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의 유족은 흔히 '자살이니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지레 단정하고 절차 자체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군인 재해보상법은 자살이라 해서 무조건 공무상 재해에서 배제하지 않고, 공무와 관련된 사유로 정신질환이 발생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면 예외적으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할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예외가 인정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가 법조문만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한 법적 요건과 법원의 판단 기준, 그리고 유족이 실제로 준비해야 할 자료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공무상 재해란 무엇인가 — 군인 재해보상법의 인정기준
군인 재해보상법 제3조 제1호는 공무상 재해를 군인의 공무상 부상, 공무상 질병, 그로 인한 장해 및 공무상 사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같은 법 제4조 제1항은 이를 다시 공무상 부상, 공무상 질병, 그로 인한 장해, 공무상 사망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 유형별로 인정 요건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자살 사건에서 실제로 문제 되는 것은 제4조 제1항 제4호 다목이 정한 '공무상 부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입니다. 자살 자체를 공무상 사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살에 이르게 한 정신질환이 공무수행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공무상 질병인지, 그리고 그 질병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는지를 따지는 구조입니다. 법조문은 이 인과관계를 '상당한 인과관계'라는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무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법적으로 인정될 만큼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유형 중 공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공무수행 중 사망은 순직 상황이 비교적 명확한 반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사망과 공무 사이에 질병이라는 매개체가 하나 더 끼어 있어 인과관계 증명이 한층 까다롭습니다.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달리 발병 시점과 악화 원인을 객관적으로 특정하기 어렵고, 자살이라는 결과 자체가 본인의 의사에 따른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에, 심사기관도 법원도 이 유형의 사망을 가장 신중하게 다룹니다. 이 때문에 제4조는 별도로 제2항을 두어 고의에 의한 사망을 원칙적으로 재해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그 원칙을 무조건 관철하지 않고 단서로 예외를 규정해 두었습니다. 이 원칙과 예외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자살은 원칙적으로 공무상 재해가 아니다 — 그러나 단서가 있다
군인 재해보상법 제4조 제2항 본문은 군인이 고의로 부상·질병·장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공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통상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른 고의적 행위로 평가되기 때문에, 이 조항만 놓고 보면 자살로 인한 사망은 공무상 재해에서 곧바로 제외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대법원도 자살이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공무로 인해 생겼고 그것이 자살의 동기나 원인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곧바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러나 같은 항 단서는 이 원칙에 중요한 예외를 둡니다. '공무와 관련한 사유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고의로 한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의 경우에는 공무상 재해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살이 형식적으로는 본인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선택하는 인식능력과 판단능력 자체가 공무로 인한 질병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더는 순수한 의미의 '자유의사에 의한 고의행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를 법률에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이런 예외가 판례로만 형성돼 있는 것과 달리, 군인 재해보상법은 이를 법률과 시행령에 직접 규정해 두었다는 점에서 근거가 한층 명확합니다. 이 예외 규정이 실제로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는 시행령이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 — 시행령이 정한 네 가지 경우
군인 재해보상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은 법 제4조 제2항 단서가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네 가지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해야 비로소 예외 인정의 문턱을 넘습니다.
공무수행 또는 공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
공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치료 중인 사람이 그 부상·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가혹행위 또는 업무과중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
위 세 경우에 준하는 행위로서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국방부장관이 인정하는 행위
이 네 유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겹칠 수 있습니다. 가령 선임병의 반복된 폭언과 과중한 업무로 우울증이 발병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면, 제3호와 제1호가 함께 인정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료 기록이 전혀 없더라도 구타·폭언·가혹행위나 업무과중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정황상 증명되면 제3호만으로도 예외가 인정될 수 있어, '병원 진료 기록이 없으니 안 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제4호는 앞의 세 유형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사정이라도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국방부장관이 인정하면 예외를 적용할 수 있게 한 보충 규정으로, 심사 실무에 재량의 여지를 남겨 둔 조항입니다.
자살이 예외적으로 공무상 재해가 되려면, 그 자살이 공무로 인한 정신질환 때문에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시행령이 정한 네 유형 중 하나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법원이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 — '사회평균인'이 아니라 '그 사람' 기준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였는지는 법조문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결국 법원이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합니다.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은 이 판단 기준을 종전의 '사회평균인'에서 '그 사람 본인'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즉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그 정도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사망한 그 군인 개인의 신체적·심리적 상황과 그를 둘러싼 구체적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었다는 사정이 오히려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근거로 쓰이지 않도록 하는 방향의 판단 기준입니다.
같은 판결은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고려할 구체적 요소도 제시합니다. 자살자가 겪은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인 증상, 요양기간과 회복가능성 유무, 나이와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던 주위 상황, 그리고 자살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07두2029 판결 역시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하면 된다고 밝혀, 정신의학적 진단명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 판결의 법리는 군인 재해보상법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판단 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인정되는가 — 가혹행위가 없어도 가능한 이유
실무에서 흔히 오해하는 지점은 구타나 폭언 같은 눈에 보이는 가혹행위가 있어야만 예외가 인정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시행령 제3조 제1항 제3호는 '구타·폭언·가혹행위 또는 업무과중'을 나란히 열거하고 있어,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이 없어도 업무과중만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 이르렀다면 예외 요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진급 이후 지휘책임과 보고업무가 급격히 늘어나거나, 인력 부족으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을 장기간 떠맡은 상황에서 우울 증상이 발병해 악화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법원 역시 자살자 개인의 취약성, 군 생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소속 부대의 부적절한 대처 등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더라도 그것들이 종합적으로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를 이룬다면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려 왔습니다.
기존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본 '그 사람 본인' 기준에 따르면, 개인적 소인이나 기존 병력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자동으로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관건은 군 복무라는 공무수행이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자살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한 원인 중 하나로 상당한 정도로 작용했는지이며, 이는 신병교육대 적응 단계에서 발병한 경우든 장기복무 중 발병한 경우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판단 방식입니다. 반대로 군 복무와 무관한 개인사나 가정불화가 자살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사정이 뚜렷하다면, 공무와의 상당인과관계는 부정될 수 있습니다.
순직유족연금과 국가유공자 인정은 별개의 절차다
군인 재해보상법 제4조에 따라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유족은 같은 법 제7조가 정한 급여, 즉 순직유족연금이나 순직유족연금일시금, 사망보상금 등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무상 사망 해당 여부는 곧바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법 제5조에 따라 국방부에 설치된 군인재해보상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국방부장관이 결정합니다. 유족이 제8조에 따라 지급을 청구하면 국방부장관이 요건을 확인한 뒤 심의회 심의를 거쳐 결정·지급하는 절차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혼동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군인 재해보상법상 공무상 재해 인정은 국방부 소관의 급여 절차일 뿐이고,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순직군경·재해사망군경 등록은 국가보훈부가 별도로 심사하는 전혀 다른 절차입니다. 두 법률이 요구하는 인과관계 판단 법리는 유사하지만 심사기관과 절차, 제출서류가 다르기 때문에, 군인 재해보상법상 재해보상이 불승인되었다고 해서 국가유공자 등록까지 자동으로 포기할 필요는 없고, 반대로 재해보상이 인정되었다고 국가유공자 등록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유족은 두 절차를 각각 별도로 신청해야 원하는 보상과 예우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정을 받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기록과 증언
예외 인정 여부는 결국 정황증거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있다면 가장 직접적인 자료가 되지만, 없더라도 인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생활관 동료나 선임·후임의 진술서, 지휘관과의 면담기록, 상담관·병영생활전문상담관 상담일지, 근무일지상 과중한 업무나 당직 빈도, 진급이나 보직 변경 전후의 업무량 변화 등이 모두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통상 헌병대나 군검찰의 변사사건 수사, 국방부 조사본부나 자체 감찰의 경위조사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이 조사기록에 담긴 부대 내 언동·근무여건에 대한 진술은 유족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자료인 경우가 많아, 정보공개청구나 유족 조력 절차를 통해 확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유서가 있다면 그 내용도 판단 자료가 되지만, 유서에 군 생활의 어려움이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다른 증거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부 군인재해보상심의회에서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 불승인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즉 공무상 재해 불인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심의회가 검토한 자료를 그대로 재제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진료기록·진술서·근무기록을 다시 정리해 시행령 제3조 제1항 각 호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짚어 주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본 대로 법원은 의학적으로 명백한 증명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의 상당인과관계로 판단하므로, 단편적인 정황이라도 전체적으로 일관된 서사로 재구성해 제시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서에 군 생활의 어려움이 적혀 있지 않으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나요?
A. 유서는 여러 판단 자료 중 하나일 뿐이고 결정적 요건은 아닙니다. 유서에 다른 이유가 적혀 있거나 유서 자체가 없더라도 진료기록·동료 진술·근무기록 등 다른 정황증거로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Q. 정신질환 진료 기록이 전혀 없어도 인정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군인 재해보상법 시행령 제3조 제1항 제3호는 구타·폭언·가혹행위·업무과중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경우를 별도로 인정하므로, 진료기록이 없어도 부대 내 정황증거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진료기록이 없으면 입증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Q. 원래 우울증 등 정신질환 병력이 있던 군인이 자살한 경우도 인정되나요?
A. 판단 기준이 '사회평균인'이 아니라 '그 사람 본인'이므로, 기존 병력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자동으로 부정되지 않습니다. 군 복무가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자살의 원인 중 하나로 상당한 정도 작용했는지가 관건입니다.
Q.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으면 국가유공자 신청도 포기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등록은 국가보훈부가 별도로 심사하는 절차이므로, 재해보상 불승인과 무관하게 따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Q. 불승인 결정을 받으면 어떻게 다퉈야 하나요?
A. 국방부 군인재해보상심의회의 불승인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이나 공무상 재해 불인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이때 진료기록·진술서·근무기록을 시행령이 정한 유형에 맞춰 재정리해 제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자살을 시도했다가 목숨은 건지고 후유장해가 남은 경우도 대상이 되나요?
A. 그렇습니다. 군인 재해보상법 제4조 제1항 제3호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한 장해도 공무상 재해에 포함하므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해 상해를 입은 경우 장해급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맺음말
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은 원칙적으로 고의에 의한 사망으로 취급되어 공무상 재해에서 제외되지만, 공무와 관련한 정신질환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군인 재해보상법과 시행령이 정한 예외에 해당해 공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판단은 사회평균인이 아니라 그 군인 본인을 기준으로 하고, 의학적으로 명백한 증명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의 상당인과관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포기할 사안은 아닙니다.
관건은 진료기록이 없더라도 진술서·근무기록·조사자료를 통해 공무와 정신질환, 그리고 정신질환과 사망 사이의 흐름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느냐입니다. 재해보상 인정과 국가유공자 등록은 별개 절차이므로 두 절차를 모두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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