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상담을 하다 보면, 정작 신고와 처벌 여부를 두고 부모님의 생각과 피해 아동 본인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경우를 자주 마주칩니다.
상담을 요청하시는 부모님들 중에는 “제가 부모니까 대신 결정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애가 뭘 알겠어요, 제가 합의해주면 그만이죠”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절차가 진행되면 아이 본인은 처벌을 원하는데 부모가 조용히 합의로 끝내려 하거나, 반대로 아이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는데 부모가 강하게 처벌을 요구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최근 대법원은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가 곧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같다고 볼 수 없다는 법리를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범위와, 아이 본인의 의사가 별도로 존중돼야 하는 범위는 법적으로 분명히 나뉩니다.
아래에서는 피해 아동과 부모의 뜻이 갈릴 때 법적으로 누구의 말이 어떤 국면에서 우선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아동 대상 성범죄는 부모나 아이의 뜻과 무관하게 국가가 직권으로 진행합니다
대부분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닙니다.
과거에는 성범죄 상당수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였습니다. 그러나 2013년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성범죄의 친고죄·반의사불벌죄 규정은 대부분 폐지됐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가 정한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 등은 지금도 이 원칙 아래 있습니다. 즉 피해 아동이 “그냥 넘어가고 싶다”고 말해도, 부모가 가해자 측과 합의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수사나 기소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실무에서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놀라시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학교나 병원 등에서 먼저 신고가 이뤄져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절차가 시작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이나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소 자체를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2. 부모의 ‘독립 고소권’은 아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별개 권리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아이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사할 수 있는 고소권을 부모에게 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23조는 범죄로 인한 피해자 본인에게 고소권을 인정하고, 같은 법 제225조 제1항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은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독립하여’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빌려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이 별도의 주체로서 고소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굳이 문제 삼고 싶어하지 않아도 부모는 단독으로 고소할 수 있고, 이는 아이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부모에게 부여한 별개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8조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직계존속 고소까지 성범죄에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아이를 보호할 어른의 고소권 행사를 최대한 넓게 열어두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이 독립 고소권은 절차를 ‘시작’하는 쪽에서 강한 힘을 가질 뿐, 이미 시작된 절차에서 처벌 여부에 대한 아이 본인의 의사표시를 부모가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모의 독립 고소권은 아이 의사의 대리가 아니라, 법이 부모에게 따로 인정한 별개의 권리입니다.
3. 절차를 되돌리는 국면에서는 의사능력 있는 아이 본인의 뜻이 부모보다 앞섭니다
대법원은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가 피해자 본인의 의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과거 구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6조가 정한 반의사불벌죄 사안에서, 14세 10개월이던 피해 아동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스스로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철회가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반의사불벌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 또는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의 철회는, 의사능력이 있는 피해자가 단독으로 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거나 법정대리인에 의해 대리되어야만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 말하는 의사능력은 나이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나이, 지능, 지적 수준, 발달·성숙도, 사회적응력 등을 종합해 범죄와 피해 상황, 그 의사표시가 가져올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같은 법리는 다른 사건 유형에서도 이어집니다.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도 “법정대리인의 처벌 관련 의사표시를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를 재확인하면서, 그 이유로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한다는 담보가 전혀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절차를 멈추거나 되돌리는 국면에서는, 부모의 뜻이 아니라 의사능력 있는 아이 본인의 뜻이 우선합니다.
4. 부모가 만든 합의서·탄원서도 아이의 진의가 없으면 양형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
법원은 그 서면이 진짜 아이의 뜻인지, 부모 혼자만의 결정인지를 가려냅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는 폭행·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유사강간에 해당하는 행위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 형법 제298조에 해당하는 강제추행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추행도 같은 형에 따릅니다.
이 사건들이 비반의사불벌죄인 이상,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법정형 자체가 바뀌거나 절차가 종료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합의·반성·피해회복 여부가 양형에서 무겁게 참작되는 사정이기 때문에, 변호인 입장에서는 진정성 있는 합의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문제는 그 서면을 부모가 합의금을 받고 혼자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입니다. 법원은 서명자가 미성년자인 피해 아동인지, 그 아이가 서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부모가 사실상 대신 결정한 것인지를 나이·지능·이해력을 기준으로 따로 심리합니다. 아이 본인의 진의가 확인되지 않는 서면은 양형 자료로서의 무게가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5. 고소부터 재판까지, 아이와 부모의 절차적 지위는 이렇게 구분됩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어떤 의사표시를 남기는지가 이후 절차를 좌우합니다.
아동 대상 성범죄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부모의 독립 고소 또는 아이 본인 고소) → ②피해 아동 조사(진술조력인 참여, 부모 동석 여부 협의)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기소 여부 결정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에서 합의서·탄원서 등 양형자료 제출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2항은 학교·의료기관 등 신고의무자가 있으면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정하고 있어, 부모가 원치 않아도 절차가 먼저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뜻이 갈리는 상황일수록,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자료와 아이의 의사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실제로 이해하고 표현한 의사가 무엇인지, 부모가 바라는 방향과 분리해 먼저 확인합니다.
진술조력인 참여 기록, 상담·심리평가 자료 등 아이의 의사능력을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합니다.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를 제출한다면 작성 경위와 아이 본인의 서명·확인 여부를 문서로 남깁니다.
이러한 절차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와 함께 준비한다면, 절차 개시 단계와 양형 단계 각각에서 누구의 의사가 어떤 효력을 갖는지 정확히 구분해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피해 아동을 둔 부모님들은 “아이를 위한 결정”이라는 마음으로 움직이지만, 정작 그 결정이 아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고와 강한 처벌을 원하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이가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하는 이유를 먼저 들어보고, 그 의사가 진짜 이해와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님 입장에서도, 그 의사가 존중받으려면 아이의 의사능력을 뒷받침할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 측 변호와 피해 아동 측 법률조력을 모두 진행해 온 변호사로서, 조서 한 줄로는 다 담기지 않는 아이의 진짜 생각이 절차 곳곳에서 얼마나 다르게 취급되는지를 여러 번 확인해 왔습니다.
아이의 뜻과 부모의 뜻이 갈리는 지점이야말로 법률 조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수사가 중단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대부분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피해 아동이나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만으로 수사·기소를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의사는 양형에서 참작될 수 있습니다.
Q. 부모가 합의금을 받고 합의서를 냈는데, 나중에 아이가 다른 뜻을 밝히면 어떻게 되나요?
A. 법원은 그 합의서가 아이 본인의 진의를 반영한 것인지 별도로 심리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의사능력과 서면 작성 경위가 확인되지 않으면 양형 자료로서의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Q. 의사능력은 몇 살부터 인정되나요?
A. 특정 나이로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나이와 함께 지능, 지적 수준, 발달·성숙도, 사회적응력 등을 종합해 그 사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합니다.
Q. 부모가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해도 학교에서 먼저 신고하면 어떻게 되나요?
A. 학교·의료기관 등 법령상 신고의무자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알게 되면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이 경우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절차가 먼저 시작될 수 있습니다.
Q.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형이 아예 나오지 않나요?
A. 비반의사불벌죄인 아동 대상 성범죄에서는 처벌불원서가 소송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유죄·무죄 판단이나 기소 여부를 바꾸지는 못하고, 양형에서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되는 정도입니다.
Q. 아이 조사 과정에서 부모는 완전히 배제되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술조력인 등 아이의 진술을 돕는 절차가 별도로 마련돼 있고, 부모 동석 여부와 방식은 아이의 상태와 사건 성격에 따라 조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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