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생각보다 적지 않게 듣습니다.
“꼭 크게 처벌 받았으면 하는 건 아닙니다. 제대로 사과를 받고 싶어요.”
고소를 결심했다면 당연히 상대방의 처벌을 바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조금 다를 때가 있습니다.
폭행이나 명예훼손, 사기처럼 피해자가 분명한 사건에서는 사건 자체만큼이나 그 이후 상대방의 태도가 오래 남기도 합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 “너도 잘못이 있지 않느냐”,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러냐”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겪은 일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합의금보다 먼저 사과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과는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인정하고, 그 행동으로 상대방이 겪은 일을 이해하며 책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반면 합의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피해 회복 방법과 금액,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 등을 당사자 사이에서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경우에 따라 합의금이 오가고 합의서나 처벌불원서가 작성되기도 합니다.
즉 사과는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고, 합의는 사건을 법적으로 정리하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과했다고 반드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들였더라도 별도의 피해 회복을 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합의했다고 해서 피해자가 상대방을 용서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합의에는 응했지만 사과를 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상담에서도 “돈 때문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합의금의 액수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 사절차는 범죄 여부와 책임을 판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원하는 사과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사건이 종결되고 합의서가 작성돼도 “결국 제대로 된 사과는 듣지 못했다”는 마음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이야기할 때도 '얼마를 주고받을 것인가'만 생각하기보다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 회복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더 이상의 연락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보다 보면 법적으로 사건이 끝나는 시점과 당사자의 마음에서 사건이 끝나는 시점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합의는 사건을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조금 다른 영역에 있습니다.
합의가 사건의 조건을 정리하는 과정이라면, 사과는 상대방이 겪은 일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얼마에 합의하고 싶으세요?”보다 먼저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기를 바라세요?”라는 질문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건의 끝은 처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피해 회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인정받고 사과를 듣는 순간이 사건을 정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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