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돈이 갑자기 내 명의 통장에 들어와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은 "내 계좌에 들어왔으니 내 돈 아니냐"는 생각으로 그 돈을 인출해 쓰거나 다른 계좌로 옮겨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행위 하나로 사기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로 형사입건되는 사례가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미 계좌명의인이 이런 돈을 함부로 인출했을 때의 책임을 명확히 정리해 두었고, 접근매체를 넘긴 적이 있는지에 따라 죄책의 구조도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어떤 경우에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지급정지가 걸렸을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통장에 돈이 들어온 순간 벌어지는 일 — 계좌명의인이 '보관자'가 되는 이유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속은 피해자가 명의인의 계좌로 돈을 송금·이체하면, 그 송금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명의인과 피해자 사이에 전혀 없더라도 은행 실무상 계좌명의인은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그대로 취득합니다. 계좌에 찍힌 숫자만 보면 명의인의 재산처럼 보이지만, 그 실질은 원인 없이 들어온 돈이어서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이 지점이 형사책임의 출발점이 됩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이고, 여기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해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위탁관계는 반드시 계약으로 성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무관리 같은 법률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송금·이체의 원인이 없음에도 예금채권을 취득한 계좌명의인은 그 돈을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해야 할 지위에 있으므로, 판례는 이를 두고 명의인이 송금의뢰인을 위해 그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범이 검사를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고, 피해자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제3자 명의 계좌로 돈을 보내게 만든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계좌명의인이 그 사기 행각을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예금채권은 일단 명의인 앞으로 발생하고, 그 순간부터 명의인은 피해자에 대해 반환의무와 보관자 지위를 동시에 지게 됩니다. 계좌에 들어온 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그다음부터는 형사책임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된 돈을 반환해야 하는 이상, 그 돈은 송금의뢰인을 위해 보관하는 성격을 가진다 — 계좌 명의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형사책임의 출발점이 된다.
대법원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를 인정한 이유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사건이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자신 명의 예금계좌의 통장과 체크카드, OTP카드 등 접근매체를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겼고, 그 조직원은 검사를 사칭해 피해자를 속여 이 계좌로 돈을 송금하게 했습니다. 이후 피고인들은 별도의 접근매체를 이용해 그 피해금 중 일부를 임의로 인출했습니다. 원심은 사기방조와 횡령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횡령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다수의견의 논리는 앞서 본 보관자 지위 법리를 전기통신금융사기에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을 반환해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해 그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고,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판결은 이와 동시에,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가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밝혔습니다. 접근매체를 넘겨받은 사기범이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은 아니고,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는 형법상 보호할 만한 위탁관계가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중요합니다. 만약 계좌명의인 자신이 사기의 공범으로 인정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경우 명의인은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로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 자체가 없고, 그 돈을 인출하는 행위도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아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결국 사기방조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횡령죄 성립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셈입니다.
계좌명의인이 사기방조 등 공범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 임의 인출 시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 성립.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으로 인정되는 경우 — 인출행위는 사기범행의 실행행위, 별도 횡령죄 불성립.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어느 경우든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음.
'내 계좌에 들어온 돈'이라는 착각 — 무엇이 횡령의 실행행위가 되나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보관자 지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재물을 영득할 의사로 위탁의 취지에 반해 처분하는 실행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실행행위는 현금 인출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급정지가 걸리기 전에 서둘러 다른 계좌로 이체하는 행위, 받은 돈을 곧바로 소비해 버리는 행위, 그리고 반환을 요구받고도 이를 거부하는 행위까지 모두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영득의사는 위탁받은 취지를 벗어나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그 재물을 처분하려는 의사를 말합니다. 지급정지 통지가 오기 전에 돈부터 빼서 써버리는 경우는 영득의사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입니다. 반대로 "이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나중에 지급정지 통지를 받고 원인 없는 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이미 인출한 돈을 돌려주지 않고 버틴다면, 그 시점의 반환거부 자체가 새로운 횡령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인출 시점에 그 돈의 성격을 정확히 몰랐다는 사정은 고의 판단에서 다투어 볼 여지는 있어도, 나중에 원인 없는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의 태도까지 면책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계좌에 이상한 돈이 들어왔다면 성급하게 인출부터 하기보다, 입금 경위를 먼저 확인하고 필요하면 은행이나 수사기관에 문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경우와 단순 착오입금을 인출한 경우 — 사기방조 여부로 갈리는 죄책
실제 사건에서 계좌명의인의 상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통장·카드·OTP 같은 접근매체를 대가를 받고 넘겨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접근매체를 넘긴 적이 없는데 자신의 계좌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돈이 들어온 경우입니다. 두 경우 모두 계좌명의인이라는 사실만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형사책임의 구조는 상당히 다릅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경우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가 우선 문제 되고, 여기에 더해 그 접근매체가 실제 보이스피싱에 쓰였다면 사기방조죄 성립 여부가 함께 검토됩니다. 앞서 본 전원합의체 판결처럼 사기방조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계좌로 들어온 피해금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는 예비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만 남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반면 사기방조가 인정된다면 그 인출행위는 별도의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고, 사기방조죄로 흡수되어 평가됩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적이 없는 경우라면 애초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사기방조 문제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고, 순수하게 보관자 지위와 영득의사에 따른 횡령 성립 여부만 남습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명의인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더 까다로울 수 있어, 입금 경위와 인출 전후 정황을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방어의 핵심이 됩니다.
계좌 지급정지가 걸렸을 때 — 임의 인출 대신 해야 할 소명 절차
피해자가 신고하면 금융회사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3조에 따른 피해구제 신청이나 수사기관의 지급정지 요청을 받아, 같은 법 제4조에 따라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인정되면 지체 없이 해당 계좌 전부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해야 합니다. 지급정지 이후 금융회사는 명의인에게도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하는데, 이 통지를 받는 순간이 명의인 입장에서는 대응 방향을 정해야 하는 갈림길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임의로 다른 경로로 돈을 인출하려 시도하거나, 통지를 무시하고 이미 인출해 둔 돈을 그대로 쓰는 행동은 오히려 영득의사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지급정지 통지를 받은 즉시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에 입금 경위를 성실히 소명하고, 계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협조하는 태도는 나중에 고의를 다투는 데 유리한 자료가 됩니다.
지급정지 통지를 받으면 임의 인출·타 계좌 이체를 시도하지 말 것.
돈이 들어온 경위(누구에게 받았는지, 어떤 명목이었는지)를 정리해 둘 것.
이미 인출한 돈이 있다면 조기에 반환 의사를 밝히고 소명자료를 준비할 것.
수사기관 조사 요청에는 소명자료를 갖춘 뒤 임하는 것이 유리.
형량과 실제 처벌 — 형법 제355조 제1항의 법정형과 양형 요소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인정되면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선고형은 인출한 금액, 피해 회복 여부, 초범인지 여부, 접근매체를 대가를 받고 넘겼는지 등 여러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같은 횡령이라도 인출 즉시 전액을 반환하거나 공탁한 경우와, 이미 전부 소비해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는 양형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사실이 함께 드러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나 사기방조죄가 별도로 문제 되어 처벌 범위가 넓어질 수 있고, 반대로 접근매체를 넘긴 적이 전혀 없는 순수한 착오입금 유사 사안이라면 횡령죄 하나만 두고 다투게 됩니다.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금 공탁은 형사처벌 여부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정으로 고려됩니다.
"몰랐다"는 주장이 통하는 경우와 통하지 않는 경우
수사 단계에서 계좌명의인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방어는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횡령죄의 고의는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 사실 자체를 인식했는지가 아니라, 원인 없이 들어온 남의 돈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반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임의로 처분했는지에 있습니다. 즉 "보이스피싱인지는 몰랐지만 내 돈이 아닌 건 알았다"는 사정만으로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말로 입금 경위를 착오로 오인해 자기 돈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 예컨대 평소 거래 관계가 있던 상대방에게서 정산금이 들어온 것으로 합리적으로 오인했다면 고의를 다툴 여지가 커집니다. 실무에서는 접근매체를 대가를 받고 넘긴 전력이 있는지, 입금 직후 인출까지 걸린 시간, 지급정지 통지 이후의 태도 등을 종합해 고의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랐다는 주장 자체보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 정황이 있는지가 실제 결과를 가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는데도 횡령죄가 성립하나요?
A. 계좌명의인이 전기통신금융사기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더라도, 원인관계 없이 들어온 돈이어서 반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임의로 인출했다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입금 경위를 합리적으로 오인할 사정이 있었다면 고의 자체를 다투어 볼 여지는 남습니다.
Q. 접근매체를 팔았는데 사기방조로도 기소되면 횡령죄까지 같이 처벌받나요?
A. 사기방조죄가 인정되면 그 인출행위는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아 별도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다만 사기방조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예비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만 남을 수 있습니다.
Q. 지급정지가 걸리기 전에 이미 인출해서 다 써버렸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영득할 의사로 인출한 시점에 횡령죄는 이미 기수에 이르며, 그 이후 돈을 갚았는지는 형사책임 성립 자체보다는 양형에서 고려되는 사정입니다. 되돌려주기 어렵다면 피해자와의 합의나 공탁을 조기에 검토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Q. 명의인이 인출한 피해금을 사기범에게 넘겨줬다면 사기범에 대한 횡령은 성립하나요?
A. 대법원은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위탁관계로 보지 않아, 사기범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는 사기범에 대한 죄책일 뿐이고,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 성립 여부와는 별개입니다.
Q. 가족이나 지인에게서 받은 돈을 착오로 인출한 경우도 같은 법리가 적용되나요?
A. 원인관계 없이 잘못 들어온 돈이라는 점에서 보관자 지위 법리 자체는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착오송금은 대개 송금인 본인의 실수일 뿐 제3자의 기망이 개입되지 않아 사실관계와 정상참작 사유가 다르게 평가됩니다. 보이스피싱 사안은 피해자 외에 사기범이라는 제3자가 개입되어 있어 위탁관계와 죄책 판단이 더 복잡해집니다.
Q. 지급정지 통지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유리한가요?
A. 임의로 다른 방법으로 인출을 시도하기보다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에 입금 경위를 소명하고 조사에 협조하는 편이 고의를 다투는 데 유리합니다. 이미 인출한 돈이 있다면 조기에 반환 의사를 밝히고 진술 방향을 변호사와 함께 정리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맺음말
통장에 들어온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확립한 입장입니다. 접근매체를 대가를 받고 넘겼는지, 그로 인해 사기방조가 인정되는지에 따라 죄책의 구조는 달라지지만, 어느 경우든 "몰랐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지급정지 통지를 받았을 때 당황해서 임의로 손을 대기보다는, 입금 경위와 소명자료를 먼저 정리하고 대응 방향을 잡는 편이 결과적으로 유리합니다. 이미 인출한 돈이 있다면 반환이나 합의를 서두르는 것도 양형에서 의미 있는 사정이 됩니다.
수원지검이나 수원지방법원 관할에서 이런 사건으로 조사를 받게 됐다면, 사실관계부터 차분히 정리한 뒤 대응 방향을 잡아 나가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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