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 선의로 시작한 신고가 역고소로 돌아오다
제가 상담했던 의뢰인은 한 콜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담당하다 몇 년 만에 퇴사한 40대 여성이었습니다. 재직 중 파트장으로부터 콜 처리 건수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질책성 메시지를 반복해서 받았고, 야간·주말 추가 상담을 사실상 강요받는 분위기 속에서 평가위원회 회부 통보와 콜 품질 개선프로그램 적용까지 이어지면서 심신이 몹시 지쳐갔습니다. 퇴사 후에도 당시 겪었던 일이 석연치 않았던 의뢰인은 관할 노동관서에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진정서에는 파트장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 캡처 자료가 첨부됐습니다.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동료 상담원들과 함께 쓰던 단체대화방에서, 상담원들이 서로 파트장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캡처해 공유해온 자료들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자체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야간 상담 독려나 질책성 메시지, 평가위원회 회부 같은 사정 자체는 일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콜센터 운영사 측은 의뢰인이 제출한 메시지 캡처 중 일부가 실제로는 의뢰인이 아니라 다른 상담원에게 보낸 메시지였다는 점을 들어, 의뢰인이 대화 상대방을 알아보기 어렵게 일부러 편집해 제출했다고 주장하며 무고, 업무방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선의로 시작한 신고가 형사사건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2. 황윤경 변호사의 조력 – ‘조작’과 ‘착오’를 가르는 지점을 찾다
상담에서 저는 먼저 문제가 된 메시지 캡처 자료가 어떻게 수집됐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의뢰인은 퇴사 전 같은 팀 상담원들과 함께 쓰던 단체대화방이 있었고, 그 방에서 동료들이 각자 파트장에게 받은 메시지를 캡처해 공유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파트장이 여러 상담원에게 같은 취지의 말을 1:1 메시지로 반복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보낸 메시지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 단체대화방 전체 대화 내역을 확보해 진정서에 첨부된 캡처 자료와 하나하나 대조했습니다. 그 결과 문제가 된 캡처 자료들은 의뢰인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동료 상담원들이 그 단체대화방에 업로드했던 캡처 그대로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즉 의뢰인이 편집하거나 조작한 것이 아니라,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로 공유돼 있던 자료를 가져다 쓰면서 착오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또한 의뢰인이 제출한 자료 중에는 대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캡처들도 섞여 있었는데, 그 부분에는 의뢰인이 스스로 출처를 표시해 제출했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숨기고 허위 자료를 꾸미려 했다면, 굳이 출처를 알 수 있는 자료까지 함께 낼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법리적으로는 세 혐의를 각각 나누어 다퉜습니다. 무고죄는 신고 내용이 객관적으로 허위라는 사실과, 신고인이 이를 인식했다는 고의가 모두 필요합니다. 저는 노동관서 조사 결과에서도 신고 내용의 기초가 된 사정, 즉 야간 상담 독려나 질책성 메시지, 평가위원회 회부 통보 자체는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을 들어, 애초에 '허위의 사실'을 신고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업무방해죄에 대해서는 위계, 즉 상대를 속이려는 적극적인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의도적 조작이 아니라 공유된 자료를 착오로 가져다 쓴 것에 가깝다는 점을 소명했습니다.
명예훼손 부분에서는 '공연성' 요건을 집중적으로 다퉜습니다. 진정서는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노동관서 조사관에게 제출된 것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이 있는 공개된 발언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아울러 운영사 측이 의심한 직장 평가 공유 사이트의 게시글에 대해서도, 의뢰인의 계정을 확인한 결과 해당 게시물 작성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3. 사건의 해결 – 무고·업무방해·명예훼손 모두 불송치(혐의없음)
경찰은 무고, 업무방해, 명예훼손 혐의 모두에 대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사기관이 중요하게 본 지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진정 내용의 기초가 된 사정 자체가 일부 사실로 확인되어 신고 내용을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문제가 된 캡처 자료가 의뢰인이 조작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올린 자료와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조사관에게 제출한 진정서는 명예훼손의 공연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의뢰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렵게 문제를 제기했던 일이 오히려 형사처벌로 돌아올 뻔한 상황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정당한 절차를 통한 문제 제기였다는 점을 확인받은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4. 이 사건의 핵심 쟁점 –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고 모두 무고는 아니다
이 사건은 세 가지 혐의가 한꺼번에 제기됐다는 점에서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신고나 진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신고 자체가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고죄는 신고 내용이 객관적으로 허위이고 신고인이 그 허위성을 인식했을 때 성립합니다. 조사 결과 법률상 요건이 인정되지 않았더라도, 신고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 자체가 일부라도 확인된다면 '허위 신고'로 보기 어렵습니다. 업무방해죄 역시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속이려는 의도, 즉 위계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명예훼손에서는 '공연성', 즉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었는지가 관건입니다.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공무원에게 제출한 진정서나 조사 과정에서의 진술은 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5.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역고소가 두렵다면 자료 정리부터
직장 내 문제를 신고하거나 진정을 제기하려는 분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역고소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기초해 성실하게 신고했다면,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신고 당시 제출하는 자료의 출처와 맥락을 정확히 정리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자료의 출처를 스스로 밝혀둔 부분들이 의뢰인의 선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가 됐습니다.
직장 내 문제로 신고나 진정을 고민하고 계시거나, 이미 역고소를 당해 걱정하고 계시다면, 당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제출했는지부터 차분히 정리해 상담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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