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자 불명 제조물 사고, 판매한 공급업자가 지는 손해배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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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자 불명 제조물 사고, 판매한 공급업자가 지는 손해배상책임 

강대현 변호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보조배터리가 충전 중 터지거나, 이름도 낯선 브랜드의 가전제품이 고장으로 화재를 일으키는 사고를 당하면 소비자는 먼저 제조사부터 찾게 됩니다. 그런데 제품 어디를 봐도 제조사 정보가 불명확하거나, 표시된 제조사가 이미 폐업해 연락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제조사가 없으면 배상도 없는 것 아니냐고 지레 포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법은 이런 상황을 이미 예정해 두고 있습니다. 제조업자를 특정할 수 없을 때 그 제품을 팔았거나 빌려준 공급업자에게 배상책임을 넘기는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규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공급업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제조물책임법상 손해배상책임 — 원칙은 제조업자, 예외로 공급업자도 진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1항은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다만 그 제조물 자체에만 발생한 손해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는 뒤에서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함은 같은 법 제2조 제2호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안전하지 못하게 된 제조상 결함, 더 안전한 대체설계가 있었는데도 채용하지 않은 설계상 결함,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설명·경고를 하지 않은 표시상 결함입니다.

제조물책임법이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과 다른 지점은 무과실책임에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피해자는 제조업자의 고의·과실을 따로 입증할 필요 없이 제품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밝히면 됩니다. 계약관계가 없는 사람, 즉 그 제품을 직접 사지 않고 선물받거나 주변에 있다가 피해를 본 사람도 청구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책임을 물어야 할 상대, 즉 제조업자 자체가 누구인지 특정이 안 되는 경우입니다. 무명 브랜드 제품, 표시가 훼손된 제품, 제조사가 이미 폐업하거나 소재를 알 수 없는 제품이 여기 해당하고, 이런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바로 다음 항목에서 다룰 제3조 제3항입니다.

제조물책임법은 무과실책임에 가까워 피해자가 제조업자의 과실을 따로 입증할 필요는 없지만, 그 책임을 물을 제조업자 자체가 특정되지 않으면 청구 자체가 막힐 수 있다는 것이 실무의 벽이다.

제조업자를 알 수 없을 때 — 제3조 제3항, 공급업자에게 넘어가는 책임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3항은 "피해자가 제조물의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제조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대여 등의 방법으로 공급한 자는 제1항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제조업자가 누구인지 확인이 안 될 때는 그 제품을 팔았거나 빌려준 공급업자가 제조업자를 대신해 같은 수준의 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여기서 "공급"은 단순 소매 판매만이 아니라 대여·임대까지 포함하므로, 렌탈업체나 리스업체도 취급하는 제품에 결함이 있고 제조사가 불명이라면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실무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벌어집니다. 제품에 제조사 표시 자체가 없거나 외국어로만 표기돼 실제 확인이 어려운 경우, 표시된 상호가 이미 폐업해 등기부나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경우, OEM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생산돼 실제 제조 공장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 모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픈마켓에서 산 보조배터리가 폭발해 화상을 입었는데, 포장에 적힌 제조사명이 실재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제조사를 찾아 헤매는 대신 그 제품을 판매한 셀러나 유통업체를 상대로 곧바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제조업자를 알 수 없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공급업자에게 제3조 제1항과 같은 수준의 손해배상의무가 발생한다 — 공급업자 본인의 과실 유무는 별도로 따지지 않는다.

공급업자가 책임을 벗어나는 길 — 상당한 기간 내 고지 의무

공급업자에게 이 책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제3조 제3항 단서는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의 요청을 받고 상당한 기간 내에 그 제조업자 또는 공급한 자를 그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에게 고지한 때"에는 공급업자가 책임을 면한다고 정합니다. 실무 절차로 풀어보면, 피해자가 공급업자에게 제조업자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서면(가급적 내용증명)으로 요청하고, 공급업자가 그 요청을 받은 뒤 상당한 기간 안에 실제 제조업자의 이름과 주소 등 특정 가능한 정보를 회신하면, 그 시점부터 책임은 공급업자가 아니라 지목된 제조업자에게 넘어갑니다.

여기서 "상당한 기간"은 법에 며칠이라고 못박혀 있지 않고, 유통 단계의 복잡성이나 매입 거래 기록의 보관 상태 등 사안별 사정에 따라 판단됩니다. 다만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급업자가 매입처와의 거래명세서·세금계산서 같은 자료를 보관하지 않아 제조업자를 아예 특정하지 못하면 고지의무 자체를 이행할 수 없어 결국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구두로 문의만 하기보다 요청 시점과 내용을 명확히 남겨두어야, 이후 "상당한 기간"의 기산점을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 제조업자 고지 요청은 구두보다 서면(내용증명)으로 남겨 요청 시점을 명확히 할 것.

  • 공급업자가 회신 없이 시간을 끌면,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고 보아 그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 공급업자가 알려온 제조업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거짓이면 고지의무 이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표시상 제조업자 — 자기 상표를 붙인 유통업자도 제조업자로 본다

공급업자 책임과 구별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3호 나목은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나 그 밖에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해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시했거나, 제조업자로 오인하게 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도 법상 "제조업자"에 포함시킵니다. 대형마트나 유통업체가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내놓으면서 실제 생산은 하청 공장에 맡기고 자사 상표만 붙여 판매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 경우 실제로 제품을 만든 공장이 따로 있더라도, 상표를 붙인 유통업체는 처음부터 제3조 제1항의 제조업자로 취급되어 직접 배상책임을 집니다.

이 구조가 앞서 본 제3조 제3항과 다른 점은 책임의 성격입니다. 제3항은 제조업자가 정말 누구인지 모를 때 공급업자에게 '대신' 책임을 지우는 보충적 규정이지만, 표시상 제조업자는 애초에 자기 이름을 걸고 판 이상 제조업자 본인으로 취급되는 구조라 고지를 통해 책임을 벗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을 그대로 사입해 파는 재판매업자인지, 자기 상표를 붙여 유통하는 PB 사업자인지에 따라 같은 사고라도 책임의 근거 조문과 방어 방법이 달라집니다.

공급업자도 쓸 수 있는 면책사유 — 제4조가 정한 네 가지

제3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 자, 즉 공급업자도 제4조 제1항이 정한 면책사유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해당 제조물을 공급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점, 공급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 결함이 당시 법령상 기준을 준수해 발생했다는 점, 원재료나 부품이라면 그것을 사용한 제조업자의 설계·제작 지시로 결함이 생겼다는 점이 그 네 가지입니다. 공급업자 입장에서는 특히 두 번째, 즉 공급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는 항변이 실무에서 자주 쟁점이 됩니다.

다만 이 면책은 무제한이 아닙니다. 제4조 제2항은 공급업자가 제품을 공급한 뒤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손해 발생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앞서 본 네 가지 중 기술수준·법령기준·지시 관련 면책(2호~4호)을 주장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제품에서 폭발·발화 신고가 반복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판매를 계속하고 리콜이나 판매중단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이후 사고 피해자에게 공급업자는 기술수준을 이유로 한 면책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손해배상의 범위와 한계 — 제품 자체 손해는 제외된다

제3조 제1항은 배상 대상에서 "그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손해"를 제외한다고 괄호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결함 있는 제품이 그 자체로 고장 나거나 못 쓰게 된 손해는 제조물책임법이 아니라 민법상 하자담보책임이나 계약불이행 책임의 영역입니다. 제조물책임법이 다루는 것은 그 결함으로 인해 제품 밖의 생명·신체·재산에 추가로 번진 손해입니다.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7다1448 판결도 발전설비의 부품 결함으로 설비 자체가 손상된 사안에서, 그 수리·교체 비용은 제조물 자체에 발생한 손해에 해당해 제조물책임 법리의 적용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를 앞선 보조배터리 사례에 대입하면 구분이 분명해집니다. 보조배터리가 폭발해 사용자가 화상을 입거나 주변 물건에 불이 옮겨붙었다면 이는 제품 밖으로 번진 손해로 제조물책임법의 적용 대상이지만, 배터리가 그냥 충전이 안 되거나 작동을 멈춘 정도라면 그 자체의 하자에 그쳐 교환·환불이나 하자담보책임을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공급업자가 결함을 알면서도 방치해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라면, 제3조 제2항에 따라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멸시효와 면책특약 무효 — 놓치면 안 되는 절차적 함정

공급업자를 상대로 한 청구에도 소멸시효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제7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배상책임을 질 자를 모두 알게 된 날부터 3년 안에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여기서 "배상책임을 질 자를 안 날"은 제조업자가 아니라 공급업자를 특정하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되므로, 처음에는 제조업자를 찾다가 뒤늦게 공급업자 책임 구조를 알게 된 경우라면 그 시점부터 다시 3년의 기산이 시작된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아울러 제7조 제2항은 제조업자(공급업자 포함)가 손해를 발생시킨 제조물을 공급한 날부터 10년 안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장기 제척기간도 함께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것이 면책특약의 효력입니다. 제6조는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특약은 무효로 한다고 정합니다. 판매 영수증이나 이용약관에 "제품 하자로 인한 모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식의 문구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공급업자가 제조물책임법상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영업에 이용하기 위해 제품을 공급받은 사업자가 자신의 영업용 재산에 발생한 손해에 관해 맺은 특약은 예외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은 구분해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픈마켓에서 산 제품인데 판매자(셀러)가 이미 폐업했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요?

A. 오픈마켓 운영사는 통상 판매를 중개하는 통신판매중개업자에 그쳐 원칙적으로 공급업자로 보기 어렵고, 실제 물건을 등록해 판 셀러(통신판매업자)가 공급업자에 해당합니다. 셀러가 폐업했더라도 사업자등록 정보나 통신판매업 신고 정보로 상대방을 특정해 청구할 수 있고, 제조업자를 특정해 고지하지 못하면 그 셀러가 계속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Q.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개인에게 산 제품도 이 규정이 적용되나요?

A. 제3조 제3항은 "영리 목적으로 판매·대여 등의 방법으로 공급"할 것을 요건으로 하므로, 개인 간 비영리 중고거래에는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중고물품을 사업으로 매입·판매하는 업체를 통해 구입했다면 영리 목적 공급에 해당해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 해외직구로 산 제품이라 제조사가 국내에 없는데도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해외 제조사가 국내에 소재하지 않아 사실상 특정·상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상태에 준해 다뤄질 여지가 있고, 국내에서 수입·구매대행을 담당한 업체가 공급업자로서 책임질 수 있습니다. 다만 단순 배송대행인지, 실질적으로 수입·판매를 주도한 구매대행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계약 형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Q. 공급업자가 상당한 기간 내에 제조업자를 알려주면 배상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나요?

A. 제3조 제3항에 따른 책임에서는 벗어나지만, 만약 그 공급업자가 자기 상표를 붙여 판매한 표시상 제조업자에 해당한다면 제2조 제3호 나목에 따른 별도의 책임은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단순 재판매인지 자체브랜드 판매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Q. 공급업자에게 배상을 받으면 나중에 제조업자가 밝혀져도 더 청구할 수 없나요?

A. 피해자가 이미 받은 배상액을 넘어서는 이중배상은 인정되지 않지만, 공급업자로부터 받은 배상이 손해 전부를 채우지 못했다면 이후 제조업자가 특정된 경우 그 부족분에 대해 제조업자를 상대로 추가 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공급업자와 제조업자 사이의 구상 문제는 이들 사이에서 별도로 정리될 사안입니다.

Q. 영수증을 잃어버렸는데도 공급업자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영수증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지만, 카드 결제내역이나 배송조회 내역, 상품 후기·문의 게시글 캡처 등으로도 그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제품 사진, 사고 경위, 관련 자료를 최대한 폭넓게 모아 두는 것이 이후 절차에 유리합니다.

맺음말

제조업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서 제조물 사고의 피해가 그대로 소비자 몫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3항은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 제품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대여한 공급업자에게 대신 배상책임을 지우고 있고, 공급업자는 상당한 기간 내에 실제 제조업자를 고지하는 방법으로만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자기 상표를 붙여 판 유통업체라면 애초에 표시상 제조업자로 취급돼 고지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 배상 범위에서 제품 자체의 손해는 제외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제품과 구입 경로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고, 판매업체에 제조업자 정보를 서면으로 요청해 그 요청과 회신 여부를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이후 배상 청구 과정에서 실질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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