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가 났거나 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타다 다쳤을 때, 보험사가 약관의 "무면허·음주운전 중 발생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일이 있습니다. 약관에 적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분이 많지만, 상해보험은 상법이 인보험에 관해 따로 보호 규정을 두고 있어 면책약관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약관은 문언 그대로 유효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법원이 면책약관의 효력을 어떻게 나누어 보는지, 그리고 지급 거절을 받았을 때 어떤 순서로 다퉈야 하는지 정리하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해보험 면책약관의 출발점 — 상법 제659조와 제663조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피보험자·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때에는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 상법 제659조 제1항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보험약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면허운전이나 음주운전 중 발생한 사고를 아예 면책사유로 열거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열거가 법이 정한 면책 범위보다 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법 제663조는 보험편의 규정을 당사자 간 특약으로 보험계약자·피보험자·보험수익자에게 불리하게 바꾸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법이 보호하는 범위를 약관으로 줄이면 그만큼은 효력이 문제됩니다.
상해보험은 사람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보험입니다. 상법 제739조는 상해보험에 관하여 제732조를 제외하고 생명보험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생명보험 쪽의 제732조의2 제1항은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계약에서는 사고가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에도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결국 보험자가 인보험에서 확실하게 면책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은 고의로 평가되는 경우에 가깝게 좁아지고, 과실이나 중과실로 평가되는 경우까지 약관으로 면책하려는 조항은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인보험인 상해보험에서는 보험사가 중과실을 이유로 면책하기 어렵고, 약관이 그 범위까지 면책을 정했다면 그 부분이 다툼의 대상이 된다.
대법원의 기준 —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과실로 평가되는 범위에서 무효
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27039 판결은 상해보험에 들어 있는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다룬 대표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인보험은 책임보험과 달리 정액보험이라 면책약관 해석이 책임보험과 같을 이유가 없고, 상법이 인보험의 면책사유를 제한해 중대한 과실로 생긴 사고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한 점을 짚었습니다. 또 무면허운전은 고의적인 범죄행위이긴 하지만 그 고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면허운전 자체에 관한 것이지 사망이나 상해를 직접 노린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무면허운전자 개인의 사고 가능성이 조금 높다는 정도는 보험 구성원 간 위험의 동질성을 깨뜨리지 않으며, 손해를 보상해도 보험계약의 선의성·윤리성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상해보험의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보험사고가 전체적으로 보아 고의로 평가되는 행위로 인한 경우뿐 아니라 과실(중과실 포함)로 평가되는 행위로 인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취지라면,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로 인한 사고에 관한 한 무효입니다. 예를 들어 면허가 취소된 줄 모르고 운전하다 커브길에서 미끄러져 다친 경우처럼 사고 자체는 운전상 과실인 사안이라면, 약관에 무면허 면책이 적혀 있어도 보험사가 그 조항만으로 지급을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음주운전 면책약관 — 자기신체사고 보험에도 같은 법리
음주운전에 관해서도 대법원은 같은 틀을 적용합니다. 대법원 1998. 4. 28. 선고 98다4330 판결은 자기신체사고 자동차보험(자손사고보험)의 음주운전 면책약관을 다루면서, 인보험에서는 음주운전이 고의적인 범죄행위이더라도 그 고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음주운전 자체에 관한 것이지 사망이나 상해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면책약관이 과실(중과실 포함)로 평가되는 행위로 인한 사고까지 포함하는 취지라면 그 범위에서는 무효이고, 보험사고가 단지 과실로 발생했을 뿐인 사건에서는 보험사가 음주운전 면책약관을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원심이 면책약관을 유효로 본 것을 대법원이 법리 오해라며 파기환송한 사안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면 성립하는 범죄이고, 수치가 높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상해나 사망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보험사는 술에 취한 정도, 사고 경위, 운전 태양을 근거로 "과실이 아니라 사실상 결과를 감수한 고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이 다툼이 실제 소송의 쟁점이 됩니다.
무면허·음주운전 자체에 대한 고의 — 판례상 이것만으로는 상해·사망에 대한 고의로 평가되지 않음.
과실·중과실로 평가되는 사고 — 면책약관이 있어도 그 범위는 무효, 보험금 청구 가능.
결과 발생을 인식하고 감수한 고의로 평가되는 사고 — 면책이 인정될 수 있는 영역.
입증 부담 — 면책사유를 주장하는 보험사가 고의 평가를 뒷받침할 사실을 대야 함.
면책약관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고가 법적으로 고의로 평가되는지 과실로 평가되는지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른다.
같은 무면허·음주 면책이라도 결과가 달라지는 보험 — 책임보험·손해보험과의 구분
주의할 것은 위 판례들이 인보험에 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1991. 12. 24. 선고 90다카2389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자동차종합보험의 대인·대물 등 책임보험 영역에 관하여는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유효하게 보았고, 97다27039 판결도 인보험의 약관 해석이 책임보험의 그것과 반드시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여 이 구분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내가 피보험자로서 다쳐 받는 보험금(상해·후유장해·사망 담보, 자기신체사고)과, 내가 가해자가 되어 상대방에게 배상하는 데 쓰는 보험(대인·대물)은 면책약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실제로 큰 차이를 만듭니다. 자기신체사고나 상해보험의 정액 담보는 위 법리에 따라 다퉈볼 수 있지만, 가해자로서 지는 배상책임에 대한 보험은 약관이 정한 면책·자기부담금 구조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입한 담보가 어느 유형인지, 약관 조항이 어디에 규정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보험사가 이길 수 있는 경우 — 고의로 평가되는 사고와 약관 문언
모든 면책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가 무효로 본 것은 약관이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까지 면책하는 부분이고, 사고를 전체적으로 보아 고의로 평가되는 경우는 상법 제659조 제1항에 따라 원칙대로 면책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스스로 위험한 결과를 인식하고 감수하며 일부러 도로 한복판이나 달리는 차량으로 뛰어드는 행동은 운전상 과실 문제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고의가 문제됩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무면허·음주 면책약관이 아니라 상법 제659조에 따른 고의 면책이 적용됩니다.
또 하나 살필 것은 약관의 문언입니다. 약관에 "무면허·음주운전 중 발생한 손해"라고만 되어 있다면 위 법리에 따라 무효가 되는 부분이 생기지만, 애초에 보험계약자·피보험자의 고의나 중과실 사고를 면책 사유로 정했다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다툼이 생깁니다. 보험사가 약관을 설명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면 상법 제638조의3이 정한 약관 교부·설명의무 위반 문제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보험금을 청구하기 전에 확인할 자료 — 사고 경위와 약관·증권
지급 거절 통지를 받았다면 감정적으로 다투기보다 자료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보험사는 대개 경찰 사고사실확인원, 음주측정 수치, 면허 상태 조회 결과를 근거로 면책 통지를 하는데, 이 자료들이 사고를 과실로 볼 수 있는지 고의로 볼 수 있는지를 정하는 재료가 됩니다. 사고 당시 도로 상황, 차량 상태, 안전운전 정도를 보여주는 블랙박스 영상과 현장 사진이 같은 이유로 중요합니다. 보험사의 지급 거절 사유서에 어떤 약관 조항과 어떤 사실이 적혀 있는지도 서면으로 받아둬야 합니다.
보험증권과 약관 — 면책 조항이 어느 담보(상해·자기신체사고·책임보험)에 걸려 있는지 확인.
교통사고사실확인원·사고 조서 — 사고 경위, 과실 정도, 음주 수치·면허 상태 확인.
블랙박스 영상·현장 사진 — 사고가 운전상 과실인지 결과 감수인지 판단할 재료.
지급 거절 통지서 — 보험사가 내세운 약관 조항과 사실관계를 서면으로 확보.
진단서·후유장해 진단·치료 내역 — 보험금 청구액 산정의 기초.
지급 거절을 받았을 때의 대응 순서 — 이의 제기부터 소송까지
보험사가 면책약관을 근거로 지급을 거절하면, 먼저 약관 조항의 유형과 사고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서면으로 확인한 뒤 판례 법리를 근거로 재검토를 요구합니다.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절차를 활용할 수 있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보험금 청구소송으로 넘어갑니다. 소송에서는 보험금을 청구하는 쪽이 보험사고 발생을 주장·증명하고, 면책사유는 보험사가 증명해야 하는 구조이므로 사고를 고의로 평가할 사유가 있다는 점은 보험사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 이후 다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음주 후 운전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사고 경위에서 결과를 감수했다는 취지의 표현을 하거나, 반대로 사실과 다르게 축소해 진술하면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형사절차가 진행 중이라면 형사 결과와 보험금 청구를 함께 고려해 대응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 상해보험금을 전혀 못 받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인보험의 음주운전 면책약관이 과실이나 중과실로 평가되는 사고까지 포함하는 취지라면 그 범위에서는 무효로 봅니다. 다만 사고가 고의로 평가되는 경우는 상법 제659조에 따라 면책될 수 있어 사안별로 판단해야 합니다.
Q. 무면허운전 중 다쳤는데 보험사가 약관을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다툴 수 있나요?
A. 상해보험이라면 다툴 여지가 큽니다. 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27039 판결은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로 인한 사고까지 면책하는 부분은 무효라고 보았습니다. 거절 통지서에 적힌 약관 조항과 사고 경위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Q. 내가 가해자로서 상대방에게 배상하는 보험도 같은 기준인가요?
A. 같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책임보험 영역에서는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유효하게 본 판결(1991. 12. 24. 선고 90다카23899 전원합의체)이 있고, 인보험은 책임보험과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가입한 담보가 인보험인지 책임보험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Q.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으면 고의로 평가되나요?
A. 수치가 높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상해나 사망에 대한 고의로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판례는 음주운전의 고의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음주운전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사고 경위에 결과를 감수한 정황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보험사가 약관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자가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계약자에게 설명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일정 기간 내에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다툼이 가능하므로, 가입 경위와 설명 여부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지급 거절을 받으면 바로 소송해야 하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저 거절 사유를 서면으로 확인하고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보험금 청구소송으로 넘어가며, 이 경우 사고 경위 자료와 약관 원문을 미리 갖춰 두어야 합니다.
맺음말
상해보험에서 무면허·음주운전 면책약관은 약관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인보험의 성격과 상법 제732조의2, 제739조를 근거로 과실로 평가되는 사고까지 면책하는 부분은 무효로 보고, 고의로 평가되는 사고와 책임보험 영역은 다르게 취급합니다.
결국 사고가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지, 가입한 담보가 어떤 유형인지, 약관 조항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지급 거절 통지를 받았다면 통지서와 약관, 사고 자료를 함께 놓고 판단하시길 권합니다.
보험사의 첫 거절이 곧 최종 결론은 아닙니다. 다만 사고 직후 진술, 블랙박스 영상, 보험증권처럼 시간이 지나면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자료가 있으므로, 거절 통지를 받은 뒤에는 이 자료들부터 갖춰 두는 것이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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