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공용 PC에 남아 있던 험담
의뢰인은 우연히 켠 회사 공용 PC 화면에서 동료들이 자신을 두고 주고받은 조롱과 험담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업무 평가가 아니라 인신공격에 가까웠고, 의뢰인은 출근 자체가 어려워져 결국 휴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은 대화에 참여한 동료들을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아래 사례는 의뢰인 보호를 위해 일부 사실관계를 각색했습니다.
경찰은 사적 대화라며 불송치했습니다
수사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동료들끼리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여서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특정된 소수 사이의 대화라는 점이 판단의 근거였습니다. 많은 피해자가 이 단계에서 포기합니다. 그러나 불송치는 수사기관의 1차 판단일 뿐이고, 공연성 판단은 대화 상대의 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쟁점은 공연성, 즉 전파가능성이었습니다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와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모두 공연히 한 행위를 처벌합니다. 여기서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대법원은 소수에게 한 말이라도 그 말이 퍼질 수 있었다면 공연성을 인정해 왔습니다.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
다만 같은 판결은 제동장치도 함께 두었습니다. 특정한 소수에게만 말했다는 점은 공연성을 부정하는 유력한 사정이 될 수 있으므로 그 경우 전파가능성에 관하여는 검사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고, 전파될 위험을 용인하는 미필적 고의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법리는 모욕죄의 공연성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대법원 2022. 6. 16. 선고 2021도15122 판결). 결국 관계의 이름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 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지를 봅니다.
매체의 특성에서 전파가능성을 끌어냈습니다
저희는 먼저 경찰이 불송치 근거로 든 판례가 이 사건과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판례들은 배우자, 친척처럼 비밀 보장이 상당히 높게 기대되는 관계에서 오간 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이 사건의 대화는 업무용 사내 메신저에서, 여러 직원이 함께 쓰는 공용 PC에 로그인된 상태로, 자리에 앉은 사람이면 누구나 화면을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오갔습니다. 의뢰인이 그 화면을 보게 된 경위 자체가 이미 전파가능성을 보여주는 사정이었습니다.
발언을 하게 된 경위와 당시 상황, 내용과 방법, 행위자의 의도, 당사자들의 관계와 지위를 종합해 전파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 판례의 기준입니다. 저희는 그 기준의 항목 순서대로 의견서를 다시 구성하고, 수차례 면담으로 대화가 오간 시점과 열람 경위, 직원들의 좌석과 업무 동선까지 사실관계로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불송치 결론이 약식기소로 바뀌었습니다
결론은 뒤집혔습니다. 대화에 참여한 동료들은 모욕 및 명예훼손으로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약식기소는 정식 공판 없이 서면심리로 벌금형을 구하는 절차로, 혐의가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적 대화라는 한 줄의 변명으로 끝날 뻔했던 사건이, 매체의 특성과 열람 경위를 증명하자 처벌로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세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첫째, 대화 기록을 먼저 보전해야 합니다. 메신저 대화와 화면은 삭제되면 복원이 어렵습니다. 화면 전체가 나오도록 캡처하고, 확인한 날짜와 경위, 함께 본 사람을 메모로 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불송치 결정은 끝이 아닙니다. 고소인은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이 있으면 사법경찰관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야 합니다. 셋째, 기간 제한이 있습니다. 모욕죄는 친고죄여서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해야 하고(형사소송법 제230조),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서울 송파 법원 인근에서 형사 사건을 다루다 보면, 직장 내 험담 사건은 결국 공연성 하나에서 갈린다는 점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불송치 결정문에 적힌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거기 인용된 판례가 내 사건과 같은 구조인지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어떤 법리로 정리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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