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전체 금액 중 일부만 먼저 소송으로 청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송비용 부담을 줄이거나 승소 가능성을 먼저 가늠해보려는 목적, 또는 소멸시효가 임박해 우선 일부라도 청구해두려는 목적에서인데, 이때 나머지 금액을 나중에 별도로 청구할 수 있는지는 소장에 '일부청구'라는 사실을 어떻게 표시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판결이 확정된 뒤에야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나머지 채권을 영영 받지 못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명시적 일부청구와 그렇지 않은 일부청구가 기판력과 소멸시효에서 어떻게 다르게 취급되는지, 나머지 금액을 지키려면 소장 작성 단계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일부청구란 무엇인가 — 채권 일부만 골라 청구하는 소송
일부청구란 금전이나 그 밖의 가분채권 중 전체가 아니라 특정 부분만을 소송상 청구금액으로 정해 소를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대여금 1억원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장에는 우선 3천만원만 청구금액으로 적어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굳이 전체 금액을 한 번에 청구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인지대·송달료 등 소송비용을 우선 줄여보려는 경우, 상대방의 자력이나 사실관계 다툼의 강도를 가늠하기 위해 시험적으로 일부만 청구해보는 경우, 채권 전체 금액을 아직 정확히 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확실한 부분만 청구하는 경우 등이 흔합니다.
소멸시효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일부청구가 자주 쓰입니다. 채권 전체 금액을 정산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이 시효가 완성될 위험이 있다면, 우선 일부 금액만이라도 소를 제기해 시효를 중단시켜 두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일부만 청구해 판결을 받은 뒤, 나머지 금액을 다시 청구하려 할 때 벌어집니다. 앞선 판결의 기판력이 나머지 부분에까지 미친다면, 채권이 실제로 남아 있어도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 갈림길을 가르는 것이 바로 '일부청구임을 명시했는가'입니다.
왜 "명시했는지"가 갈림길이 되나 — 소송물과 기판력의 관계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심판하는 대상, 즉 소송물은 원고가 소장의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통해 스스로 특정합니다. 민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은 "확정판결은 주문에 포함된 것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진다"고 정하는데, 여기서 주문에 포함된 것이란 결국 그 소송에서 심판의 대상이 된 소송물을 가리킵니다. 즉 판결의 기판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애초에 그 소송의 소송물이 얼마로 특정되어 있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일부청구에서는 바로 이 지점이 애매해집니다. 채권자가 소장에 3천만원을 청구금액으로 적었을 때, 이 3천만원이 '채권 전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채권 중 우선 청구하는 일부'를 의미하는 것인지가 소장의 문구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명시설을 취합니다. 원고가 일부청구임을 명시한 경우에는 그 명시된 부분만이 소송물이 되어 판결의 기판력도 그 부분에 한정되고,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청구금액이 곧 채권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기판력도 채권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입니다.
소송물이 채권 전부인지 일부인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도 정해지지 않는다 — 판례는 이를 원고가 '일부청구임을 명시했는가'로 가른다.
명시적 일부청구, 잔부에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 이유
대법원 2016. 7. 27. 선고 2013다96165 판결은 당사자가 전체 손해 가운데 일부만을 청구한다는 점을 명시한 경우, 그 소송에서 확정된 판결의 기판력은 소가 제기되지 않은 나머지 청구 부분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소송물이 애초에 명시된 일부에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법원의 심리와 판단 역시 그 일부의 존부와 범위에만 미치고, 나머지 부분은 아직 재판을 거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법리에 따르면, 채권자가 1억원 채권 중 3천만원만 명시적으로 일부청구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7천만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소를 제기해 다시 다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그 채권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전제에서의 이야기이고, 앞선 소송에서 채권의 발생 원인이나 액수 자체가 다투어져 배척된 부분이 있다면 그 판단이 사실상 뒤의 소송에서도 유력한 증거나 쟁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다시 재판받을 길 자체가 막히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판례의 핵심입니다.
어느 정도 표시해야 "명시"로 인정되나
그렇다면 소장에 무엇을 어떻게 적어야 '명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판례는 이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채권 전체 액수를 특정한 뒤 그 가운데 일부만 청구하고 나머지에 대한 청구는 유보한다는 취지까지 명확히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고, 청구하는 손해나 채권의 범위를 잔부와 구별해 법원이 그 심리 범위를 측정할 수 있는 정도로 표시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실무에서는 청구원인에 전체 채권이나 손해의 산정 근거를 함께 기재하면서 "그중 일부인 금 ○○원을 우선 청구한다"거나 "전체 손해액 중 일부금 ○○원을 청구하며 나머지는 추후 청구를 유보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넣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청구원인에 전체 채권·손해액을 함께 적시하고 그중 일부만 청구금액으로 구분해 기재
"일부청구", "우선 청구", "잔부는 별도 청구 유보" 등 잔부의 존재를 드러내는 표현 사용
단순히 청구금액만 적고 그 근거·전체 규모를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 명시로 인정받기 어려움
표시가 불분명하면 법원이 석명을 통해 원고의 의사를 확인하기도 함
실제로 대법원 2023. 10. 12. 선고 2020다210860 판결은 원고의 청구가 일부청구인지, 그렇다면 향후 청구를 확장할 의사가 있었는지가 불분명한 사안에서 법원이 이를 그대로 넘기지 않고 석명권을 행사해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소장 문구가 애매하면 뒤늦게 법원의 석명에 따라 결론이 좌우될 수 있으므로, 애초에 소장 단계에서 표시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명시하지 않은 일부청구 — 잔부청구가 막히는 이유
반대로 일부청구임을 명시하지 않은 채 소장에 일정 금액만 청구금액으로 적었다면, 그 금액이 곧 채권 전부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 경우 소송물은 '채권 전체'가 되고, 확정판결의 기판력도 채권 전체에 미칩니다. 나중에 사실은 그 금액이 더 큰 채권 중 일부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나머지를 별도로 청구해도, 이미 채권 전체에 대해 확정판결이 내려진 상태이므로 그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결과가 특히 뼈아픈 것은 원고가 실제로는 더 큰 손해나 채권을 갖고 있었던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 손해액이 5천만원인데 소장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3천만원만 청구금액으로 적어 승소했다면, 나머지 2천만원은 명시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는 청구할 수 없게 됩니다. 채권 자체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소송법상 다시 재판받을 길이 막힌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돈을 받을 방법이 없어진다는 점에서는 실질적으로 같습니다. 청구금액을 정할 때 전체 규모를 가늠해보고, 조금이라도 유보할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그 사실을 소장에 남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멸시효 중단은 어디까지 — 명시적 일부청구와 시효
일부청구는 기판력뿐 아니라 소멸시효 중단의 범위에서도 별도로 문제 됩니다. 민법 제168조 제1호는 재판상 청구를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정하고 있는데, 일부청구를 한 경우 이 시효중단 효력이 채권 전체에 미치는지, 아니면 명시적으로 청구한 부분에만 미치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대법원 1975. 2. 25. 선고 74다1557 판결은 하나의 채권 중 일부에 관하여만 판결을 구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하여 소를 제기한 경우, 소 제기로 인한 시효중단의 효력도 그 일부에 관하여만 발생하고 나머지 부분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이 원칙에는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소장에서 일부만 청구하면서도 소송이 진행되는 경과에 따라 장차 청구금액을 확장할 뜻을 표시하고, 그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실제로 청구금액을 확장한 경우에는 소를 제기한 당초 시점부터 채권 전부에 관하여 시효중단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봅니다. 반대로 그러한 확장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거나, 표시는 했더라도 실제로 확장하지 않고 소송이 그대로 끝났다면, 확장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는 확정적인 시효중단 효력이 인정되지 않고 소 제기 시점의 '최고'로서의 효력만 인정될 수 있습니다. 결국 시효가 임박한 상태에서 일부청구로 시효를 중단시키려 한다면, 단순히 소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확장 의사를 함께 밝혀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명시적 일부청구의 시효중단 효력은 원칙적으로 청구한 부분에만 미치고, 나머지까지 중단시키려면 청구금액을 확장할 뜻을 밝히고 실제로 확장해야 한다.
실무에서 자주 벌어지는 실수 — 대여금·손해배상 사례
대여금 청구에서 흔히 벌어지는 실수는, 정확한 이자·지연손해금까지 계산하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원금 일부만 청구금액으로 적으면서 별다른 설명을 소장에 남기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나중에 이자나 나머지 원금을 별도로 청구하려 하면, 앞선 판결이 채권 전체에 대한 것으로 취급되어 막힐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사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치료비 등 일부 손해 항목만 우선 청구하면서 위자료나 향후 치료비, 일실수입 등을 나중에 추가로 청구할 계획이었다면, 그 계획을 소장 청구원인에 명확히 남겨두어야 합니다.
반대로 명시를 제대로 해둔 덕분에 나머지를 지킨 사례도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소장 청구원인에 "전체 손해액은 산정 중이며, 우선 확인된 치료비 상당액만 일부 청구하고 나머지 손해는 추후 청구를 유보한다"는 취지를 기재해두면, 이후 후유장해가 확정되거나 추가 손해가 발생했을 때 별도의 소송으로 이를 청구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소액이라도 우선 확실한 부분부터 청구해 승소 판결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자료를 보완해 청구하려는 전략을 쓸 때는 이 명시 여부가 전략의 성패를 가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머지 금액을 지키려면 지금 확인할 것
이미 소를 제기했거나 소를 제기하려는 단계라면, 지금 시점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장의 청구원인에 전체 채권·손해 규모와 그중 일부만 청구한다는 취지가 구별되어 기재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미 제출한 소장에 이런 표시가 없다면, 소송이 진행 중인 동안 준비서면을 통해 청구가 일부청구라는 점과 그 범위를 명확히 밝혀두는 것이 뒤늦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소멸시효가 임박한 상황이라면 단순히 일부 금액을 청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구금액을 확장할 뜻이 있다는 점까지 함께 밝혀두어야 나머지 부분의 시효중단 효과를 온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미 판결이 확정된 뒤라면, 그 판결의 소장과 청구원인을 다시 살펴 일부청구임이 명시되어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명시가 되어 있었다면 나머지 금액에 대해 별도의 소를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고, 명시가 없었다면 그 판결의 기판력이 채권 전체에 미쳤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다른 접근이 필요한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부청구를 하면서 "일부청구"라는 단어를 소장에 반드시 써야 하나요?
A. 반드시 그 단어 자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 채권·손해의 규모와 그중 일부만 청구한다는 취지가 법원이 심리 범위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구별되어 드러나 있으면 명시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표현이 모호하면 다툼의 여지가 남으므로, 명확한 문구로 남겨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Q. 손해배상 소송에서 치료비만 먼저 청구했는데 나중에 위자료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치료비 청구가 전체 손해 중 일부를 명시적으로 청구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그 판결의 기판력은 청구되지 않은 위자료나 다른 손해 항목에는 미치지 않아 별도로 청구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애초에 위자료를 포함한 전체 손해액과 그중 일부만 청구한다는 취지가 소장에 구별되어 있었는지가 관건입니다.
Q. 소장에 전체 채권액을 적어놓고 그중 일부만 청구금액으로 기재하면 자동으로 명시적 일부청구가 되나요?
A. 그런 경우가 명시적 일부청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 금액과 청구금액이 구별되어 있고 심리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의 표시가 있는지를 법원이 개별적으로 판단합니다. 표시가 애매하면 법원이 석명을 통해 원고의 의사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Q. 일부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확정판결을 받은 뒤 나머지를 청구하면 상대방이 다시 다툴 수 있나요?
A. 앞선 판결의 기판력이 나머지 부분에는 미치지 않으므로 상대방은 채권의 존부나 액수를 다시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선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나 법적 판단이 뒤의 소송에서도 유력한 자료로 참작될 수 있어, 앞선 소송의 심리 내용이 나머지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Q. 일부청구를 하면 소멸시효는 채권 전체에 대해 중단되나요?
A. 원칙적으로 명시적으로 청구한 부분에 대해서만 시효중단 효력이 발생합니다. 다만 소송 진행 중 청구금액을 확장할 뜻을 밝히고 실제로 소송 종료 전에 청구금액을 확장했다면, 소를 제기한 시점부터 채권 전부에 대해 시효중단 효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이미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청구인지 표시가 애매하다면 지금이라도 방법이 있나요?
A.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라면 준비서면 등을 통해 일부청구라는 점과 그 범위를 명확히 밝혀두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미 판결이 확정되어 버렸다면 그 소장과 청구원인에 명시 여부가 어떻게 기재되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 대응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맺음말
일부청구는 소송비용을 아끼거나 리스크를 나눠보려는 실용적인 선택이지만, 그 대가로 나머지 금액을 지킬 수 있는지가 소장의 표현 하나에 좌우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명시적으로 일부청구임을 밝혔다면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청구한 부분에 한정되어 나머지를 별도로 청구할 길이 열려 있지만, 그런 표시 없이 일부만 청구했다면 채권 전체에 대해 재판을 받은 것으로 취급되어 나머지를 다시 청구할 수 없게 됩니다. 소멸시효 중단의 범위 역시 같은 논리로 갈립니다.
소장을 작성하는 단계, 혹은 이미 진행 중인 소송의 준비서면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이 표시를 놓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수원지방법원 관할의 대여금·손해배상 사건처럼 채권 규모가 확정되기 전에 소송을 서둘러야 하는 경우가 많은 지역에서는, 청구금액을 정하는 단계부터 일부청구 여부와 그 표시 방법을 함께 검토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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