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집주인이 실거주나 매매를 이유로 세입자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하면서, 이사비 명목의 합의금을 약속하는 일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세입자가 약속대로 짐을 빼고 열쇠까지 넘기고 나면, 합의금 지급을 미루다가 끝내 “그 합의는 무효”라고 돌아서는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세입자분들 중 상당수는 “집주인이 직접 문자로 준다고 했으니 믿고 나왔다”, “합의서에 도장까지 받았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신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마치고 나면 집주인은 “내가 착각해서 한 약속이다”, “그런 서류는 효력이 없다”며 버티고, 세입자는 이미 집을 내준 터라 협상 카드마저 잃은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민법은 계약이 무효가 되거나 취소될 수 있는 사유를 법에서 정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대법원도 이를 주장하는 쪽이 그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는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 왔습니다. 집주인이 “무효”라고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합의금 약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래에서는 집을 비워준 뒤 합의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집주인의 무효 주장이 어떤 요건을 갖춰야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지급을 받아내기 위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집을 비워주기로 한 합의금 약정은 구두로 해도 원칙적으로 유효합니다
합의금 약정은 계약이므로, 지켜야 할 쪽은 오히려 집주인입니다.
임대차가 끝나기 전에 집주인이 “이사비로 얼마를 줄 테니 집을 비워달라”고 제안하고 세입자가 이에 응했다면, 이는 세입자가 목적물을 반환하는 대신 집주인이 금전을 지급하기로 하는 쌍방의 약속, 즉 하나의 계약입니다. 민법상 계약은 당사자의 의사가 합치하면 성립하고, 계약서 같은 서면은 성립 요건이 아닙니다. 따라서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녹취, 구두 약속만으로도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주고 있고(제6조의3),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려면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세입자가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나가는 대가로 합의금이 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합의금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세입자가 법적으로 가진 권리를 내려놓는 데 대한 대가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약정을 뒤집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막상 집을 받고 보니 돈을 주기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나, 금액을 정확히 합의하지 않아 서로 기억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투는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든 법적으로는 약정이 성립했는지, 성립했다면 그 약정을 없앨 법적 사유가 있는지를 따로 따져야 하며, 약정의 성립은 청구하는 세입자가, 약정을 없앨 사유는 이를 주장하는 집주인이 입증해야 합니다.
합의금 약정은 구두나 문자로도 성립하며, 집주인이 마음을 바꿨다는 사정만으로는 효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2. 집주인의 “무효” 주장은 민법이 정한 사유를 입증해야만 통합니다
착오·사기·강박·불공정·대리권 없음, 이런 사유 외의 이유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집주인이 내세우는 이유는 보통 네 갈래로 정리됩니다. 첫째, “착각해서 한 약속”이라는 착오 주장입니다. 민법 제109조는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민법 제109조 제1항).
합의금 액수를 “시세를 잘 몰라서 많이 줬다”거나 “세입자가 곧 나갈 줄 알고 주기로 했다”는 사정은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 아니라 이른바 동기의 착오에 가깝고,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되어 계약 내용으로 되지 않았다면 취소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사비를 얼마 줄지는 집주인이 스스로 판단할 사항이어서, 금액을 잘못 계산한 것은 중대한 과실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특히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갱신 요구 여부를 두고 다툼이 있었고 이를 끝내기 위한 합의였다면 이는 민법상 화해계약에 해당할 수 있는데, 민법 제733조는 화해계약을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화해 당사자의 자격이나 화해 대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착오가 있다면 예외입니다.
둘째, 사기·강박 주장입니다(민법 제110조). 세입자가 허위 사실로 속였거나 겁을 줘서 서명하게 했다는 주장인데, 이 경우 속았거나 협박당했다는 사실은 취소를 주장하는 집주인이 증명해야 합니다.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하고(민법 제146조), 이미 합의서를 쓰고 한참 지나 이행을 요구받자 처음 문제 삼았다면 신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셋째,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는 주장입니다. 민법 제104조는 당사자의 궁박·경솔·무경험을 이용해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계약을 무효로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사비 수준의 합의금은 세입자의 권리 포기 대가로 통상 용인되는 범위여서, 이 조항이 적용되는 사례는 드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쟁점은 대리권입니다. 합의서에 서명한 사람이 집주인 본인이 아니라 가족, 관리인, 중개사라면 그 사람에게 대리권이 있었는지가 핵심이 됩니다. 대리권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본인에게 효력이 없지만(민법 제130조), 세입자가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표현대리(민법 제125조, 제126조, 제129조)로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동소유 주택이라면 소유자 전원 또는 과반수의 동의 여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무효를 주장하는 쪽이 사유를 입증해야 하고, 그 사유는 착오·사기·강박·불공정·대리권 등 법이 정한 경우로 한정됩니다.
3. 이미 집을 비웠다면 “동시이행” 항변은 통하지 않고, 증거 정리가 승패를 가릅니다
세입자가 먼저 이행을 마쳤다면, 이제 증명할 것은 약속의 존재와 금액입니다.
집주인이 자주 꺼내는 또 다른 방어가 “아직 이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쌍무계약에서는 상대방이 자기 채무를 이행하거나 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 채무를 거절할 수 있다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인정됩니다.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민법 제536조 제1항).
그러나 세입자가 이미 이사를 마치고 현관 비밀번호나 열쇠를 넘기는 등 점유를 집주인에게 돌려주었다면, 세입자는 자기 채무를 이행한 것이므로 집주인은 더 이상 동시이행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합의서에 “이사 당일 합의금을 지급한다”처럼 동시 지급 조건이 적혀 있었는데 집주인이 지급을 미루는 사이 세입자가 이사를 강행했다면 사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입자는 이행을 제공했고, 집주인이 이를 받아들인 이상 지급 거절의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별개로 임대차보증금 반환 문제도 정리해야 합니다. 보증금은 합의금과 별개의 채권이므로, 이사를 하면서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면 이사 전에 임차권등기명령(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을 신청해 등기를 마쳐야, 전입신고와 점유를 옮겨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합의금 액수와 지급 시기가 적힌 문자·카톡·이메일, 통화 녹취, 합의서와 신분증 사본, 중개사 진술, 이사 날짜를 보여주는 이삿짐센터 계약서와 관리비 정산 내역, 열쇠를 넘긴 사실이 드러나는 대화까지 시간순으로 모아야 합니다. 상대방과의 통화를 본인이 직접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집주인이 “줄 수 있다고만 했지 확정이 아니었다”고 다툴 때는 금액이 특정되어 있었는지, 지급 시기가 정해졌는지, 세입자가 그 약속을 믿고 이사 일정을 정했는지가 약정 성립의 핵심 판단 요소가 됩니다.
점유를 돌려준 세입자에게는 동시이행의 문제가 남지 않으며, 약정의 존재와 금액을 보여주는 증거가 소송의 중심이 됩니다.
4. 받을 수 있는 돈은 합의금에 지연이자가 더해지고, 의도적 기망이면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지급 시기를 넘긴 날부터 이자가 붙고, 처음부터 줄 마음이 없었다면 사기죄 검토 대상이 됩니다.
합의금 채권은 지급기일이 정해져 있다면 그 다음 날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면 이행을 청구받은 다음 날부터 지체책임이 생깁니다(민법 제387조). 약정 이율이 없으면 민법 제379조의 법정이율인 연 5%가 적용되고,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에 따라 연 12%의 높은 이율이 적용됩니다. 소멸시효는 민법 제162조에 따라 원칙적으로 10년이지만, 시효 걱정 이전에 증거가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 청구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합의금을 주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사기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 제347조 제1항의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야 성립하고,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처음부터 합의금을 줄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집을 비우게 할 목적으로 약속했다는 점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는 약속 직후의 태도, 다른 세입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퇴거시킨 정황, 집주인의 자력 등 정황을 모아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못 준 경우나 사정이 변해 안 준 경우는 민사 문제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민사 청구를 중심에 두고, 기망 정황이 뚜렷한 경우에 한해 형사 고소를 병행하는 전략이 맞습니다. 형사 고소가 합의금 지급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고소를 이유로 협박하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세입자가 공갈 문제로 몰릴 수 있으므로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5. 내용증명부터 지급명령, 소송, 가압류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회수 가능성은 절차 속도와 가압류 시점에서 크게 갈립니다.
실무에서는 보통 ①합의 내용과 지급 기한을 적은 내용증명 발송 → ②수원지방법원(관할이 맞는 경우 수원지방법원 관내 지원 포함)에 지급명령 신청 또는 소액사건 소 제기 → ③필요 시 집주인 부동산·예금 가압류 → ④판결 또는 확정된 지급명령에 기한 강제집행의 순서로 진행합니다. 금전 채무의 지급 장소는 별도 약정이 없으면 채권자의 현재 주소이므로(민법 제467조 제2항), 세입자의 주소지 법원에도 소를 낼 수 있습니다. 합의금이 3천만원 이하라면 소액사건으로 처리되어 비교적 빠르게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급명령은 민사소송법 제462조에 따라 금전 지급을 구하는 청구에 대해 법원이 서면만으로 발령하는 절차인데, 집주인이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면(제470조) 자동으로 정식 소송으로 넘어갑니다(제472조). 집주인이 처음부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면 이의신청이 거의 확실하므로, 처음부터 증거를 갖춰 소액소송으로 가는 편이 시간을 아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주인이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면 민사집행법 제276조에 따른 부동산·채권 가압류를 판결 전에 신청해 둘 수 있습니다. 소장을 내기 전 아래 순서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합의 사실을 확인해 주는 대화 기록·합의서·녹취를 날짜순으로 출력하고, 합의금 액수와 지급 시기가 드러나는 부분을 표시합니다.
세입자가 점유를 넘긴 날짜와 방식(열쇠 인도, 비밀번호 전달, 관리사무소 정산 등)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합니다.
집주인 소유 부동산의 등기부등본과 예금 채권 파악 자료를 확인해 가압류 대상과 순위를 정리합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가 있으면 집주인의 무효 주장에 하나씩 반박할 수 있고, 소송과 가압류를 동시에 준비해 실제 회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집을 비워주고도 합의금을 받지 못한 세입자분들은 “이미 나왔으니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대응을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자와 통화 기록은 흩어지고, 집주인의 재산도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합의금을 받지 못한 세입자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항의보다 약속을 입증할 자료를 갖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합의금 지급을 거절하려는 집주인 입장에서도 “무효”라는 말만으로 방어가 되지 않으며, 착오나 대리권 문제처럼 입증할 사유가 실제로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임대인과 임차인 양쪽의 분쟁과 사기·횡령 등 형사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합의서라도 문구와 증거 정리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합의금이 막혔다면 증거가 흩어지기 전, 가압류가 가능한 시점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합의서 없이 문자로만 주기로 했는데도 받을 수 있나요?
A. 받을 수 있습니다. 계약은 서면이 없어도 성립합니다. 금액과 지급 시기가 드러나는 문자, 통화 녹취, 이체 시도 내역 등이 있다면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Q. 집주인이 “착각해서 약속했다”며 취소하겠다는데 가능한가요?
A. 중요부분의 착오이고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09조). 단순히 금액을 잘못 계산했거나 동기를 오해한 정도는 취소 사유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Q. 집주인이 아닌 부동산 중개사나 가족이 합의서에 서명했는데 효력이 있나요?
A. 대리권이 있었거나, 세입자가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집주인에게 효력이 미칩니다. 위임장, 평소 거래 관행, 집주인의 추인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Q. 합의금을 못 받았는데 이미 이사를 갔으면 보증금도 못 받나요?
A. 보증금과 합의금은 별개 채권입니다. 보증금 반환이 지연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두어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Q. 지연이자는 얼마나 붙나요?
A. 약정 이율이 없으면 지급기일 다음 날부터 연 5%,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는 연 12%의 지연손해금이 적용됩니다.
Q.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처음부터 지급할 의사가 없었음이 입증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단순 불이행은 민사 문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먼저 민사 청구를 준비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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