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갚지 못한 사실만으로는 사기가 되지 않습니다."
오랜 지인이었습니다
의뢰인은 오래 알고 지낸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말에 차용증을 쓰고 1,000만 원을 건넸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계에도 함께 들어 있었고, 상대방은 그 계에서 계금 1,500만 원을 먼저 받아 갔습니다.
상대방은 계금을 받아 간 그날 이후로 계불입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는 동안 돌아온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의뢰인이 가진 것은 계좌 이체 내역과 오래된 대화뿐이었습니다.
사건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위와 같습니다. 금전거래가 시작된 시점, 차용금이 건너간 시점, 계금이 먼저 지급된 시점, 그리고 불입이 끊긴 시점이 각각 언제였는지가 이 사건의 전부였습니다.
돈을 갚지 않은 사실만으로는 사기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돈을 못 받으면 당연히 사기죄가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기망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 기망으로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돈을 건넸다는 인과관계까지 인정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후에 갚지 못하더라도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그칠 뿐 형사상 사기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채권자가 상대방의 신용 상태를 알고 있어 변제 지체의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라면, 이후 제대로 갚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편취의 범의를 단정할 수 없다고도 판시했습니다.
어느 쪽이 민사에 머물고 어느 쪽이 형사로 넘어가는지를 정리하면 위와 같습니다. 핵심은 돈을 받아 간 그 시점에 지킬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입니다.
한 덩어리였던 돈을 둘로 나눴습니다
상담 당시 2,500만 원은 한 덩어리로 섞여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를 계금과 차용금으로 분리한 뒤, 계금 부분에 화력을 집중했습니다.
차용금은 차용증과 이자 약정이 있었고 상대방이 변제 의사 자체는 다투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반면 계금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계에서 목돈을 먼저 받는 계원은 그 대가로 남은 회차의 계불입금을 성실히 납입할 의무를 집니다. 계금을 먼저 받으면 끝까지 불입하겠다는 약속이 곧 돈을 받아 가는 전제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 약속을 할 당시에 실제로 불입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대화 기록 전부를 날짜순으로 엮어 제출했습니다. 선별한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복원했습니다. 유리한 부분만 내면 맥락을 잘랐다는 반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금 수령 직후 불입이 끊긴 시점, 그 무렵 상대방이 부담하고 있던 다른 채무, 수령한 계금이 실제로 흘러간 곳을 함께 정리해 처음부터 계금만 챙길 의도였다는 점을 자료로 드러냈습니다.
경찰은 사기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사법경찰관은 계금 1,500만 원 편취 부분에 대해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5 제1호에 따라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법경찰관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합니다.
다만 송치는 수사기관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일 뿐, 그 자체로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이후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됩니다. 또한 형사 절차와 별개로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상 청구를 따로 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짚어둘 판례
금전거래와 계 사건에서 반복해서 인용되는 법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은 사기죄 성립 여부를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도6795 판결은 차용금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의 재력과 거래의 이행과정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한편 대법원 1987. 6. 23. 선고 86도2343 판결은 계원이 계불입금을 성실히 지급하지 않아 계의 기본약정을 파기한 경우 계주와 사이에는 정산 문제만 남는다고 보았습니다. 계에서 목돈을 먼저 받는 쪽의 불입 의무가 얼마나 기본적인 요소인지를 보여주는 판시입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전부 민사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갈린 지점은 하나였습니다. 섞여 있던 돈을 성격별로 나누고, 형사 책임의 문턱을 넘는 쪽이 어디인지 먼저 판단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료부터 사라집니다. 메신저 대화는 기기를 바꾸면 복원이 어려워지고, 계좌 거래내역도 은행마다 보관 기간이 다릅니다.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자료의 수명은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 계좌 이체 내역, 메신저 대화 전체, 계 명부와 불입 내역, 차용증과 이자 입금 기록은 가능한 빨리 한곳에 모아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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