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사단법인에서 대의원회나 총회가 이사에게 불신임·해임 결의를 했는데, 해임당한 이사가 "정관에 그런 사유는 없다"며 효력을 다투는 분쟁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법인 쪽에서는 "이사는 위임받은 사람이니 언제든 내보낼 수 있다"고 믿고 결의부터 밀어붙였다가 결의 자체가 무효로 뒤집히는 일도 생깁니다. 결론은 정관에 이사의 해임사유가 규정되어 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이 글에서는 정관에 해임사유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법인이 이사를 어디까지 해임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해임결의가 무효가 되는 지점과 해임당한 이사가 취할 수 있는 절차를 정리하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법인과 이사의 관계 — 위임 유사 관계와 민법 제689조의 출발점
비영리 사단법인은 민법 제57조에 따라 반드시 이사를 두어야 하고, 이사는 제58조 제1항에 따라 법인의 사무를 집행하며 제59조 제1항에 따라 법인을 대표합니다. 이 이사를 누가 어떤 절차로 선임하고 내보내는지는 법률이 모두 정해두지 않고, 제40조 제5호가 "이사의 임면에 관한 규정"을 정관의 필수 기재사항으로 정해 법인의 자치에 맡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사 해임 분쟁은 언제나 정관을 먼저 펼쳐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정관에 아무 규정이 없을 때 적용되는 기본 틀은 위임입니다. 대법원은 법인과 이사의 법률관계를 신뢰를 기초로 한 위임 유사의 관계로 보고, 민법 제689조 제1항이 정한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사 해임에도 끌어옵니다. 이 규정은 임기가 남아 있어도 법인이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리한 시기에 해지하면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법인에는 출발점에서 해임의 자유가 있고, 이 자유가 정관으로 어디까지 좁혀졌는지가 쟁점입니다. 정관에 해임사유를 쓴 순간 법인은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에 묶입니다.
정관에 해임사유 규정이 없으면 법인은 원칙적으로 언제든 이사를 해임할 수 있고, 규정이 있으면 그 사유에 묶인다 — 분쟁의 첫 질문은 정관에 해임사유 조항이 있느냐이다.
정관에 해임사유가 있으면 — 대법원 2011다41741 판결의 법리
이 쟁점의 기준이 되는 판결이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41741 판결입니다. 서울의 한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사단법인)이 이사에게 불신임 결의를 한 사건인데, 대법원은 민법 제689조 제1항이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법인이 자치법규인 정관으로 이사의 해임사유와 절차를 따로 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정관에 이렇게 정해 둔 규정은 법인과 이사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이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의미도 함께 가지므로, 단순히 확인 차원의 주의적 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 글 제목의 결론입니다. 법인의 정관에 이사의 해임사유에 관한 규정이 있으면,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정관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유로는 이사를 해임할 수 없습니다. 해당 사건에서 정관은 직책보유조합원이 의무를 어겨 조합과 조합원에게 현저한 피해를 입힌 경우를 불신임 사유로 정하고 있었는데, 조합이 내세운 사유는 선거무효소송 상대방에게 자료를 제공한 일, 서울시 정책에 항의하는 진정서 제출과 1인 시위, 이사회에서의 욕설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행위들이 정관의 불신임 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중대한 의무위반이나 사무집행 불능을 인정할 자료도 없다며 결의가 무효라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판결이 불신임 결의를 해임과 같이 다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법인과 이사의 위임관계를 소멸시키는 징계라는 점에서 이름이 불신임이든 해임이든 실질이 같으면 같은 심사를 받습니다. 결의 안건의 명칭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정관의 제한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관에 이사 해임사유가 있는 법인은 중대한 의무위반·사무집행 불능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정관에 없는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 (대법원 2011다41741).
정관에 해임사유가 없으면 — 언제든 해임되지만 손해배상은 남는다
제목의 문장을 거꾸로 읽으면 오해가 생깁니다. 정관에 이사 해임사유 조항 자체가 없다면 위 판결의 보호 범위에 들어가지 않고, 민법 제689조 제1항의 원칙대로 법인은 임기 중에도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해임 사유를 따로 소명할 필요는 없고, 정관이 정한 결의 기관(총회, 대의원회, 이사회 등)이 정관과 민법이 정한 의결 정족수대로 결의하면 됩니다.
다만 해임의 자유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민법 제689조 제2항은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리한 시기에 해지했다면 손해를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를 받는 상근 이사를 임기를 몇 달 남기고 뚜렷한 사유 없이 해임했다면, 이사는 그로 인해 입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무보수 명예직 이사처럼 재산상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실무에서 이 청구가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해임 시점과 방식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은 법인 쪽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정관에 해임사유 규정 있음 — 그 사유와 절차에 맞아야 하고, 벗어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임결의 무효.
정관에 해임사유 규정 없음 — 위임 법리에 따라 원칙적으로 언제든 해임 가능, 불리한 시기의 해임은 손해배상 문제.
임기만 정한 경우 — 임기 규정은 해임사유 규정이 아니므로 임기 중 해임 가능 여부는 정관 전체 취지를 따져 판단.
예외 — 정관에 없는 사유라도 해임이 가능한 경우
대법원이 정관에 없는 사유의 해임을 완전히 막은 것은 아닙니다. 판결문이 "원칙적으로" 해임할 수 없다고 한 이유는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 등의 특별한 사정이라는 예외를 열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법인의 재산을 횡령하거나 법인에 대한 배임 행위를 한 이사, 장기간 행방불명이거나 중병으로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못하는 이사, 이사회 결의를 반복해서 정면으로 거부하며 법인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이사가 이 예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예외는 입증 책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법인이 정관 밖의 사유로 해임을 주장하려면 중대한 의무위반이나 사무집행 불능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증거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앞서 본 사건처럼 법인에 대한 비판적 행동, 내부 선거 분쟁에서 상대편에 선 행동, 회의 중 거친 언행은 법인 입장에서는 불쾌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중대한 의무위반이라고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비위가 의심된다면 해임부터 하기보다 정관상 징계·해임 사유 조항에 포섭할 수 있는지 먼저 따지고, 감사 보고서나 회계자료 같은 객관적 자료를 갖춰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해임결의가 무효가 되는 절차상 하자 — 소집, 정족수, 결의 기관
사유가 정당하더라도 절차가 어긋나면 결의는 무효 또는 취소의 대상이 됩니다. 사단법인의 사무는 민법 제68조에 따라 정관으로 이사나 임원에게 위임한 사항 외에는 총회의 결의에 의하는데, 이사 해임을 총회가 하는지, 대의원회가 하는지, 이사회가 하는지는 정관이 정한 대로 따릅니다. 정관이 총회 권한으로 정해 둔 사항을 이사회가 대신 결의했다면 결의 기관 자체가 잘못되어 무효 사유가 됩니다.
결의 방법은 제75조 제1항에 따라 본법이나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사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사원 결의권의 과반수로 합니다. 정관이 해임 결의에 3분의 2 찬성 같은 가중 요건을 두고 있다면 그 요건을 맞추지 못한 결의는 효력이 없습니다. 소집 절차에서는 소집 통지를 정관이 정한 기간과 방법으로 했는지, 안건으로 해임 건이 통지에 포함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통지에 없던 안건을 현장에서 긴급 안건으로 올려 의결한 경우가 대표적인 하자입니다. 결의권은 제73조에 따라 평등하고 서면이나 대리인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정관이 다르게 정하면 정관이 우선합니다.
결의 기관 — 정관이 이사 해임 권한을 어느 기관에 부여했는지 확인.
소집 통지 — 정관상 통지 기간·방법, 해임 안건이 통지서에 명시되었는지 확인.
정족수 — 정관에 가중 요건이 있는지, 없다면 제75조 제1항 기준(출석 과반수)을 충족했는지 확인.
해임 사유 사전 고지 — 정관이 소명 기회나 징계위원회 절차를 정했다면 그 절차 이행 여부 확인.
해임당한 이사가 취할 수 있는 절차 — 결의 무효 확인과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해임결의가 정관 사유나 절차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해임당한 이사는 법인을 상대로 해임결의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2011다41741 사건도 이사가 불신임 결의의 무효를 다툰 사건입니다. 소송에서는 정관 사본, 결의 당시 회의록, 소집 통지서, 해임 사유로 제시된 행위에 대한 자료를 중심으로 정관 사유 해당성과 절차의 적법성을 다투게 됩니다.
본안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 법인에서는 이미 후임 이사를 선임하거나 해임당한 이사를 배제한 채 업무를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공백을 막으려면 해임결의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하고 이사의 지위를 유지하게 하는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함께 신청합니다. 이사의 직무집행을 정지하거나 직무대행자를 선임하는 가처분이 내려지면 민법 제52조의2에 따라 주사무소 소재지 등기소에 그 사실이 등기됩니다. 반대로 법인 입장에서는 해임을 둘러싼 분쟁 기간에 이사가 없거나 결원이 생겨 손해가 날 염려가 있다면 제63조에 따라 법원에 임시이사 선임을 청구하는 길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관에 해임사유가 없으면 이사를 마음대로 해임해도 되나요?
A. 정관에 이사 해임사유 규정이 없다면 민법 제689조 제1항의 위임 법리에 따라 법인은 원칙적으로 임기 중에도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관이 정한 결의 기관과 의결 정족수를 지켜야 하고, 부득이한 사유 없이 이사에게 불리한 시기에 해임했다면 제689조 제2항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생길 수 있습니다.
Q. 정관의 해임사유가 "법인의 명예를 훼손한 때"처럼 추상적이면 어떻게 판단하나요?
A. 정관 조항을 해석해 이사의 구체적 행위가 그 사유에 포섭되는지를 법원이 판단합니다. 2011다41741 사건에서도 법인에 대한 비판 행동이나 거친 언행이 정관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듯이, 문구가 포괄적이어도 행위의 내용과 법인에 끼친 피해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따지게 됩니다.
Q. 불신임 결의는 해임결의와 다른가요?
A. 법인과 이사의 위임관계를 소멸시키는 효과가 있다면 불신임 결의도 해임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같은 법리가 적용됩니다. 명칭을 불신임으로 바꾼다고 정관의 해임사유 제한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Q. 해임결의가 무효로 확인되면 이사 자리로 바로 돌아갈 수 있나요?
A. 결의가 무효라면 해임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이 되어 이사의 지위가 유지됩니다. 다만 그 사이 임기가 만료되었다면 임기 만료 자체의 효과는 별도로 따져야 하고, 무효 판결이 나올 때까지의 공백은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등으로 미리 대비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Q. 정관에 없는 사유로 해임이 허용되는 "특별한 사정"에는 무엇이 있나요?
A. 판례는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을 예로 듭니다. 법인 재산의 횡령·배임, 장기간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사정이 대표적이며, 법인에 불리한 의견 표명이나 감정적 충돌 정도로는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Q. 해임당한 이사는 언제까지 소를 제기해야 하나요?
A. 이사 해임결의의 무효 확인은 별도의 제소기간이 법에 정해져 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임 이사가 선임되고 법인의 사무가 진행되어 다투기 어려워집니다. 결의를 알게 된 즉시 정관과 회의록을 확보해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맺음말
비영리 사단법인 이사 해임의 출발점은 정관입니다. 정관에 해임사유가 없으면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라 언제든 해임할 수 있지만 불리한 시기의 해임은 손해배상 부담이 생기고, 해임사유가 정해져 있으면 법인은 중대한 의무위반이나 사무집행 불능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관 밖의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습니다. 사유뿐 아니라 결의 기관, 소집 통지, 정족수까지 정관대로 갖춰야 결의가 효력을 유지합니다.
법인 쪽이라면 결의에 앞서 정관의 해임·징계 조항과 해임 사유를 뒷받침할 자료를 점검해야 하고, 해임당한 이사라면 정관과 회의록을 확보해 결의 무효 확인과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서둘러 검토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정관 문구 하나가 결론을 가를 수 있으니 조치를 하기 전에 정관부터 정확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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