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을 서줬다가 채권자로부터 갑자기 이행청구를 받으면, 보증인은 그저 주채무자 대신 돈을 내줘야 하는 처지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주채무자가 계약을 취소하거나 해제할 수 있는 권리를 아직 가지고 있다면, 보증인은 그 권리가 살아있는 동안 채권자에게 이행 자체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거절권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그리고 보증인이 직접 취소권이나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민법 제435조가 정한 보증인의 이행거절권이 어떤 요건에서 인정되고, 어느 시점에 소멸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보증채무의 부종성 — 이행거절권이 인정되는 이유
보증채무는 주채무와 별개의 독립한 채무가 아니라, 주채무의 존재를 전제로 성립하고 존속하는 부종성을 갖습니다. 민법 제428조는 보증인이 주채무자가 이행하지 않는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뒤집어 말하면 주채무 자체가 무효이거나 소멸하면 보증채무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주채무가 처음부터 무효였거나 취소·해제로 소급하여 소멸한다면, 보증인이 부담하던 채무도 존재 기반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아직 행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채무가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취소권과 해제권은 권리자가 의사표시를 해야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형성권이어서, 주채무자가 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이 자동으로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이 공백 상태에서 채권자가 보증인에게 이행을 청구해오면 보증인은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어지는데, 이를 메우기 위해 민법이 별도로 마련한 규정이 제435조의 이행거절권입니다.
보증채무는 주채무에 부종하지만, 취소권·해제권은 아직 행사되지 않은 형성권이어서 주채무 자체는 유효하게 존재한다 —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제435조의 이행거절권이다.
민법 제435조의 요건 — "취소권 또는 해제권이나 해지권이 있는 동안"의 의미
민법 제435조는 "주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취소권 또는 해제권이나 해지권이 있는 동안은 보증인은 채권자에 대하여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 조문이 요구하는 요건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주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취소권·해제권·해지권 중 하나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고 있을 것.
그 권리가 아직 소멸하지 않고 계속 존속하는 상태일 것.
채권자가 보증인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한 상황일 것.
여기서 핵심은 "있는 동안"이라는 문언입니다. 이는 이행거절권이 영구적으로 채무를 소멸시키는 항변이 아니라, 주채무자의 형성권이 살아있는 기간에 한정된 연기적 항변이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사기로 인한 의사표시의 취소권은 제146조에 따라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고, 이 기간이 지나면 취소권 자체가 소멸합니다. 취소권이 사라지는 순간 그에 기대고 있던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함께 소멸하므로, 보증인은 이 시간적 한계를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행거절권은 채무를 영구히 없애는 항변이 아니라, 주채무자의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존속하는 동안에만 인정되는 연기적 항변이다.
항변권 원용(제433조)과 이행거절권(제435조)의 차이 — 형성권을 보증인이 대신 행사할 수 없는 이유
민법 제433조는 보증인이 주채무자의 항변으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항변은 동시이행항변, 소멸시효 완성 항변처럼 그 사실만으로 채권자의 청구를 막을 수 있는 방어수단입니다. 그런데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은 단순한 항변이 아니라 권리자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효력이 생기는 형성권이고, 형성권은 원칙적으로 그 권리자인 주채무자에게 전속되어 타인이 대신 행사할 수 없습니다. 보증인이 마음대로 "이 계약은 취소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민법은 제433조와는 별도로 제435조를 두어, 보증인이 형성권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근거로 이행을 거절할 수 있게 하는 절충적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무적으로 이는 보증인이 소송에서 "주채무자의 계약은 무효다"라거나 "이미 해제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할 수 없고, "주채무자에게 아직 취소하거나 해제할 수 있는 권리가 남아있으니 그 사이에는 나에게 이행을 청구하지 말라"는 방식으로만 방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계약을 최종적으로 취소하거나 해제할지는 여전히 주채무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보증인은 주채무자의 취소권·해제권을 대신 행사할 수 없다 —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행을 거절하는 것뿐이다.
적용 예 — 사기로 인한 취소권이 있는 매매대금채무를 보증한 경우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A가 B로부터 상가를 매수하면서 잔금 지급채무를 C가 연대보증했다고 가정합니다. 계약 체결 후 B가 상가의 권리관계를 허위로 고지한 사실이 드러나 A에게 사기로 인한 의사표시 취소권이 발생했습니다. A가 아직 취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B가 보증인 C에게 잔금 지급을 청구해왔다면, C는 A의 취소권이 살아있는 동안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B로서는 A를 상대로 계약이 유효함을 주장하며 이행을 구할 수는 있어도, 보증인 C에게 곧바로 잔금을 받아낼 수는 없는 셈입니다.
다만 이 방어는 취소권이 실제로 존속하는 동안만 유효합니다. A가 기망 사실을 알고도 잔금 일부를 지급하거나 상가를 계속 사용하는 등 취소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하면 법정추인에 해당해 취소권 자체가 소멸하고, 그 순간 C의 이행거절권도 함께 사라집니다. 보증인 입장에서는 주채무자가 취소권을 실제로 행사할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이미 추인에 해당하는 행동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방어의 성패를 가릅니다.
주채무자에게 취소 사유(사기·강박·착오 등)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
취소권 제척기간(추인 가능일로부터 3년, 법률행위일로부터 10년)이 남아있는지 확인.
주채무자가 취소 사유를 알고도 이행하는 등 법정추인 행위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
적용 예 — 채무불이행으로 해제권이 발생한 계약채무를 보증한 경우
해제권이 문제되는 상황도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이 공사를 부실하게 이행해 도급인에게 계약 해제권이 발생했는데, 도급인이 아직 해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급인이 도급인의 잔여 공사대금 지급채무를 보증한 보증인에게 대금을 청구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보증인은 도급인의 해제권이 존속하는 한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해제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이 자동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권리가 살아있는 동안 보증인이 대금을 먼저 지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제435조의 취지입니다.
여기서 채권자가 이 상태를 무한정 방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제권 행사 기간을 계약이나 법률로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채권자는 민법 제552조에 따라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해제권자(도급인)에게 해제권 행사 여부의 확답을 최고할 수 있고, 그 기간 안에 해제 통지가 없으면 해제권 자체가 소멸합니다. 이 최고 절차를 활용하면 채권자는 보증인의 이행거절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확실한 상태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해제권 행사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채권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최고할 수 있고, 그 기간 내 해제 통지가 없으면 해제권은 소멸한다 —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그와 함께 끝난다.
이행거절권이 소멸하는 시점 — 제척기간 도과, 최고, 포기
보증인의 이행거절권은 그 근거가 된 주채무자의 형성권이 사라지면 자동으로 함께 소멸합니다. 소멸 사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취소권의 제척기간(제146조) 도과 —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법정추인 또는 명시적 포기 — 취소 사유를 알고도 이행하는 등의 행위로 취소권 소멸.
해제권 행사 여부의 최고(제552조) 후 기간 내 미행사 — 해제권 소멸.
주채무자가 실제로 취소·해제·해지 의사표시를 하여 계약관계가 확정적으로 정리된 경우 — 더는 "있는 동안"이 아니므로 제435조가 적용될 여지가 사라짐.
채권자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보증인의 이행거절 항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주채무자를 상대로 최고 절차를 활용해 형성권 행사 여부를 조속히 확정 짓는 것입니다. 형성권이 소멸하는 순간 보증인의 방어 근거도 함께 사라지므로, 청구가 무한정 지연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행거절권은 그 근거인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소멸하면 함께 소멸한다 — 채권자는 최고 절차로 그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연대보증에도 그대로 적용되나 — 최고·검색의 항변권과 구별
민법 제435조의 이행거절권은 보증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단순보증과 연대보증 모두에 적용됩니다. 이는 부종성에서 비롯된 방어수단이지, 보증인이 주채무자보다 먼저 청구받지 않을 권리인 최고·검색의 항변권(제437조)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제437조 단서는 보증인이 주채무자와 연대하여 채무를 부담한 경우, 즉 연대보증인에게는 최고·검색의 항변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채권자가 주채무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연대보증인에게 청구해도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435조의 이행거절권은 이와 별개로, 부종성의 연장선에서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연대보증인이라 해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실무에서는 종종 "연대보증을 섰으니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종성에 근거한 항변인 제433조의 주채무자 항변 원용권, 제434조의 상계권 원용, 제435조의 이행거절권은 연대보증 여부와 무관하게 살아 있다는 점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대보증인에게는 최고·검색의 항변권만 배제될 뿐, 부종성에 근거한 이행거절권(제435조)은 단순보증과 다르지 않게 인정된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증인이 주채무자 대신 취소권이나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나요?
A. 아니요,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은 형성권으로서 그 권리자인 주채무자에게 전속되어 보증인이 대신 행사할 수 없습니다. 보증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권리가 존재하는 동안 채권자에게 이행을 거절하는 것뿐이며, 계약을 취소하거나 해제할지는 여전히 주채무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Q. 이행거절권을 행사하려면 소송에서 따로 주장해야 하나요?
A. 그렇습니다. 이행거절권은 요건이 갖춰졌다고 자동으로 채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가 이행을 청구할 때 보증인이 항변으로 원용해야 효력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소송이라면 답변서나 준비서면에서 주채무자에게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증명해야 합니다.
Q. 주채무자가 취소권을 포기하면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사라지나요?
A. 네, 주채무자가 명시적으로 취소권을 포기하거나 취소 사유를 알고도 채무를 이행하는 등 법정추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면 취소권 자체가 소멸하므로, 그에 기대고 있던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함께 사라집니다. 보증인 입장에서는 주채무자의 태도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연대보증인도 이 이행거절권을 쓸 수 있나요?
A.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고·검색의 항변권은 연대보증인에게 인정되지 않지만,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을 근거로 한 이행거절권은 부종성에서 비롯된 별개의 권리여서 단순보증과 연대보증을 가리지 않고 적용됩니다.
Q. 채권자가 이행거절권을 무력화할 방법은 없나요?
A. 있습니다. 해제권처럼 행사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 채권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주채무자에게 해제권 행사 여부를 최고할 수 있고, 그 기간 안에 해제 통지가 없으면 해제권 자체가 소멸합니다. 취소권 역시 제척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하므로, 채권자로서는 그 시점을 기다리거나 최고 절차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Q. 취소권 등이 소멸한 뒤에는 보증인이 다시 이행해야 하나요?
A. 그렇습니다.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제척기간 도과나 최고 절차, 포기 등으로 소멸하면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함께 소멸하므로, 채권자는 다시 보증인에게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보증인은 이를 거절할 근거를 잃게 됩니다.
맺음말
보증인은 주채무자가 가진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채권자에게 이행 자체를 거절할 수 있지만, 이는 그 형성권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근거로 한 방어일 뿐입니다. 취소권의 제척기간 도과, 법정추인, 해제권 행사 여부의 최고처럼 그 권리가 소멸하는 순간 보증인의 이행거절권도 함께 끝난다는 시간적 한계를 놓치면 안 됩니다.
보증을 서준 뒤 채권자로부터 이행청구를 받았다면, 주채무자의 계약관계에 취소·해제·해지 사유가 남아있는지부터 확인해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특히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보증 관련 분쟁을 겪고 있다면 계약서와 주채무자의 이행 상황을 함께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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