서 규정으로 소유권 취득 시점을 분명히 했고, 대법원도 이 차이를 근거로 판단합니다.
환지처분 전 시행자로부터 체비지를 매수한 자 또는 그 전매수인이 자신의 매도인에 대하여 가지는 체비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의 권리는 모두 매매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으로서, 이를 행사하기 위하여 체비지대장에의 등재와 같은 공시방법이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18도13604 판결).
이 판결은 도시개발법상 체비지를 매수한 사람이 점유하거나 대장에 올라 있더라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 비로소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점도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6다233729 판결을 인용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매수인이 쥐고 있는 것은 ‘대장 속 이름’이 아니라 매매계약에서 나오는 이전등기청구권이라는 뜻입니다.
도시개발법상 체비지 매수인의 권리는 대장 기재에 기대는 권리가 아니라, 매매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입니다.
2. 대장에서 매수인 이름을 지운 것만으로는 배임죄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 임무위배, 구체적인 재산상 손해 위험이 모두 갖춰져야 성립합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합니다. 여기서 손해는 현실적으로 돈이 빠져나간 경우만이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하지만, 그 위험은 막연한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은 구체적·현실적인 위험이 야기된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단지 막연한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18도13604 판결).
2018도13604 사건은 도시개발조합의 조합장이 체비지를 3억 5천만 원에 전매받은 사람의 동의 없이 체비지대장에서 그 사람과 앞선 취득자의 명의를 말소했다는 이유로 배임 기소된 사안입니다. 원심은 대장 등재를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으로 보아 유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든 이유는 구체적입니다. 도시개발법에 따른 사업에서 전매수인은 자신에게 체비지를 판 사람에 대해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 채권적 청구권을 가질 뿐 조합과의 사이에 직접적인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대장 기재 여부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이름이 말소되었더라도 매수인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이 생겼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전매도인이 조합에 대해 이전등기청구권을 행사하는 것 역시 대장 기재와 무관하므로, 말소 사실이 법률상 특별한 의미나 효과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대장 명의를 지웠다는 사실만으로는 매수인의 권리에 구체적·현실적 위험이 생기지 않으므로, 배임죄 성립은 어렵습니다.
3. 이름만 지운 경우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경우는 평가가 다릅니다
배임 여부는 대장 기재가 아니라, 매매계약상 의무나 조합 재산을 저버린 처분이 있었는지에서 갈립니다.
앞의 판결이 판단한 것은 ‘대장 말소 행위’ 하나입니다. 말소와 함께, 또는 말소를 발판으로 같은 필지를 제3자에게 다시 매도하고 대금을 받거나 이전하려 했다면 사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경우에 형사 문제를 가르는 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매수인에 대한 관계입니다. 부동산 이중매매에서 판례는 매수인이 계약금에 더해 중도금까지 지급해 계약이 본질적인 이행 단계에 이르면, 매도인을 매수인의 재산 보전에 협력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보아 이중양도를 배임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체비지 매수인이 중도금 이상을 낸 상태에서 조합 대표자인 조합장이 같은 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면, 대장 말소와는 별개로 이 법리에 따른 검토 대상이 됩니다.
둘째는 조합 자체에 대한 관계입니다. 조합장은 조합 재산인 체비지를 조합 사업비 마련이라는 목적에 맞게 처분해야 하는 업무상 임무를 집니다. 정당한 절차 없이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값에 특정인에게 넘기거나, 대금을 조합 계좌가 아닌 곳으로 받아 가로챘다면 조합을 본인으로 하는 업무상배임이나 업무상횡령이 문제 됩니다. 이때는 매수인이 누구인지보다 조합 의사결정 절차와 대금 흐름이 쟁점입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이름이 지워졌다’는 사실 하나로 고소장을 쓰기보다, 지워진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추적합니다. 같은 필지에 새 매매계약이 있는지, 조합 의사록에 처분 결의가 있는지, 이전등기 서류가 오갔는지가 형사책임의 방향을 정합니다.
이름을 지운 행위 자체보다, 그 뒤의 이중 처분이나 조합 재산 유출이 배임 여부를 좌우합니다.
4. 임무위배 처분이 인정되면 조합장은 업무상배임으로 무겁게 처벌받습니다
조합장은 업무상 지위가 있어 일반 배임보다 형이 무겁고,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경법이 적용됩니다.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제2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조합장처럼 업무상 임무를 맡은 사람이 저지르면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배임이 적용되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이 무거워집니다. 배임죄는 미수범도 처벌됩니다(형법 제359조).
체비지는 필지 하나가 수억 원에 거래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 이득액이 곧바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구간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같은 법 제3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가능합니다. 같은 사업지에서 여러 필지를 반복해 처분했다면 조합을 피해자로 하는 포괄일죄로 이득액이 합산될 수 있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반면 앞서 본 2018도13604 판결의 사안처럼 말소만 있고 구체적인 손해 위험이 인정되지 않으면 배임은 성립하지 않으므로, 기소 이후 재판에서 다투는 지점도 결국 ‘손해 위험이 구체적·현실적이었는가’에 모입니다. 초범 여부, 반환이나 합의 여부는 성립 자체가 아니라 양형 단계에서 참작되는 사정입니다.
5. 고소와 민사 보전은 계약서와 대금 자료를 갖춘 뒤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대장 사본보다 매매계약·대금 지급·등기 자료가 사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체비지 관련 배임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 사업지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 ②고소인·피고소인 조사 → ③공소청(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공소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고소장에는 ‘대장 말소’가 아니라 말소 이후의 처분 행위와 그로 인한 손해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름이 지워진 것을 알게 됐다면, 감정적으로 조합장에게 항의하기 전에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비지 매매계약서, 대금 영수증, 계좌이체 내역을 정리해 누구와 계약했고 계약금·중도금·잔금을 어디까지 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체비지대장 열람으로 명의 말소 시점과 사유를 확인하고, 조합 이사회·총회 의사록과 같은 필지에 대한 이후 매매계약·등기 현황을 확보합니다.
환지처분 공고 여부와 소유권이전등기 가능 시기를 확인해, 조합 상대 소유권이전등기청구와 처분금지가처분 같은 민사 보전 수단을 형사 고소와 함께 설계합니다.
민사 쪽에서는 매수인의 권리가 매매계약에 기한 청구권이므로, 대장 기재가 아니라 계약과 대금 지급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형사 고소로 확보되는 수사기록은 이 입증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며
체비지 분쟁은 “조합에서 알아서 정리해 주겠지”, “대장에 이름이 있으니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지워진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다른 사람과의 계약이 진행 중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체비지를 사 둔 매수인 입장에서는 고소부터 서두르기보다, 계약서와 대금 자료로 내 권리를 증명하고 처분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대장 말소만으로는 배임 성립이 어렵다는 판례를 알고 접근해야 헛걸음을 줄이고 민사 보전을 놓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조합장으로서 문제 삼아지는 입장에서도 “대장은 내부 장부라 지워도 된다”는 말만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말소 이후에 어떤 처분이 있었는지, 조합 의결 절차를 거쳤는지, 대금이 어디로 갔는지에 따라 업무상배임 여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도시개발과 부동산 거래에서 비롯된 배임·횡령 사건에서 고소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사실관계 정리와 법리 선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애매하다면, 그게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체비지대장에서 제 이름이 지워졌는데 조합장을 바로 배임으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고소 자체는 가능하지만, 대법원은 도시개발법에 따른 사업에서 대장 명의를 말소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재산상 손해 위험이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말소 이후 같은 필지의 이중 처분이 있었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Q. 체비지대장에 올라 있으면 제 소유인가요?
A. 아닙니다. 도시개발법 제42조 제5항 단서에 따라 이미 처분된 체비지는 매수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 소유권을 취득합니다. 대장 등재나 점유만으로는 소유권이 넘어오지 않습니다.
Q. 대장에서 이름이 지워지면 제 매매계약도 효력을 잃나요?
A. 아닙니다. 매수인의 이전등기청구권은 매매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이고, 이를 행사하는 데 대장 등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계약서와 대금 지급 자료를 잘 보관해야 합니다.
Q. 조합장이 같은 체비지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았다면요?
A. 대장 말소 사건과는 별개로 이중매매에 따른 배임이나 조합 재산에 대한 업무상배임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중도금 지급 여부, 조합의 의결 절차, 대금 수령 경로가 판단의 핵심입니다.
Q.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른 사업지라면 결론이 같은가요?
A.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법 시절에는 대장 등재를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으로 본 판례 법리가 있었으므로, 먼저 그 사업이 어느 법에 따라 시행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Q.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같이 진행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형사 고소로 확보되는 수사기록이 조합을 상대로 한 이전등기청구나 손해배상 청구의 입증자료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처분금지가처분 같은 보전 조치와 함께 병행하는 전략이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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