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친 사고 가운데, 보행 신호가 깜빡이던 순간에 벌어졌다는 이유로 “이건 중과실이 아닐 수도 있다”며 상담을 요청하시는 운전자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상담한 운전자분들은 대체로 “분명히 보행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었다”, “보험도 들어 있으니 합의하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찰 조사가 시작되면, 신호가 깜빡였다는 사정은 운전자의 책임을 없애주지 않고 오히려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신호위반과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을 이른바 12대 중과실로 묶어 두고, 중과실에 해당하면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고 피해자와 합의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보행 신호가 깜빡이던 순간이었는지, 사고 장소가 횡단보도 안이었는지, 내 차의 신호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아래에서는 보행 신호가 깜빡일 때 보행자를 쳤다면 어떤 경우에 중과실이 되는지, 그리고 사고 직후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법 조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보행 신호의 녹색 점멸은 운전자가 진행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점멸 신호는 보행자에게 주는 지시일 뿐,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덜어주지 않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신호기 표시 규정을 보면, 보행신호등의 녹색 등화 점멸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보행자는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아니 되고, 횡단하고 있는 보행자는 신속하게 횡단을 완료하거나 그 횡단을 중지하고 보도로 되돌아와야 한다(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 2 보행신호등 규정).
이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점멸 신호는 보행자가 지켜야 할 행동 기준입니다. 점멸이 시작되기 전에 횡단보도에 들어선 보행자는 여전히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점멸 중에도 길을 건너는 중이라는 점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운전자에게 적용되는 규정은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입니다.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있으면 정지선)에서 일시정지해야 합니다. 이 의무는 “보행 신호가 몇 초 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보행자가 이미 횡단보도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합니다.
실무에서 운전자가 가장 많이 놓치는 대목이 여기입니다. 점멸 중이라 곧 신호가 바뀔 것으로 보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횡단보도에 접근하다가, 횡단을 마치지 못한 보행자나 노약자,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유형이 대표적입니다.
보행 신호의 점멸은 보행자에게 내려진 지시이고, 이미 횡단보도에 있는 사람 앞에서 멈출 운전자의 의무는 그대로입니다.
2. 횡단보도 안에서 친 사고라면 중과실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과실이면 보험에 들고 합의해도 형사처벌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은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업무상과실치상은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제4조에 따라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3조 제2항 단서의 열두 가지 예외에 해당하면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보행 신호가 깜빡이던 사고에서 문제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제1호 신호기의 신호를 위반한 경우입니다. 보행 신호가 점멸하는 시점에 내 차량 신호가 적색이었다면, 정지해야 할 곳에서 진행한 것이므로 신호위반이 됩니다. 둘째는 제6호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의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한 경우입니다. 차량 신호가 녹색이어도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면서 횡단보도를 지나다가 아직 건너고 있던 보행자를 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중과실에 해당하면 제4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종합보험 가입으로도 공소제기를 막을 수 없고, 피해자가 합의서를 써 주어도 검사가 기소할 수 있습니다. 합의는 처벌을 없애는 사유가 아니라 양형과 처분 수위에서 참작되는 사정이 됩니다.
결국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모입니다. 사고 지점이 횡단보도 안인지 밖인지, 그리고 사고 당시 내 차량 신호와 진행 방향이 무엇이었는지입니다.
횡단보도 안에서 사람을 쳤다면 보행 신호가 점멸 중이었다는 사정만으로 중과실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3. 보행자가 점멸 중에 건너기 시작했다면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보행자의 신호 위반은 운전자 책임을 없애지는 못해도 줄이는 사정으로 작용합니다.
사실관계가 “점멸 전에 이미 건너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 “점멸이 시작된 뒤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시행규칙상 점멸 중 횡단을 시작하는 것은 보행자 스스로 금지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운전자 쪽에서 다툴 수 있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고 지점이 횡단보도 밖이라서 제27조 제1항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운전자가 정상 신호에 따라 진행했고 보행자가 갑자기 나타나 회피할 수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은 형사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보행자의 과실이 크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운전자에게는 횡단보도 부근에서 보행자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해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살필 주의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 속도, 횡단보도까지의 거리, 보행자를 최초로 발견한 시점이 모두 증거로 평가됩니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보행자가 이미 횡단보도 중간까지 걸어 나와 있었다면,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주장은 영상으로 곧바로 반박됩니다.
보행자의 과실은 형사에서는 양형 사유로, 민사에서는 과실상계 비율로 반영됩니다. 형사 판단과 보험사의 과실비율 산정은 별개로 진행되므로, 한쪽 결과가 다른 쪽을 그대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점멸 중에 뛰어든 보행자라는 사정은 책임을 줄이는 사정이지, 책임을 없애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4. 피해 정도와 사후 조치에 따라 처분이 크게 달라집니다
치상이냐 치사냐, 사고 후 구호조치를 했느냐가 결론을 좌우합니다.
중과실에 해당하는 치상 사고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중과실치상으로 의율되어 앞서 본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범위에서 처벌됩니다. 실제로는 피해자의 진단 주수, 골절이나 뇌손상 같은 상해의 정도, 합의 여부, 동종 전력에 따라 약식기소로 벌금에 그치는 경우부터 정식재판에 회부되는 경우까지 편차가 큽니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치사 사건은 피해자나 유족과 합의했는지와 관계없이 공소제기가 가능하고, 금고형이 선택될 위험도 치상보다 훨씬 커집니다. 합의는 양형에서 가장 중요한 감경 요소이지만,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은 아닙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고 후 대응입니다. 사고를 내고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면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조치의무 위반을 넘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의 도주치상으로 처벌될 수 있고, 이 경우 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크게 올라갑니다. “가벼운 접촉이라 괜찮겠지” 하고 지나치는 것이 사건을 가장 크게 키우는 선택입니다.
행정처분도 따로 따라옵니다. 신호위반이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에는 벌점이 부과되고, 사람이 다친 인적피해에는 별도의 사고 벌점이 더해집니다. 벌점이 누적되면 면허 정지로 이어질 수 있어 생업 운전자에게는 형사 결과만큼 부담이 됩니다.
5.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사고 당일의 영상과 신호 자료 확보가 사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보행자 사고는 통상 ①사고 현장에서 구호조치와 112·119 신고 → ②관할 경찰서 교통조사팀 조사(수원 지역 사고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 ③검찰(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약식명령 또는 정식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경찰 조사는 첫 진술이 조서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점멸 상황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채로 단정적으로 진술하면 이후 영상과 어긋나 신빙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고를 낸 직후 운전자가 스스로 확인해 두면 좋은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 원본을 덮어쓰기 전에 별도 저장하고, 앞뒤 차량이나 인근 상가 CCTV 보관 기간이 지나기 전에 확보 요청을 해 둡니다.
사고 교차로의 신호 주기와 사고 시각의 보행·차량 신호 상태를 수사기관이 확인하는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하고, 내 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를 영상과 맞춰 봅니다.
피해자의 진단서 내용과 치료 경과를 확인하고, 보험사 접수와 별개로 형사 합의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정합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교통사고 형사 사건에 경험 있는 변호사와 함께 중과실 해당 여부, 보행자 과실, 합의 시점을 설계하면 약식 벌금과 정식재판, 불기소 사이에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치며
보행자 사고를 낸 운전자분들은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으니 내 잘못만은 아니다”라는 생각과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치신 보행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운전자의 신호 위반 여부와 사고 지점을 객관적 자료로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고, 합의 전에 진단서와 치료 경과, 보험 처리 범위를 함께 점검하셔야 합니다.
반대로 운전자 입장에서는 점멸 신호에 대한 주관적 기억보다 블랙박스와 신호 자료가 판단의 기준이 되므로, 조사 전에 영상과 진술이 맞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교통사고 사건에서 운전자 쪽과 피해자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점멸 신호 사고라도 사고 지점과 진행 방향 한 가지 사실이 처분 결과를 완전히 바꾸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중과실 여부가 걱정되신다면 첫 조사 전에 상황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시점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행 신호가 깜빡일 때 친 사고도 중과실인가요?
A. 횡단보도 안에서 이미 건너던 보행자를 쳤다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으로 중과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 차량 신호가 적색이었다면 신호위반으로도 중과실이 됩니다.
Q. 종합보험에 들어 있고 합의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A. 중과실에 해당하면 보험 가입이나 합의와 관계없이 기소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합의는 처분 수위와 형량을 정할 때 유리하게 참작됩니다.
Q. 보행자가 점멸 중에 건너기 시작했다면 제 책임이 없어지나요?
A.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행자의 신호 위반은 형사 양형과 민사 과실비율에 반영될 뿐, 운전자의 일시정지 의무와 전방주시 의무를 면제하지는 않습니다.
Q. 사고 지점이 횡단보도 바로 앞이었는데도 보호의무 위반인가요?
A. 횡단보도 밖에서 난 사고는 제27조 제1항의 횡단보도 보호의무 위반이 아닌 일반 업무상과실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실제 지점은 영상과 현장 사진으로 확정하므로 정확한 위치 자료가 중요합니다.
Q. 보행자가 다친 것 같지 않아 그냥 갔는데 문제가 되나요?
A. 문제가 됩니다.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면 도주치상으로 의율될 수 있고, 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크게 올라갑니다. 사고 직후 반드시 정차해 구호하고 신고해야 합니다.
Q. 경찰 조사 통보를 받았는데 변호사는 언제 선임해야 하나요?
A.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다. 첫 진술이 조서로 남아 이후 영상 분석과 맞춰 평가되므로, 신호와 속도에 대한 진술을 미리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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