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득 확률 0.5%"라는 숫자를 믿고 결제했는데 그 숫자가 사실이 아니었다면, 이용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불과 몇 년 전까지 이 질문에 대한 법의 답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2022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 필요성」(『법학논총』 제35권 제1호)이라는 논문에서, 업계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므로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정의하고 확률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법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변화를 짚고, 게임 이용자·보호자·게임사가 각자 지금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정리합니다.
1. 57만 원짜리 판결이 가진 무게
대법원은 2024. 11. 28. 메이플스토리 이용자가 넥슨코리아를 상대로 낸 매매대금 반환 소송에서, 구매 금액의 5%인 약 57만 원을 반환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3다216883). 소액사건이어서 대법원이 법리를 직접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사가 옵션 출현 확률을 알리지 않고 조정한 행위를 이용자의 사행 심리와 매몰비용 집착을 이용한 적극적 기망행위로 본 원심 판단이 그대로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확률 정보가 구매 판단을 좌우하는 핵심 정보라는 점이 법정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가 2024년 1월 같은 게임의 유료 아이템 확률 조정 미고지를 이유로 부과한 116억 원대 과징금에 대해서는 취소소송이 진행 중인데, 서울고등법원은 선고를 거듭 미룬 끝에 9월 예정이던 선고 대신 변론을 다시 열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2. 확률형 아이템은 왜 법의 문제인가
확률형 아이템은 돈을 내고 아이템 자체가 아니라 아이템을 얻을 "가능성"을 사는 구조입니다. 지출은 확정적인데 대가는 불확정적이고, 그 확률을 설계하고 아는 쪽은 게임사뿐입니다. 2022년 논문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것이 바로 이 정보의 비대칭이었습니다.
여기에 여러 재료 아이템을 모아야 최종 아이템을 얻는 이른바 "콤프가챠" 구조가 결합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재료 대부분은 쉽게 모이게 하고 마지막 한 조각만 유독 얻기 어렵게 설계하면, 이용자는 이미 들인 비용이 아까워 멈추지 못합니다. 전형적인 매몰비용의 함정입니다.
그렇다고 형법상 도박죄로 다스리기는 어렵습니다. 도박은 당사자 모두가 우연에 따라 재물을 잃거나 얻는 구조인데, 확률형 아이템에서 게임사는 이용자가 좋은 아이템을 뽑더라도 잃는 것이 없는 편면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형벌을 앞세우기보다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고, 게임사가 "규제를 지키는 편이 이익"이라고 판단할 만큼 실효적인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3. 2022년 이후 달라진 법
① 확률 공개 의무화(2024. 3. 22. 시행) ― 게임물을 제작·배급·제공하는 사업자는 게임물 안은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와 광고·선전물마다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표시해야 합니다(게임산업법 제33조 제2항). 위반하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시정권고·시정명령 대상이 되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45조 제11호).
② 소송 특례(2025. 8. 1. 시행) ― 표시의무 위반으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생기면 게임사가 배상책임을 지고, 게임사가 스스로 고의·과실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책임을 면합니다(같은 법 제33조의2). 입증책임이 이용자에서 게임사로 넘어간 것입니다. 고의로 위반한 경우에는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질 수 있고, 피해구제 센터 운영 근거도 마련되었습니다.
이용자가 게임사 내부의 확률 설계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 곧 필자가 지적했던 정보 비대칭을 법이 정면으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다만 이 손해배상 특례는 시행일 이후 발생한 위반행위부터 적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4. 이용자라면: "언제" 일어난 일인지부터 확인하십시오
• 2025. 8. 1. 이후의 표시의무 위반이라면 소송 특례가 적용됩니다. 이용자는 표시의무 위반 사실과 손해를 주장하면 되고, 고의·과실이 없었다는 증명은 게임사의 몫입니다.
• 그 이전의 행위라면 특례가 적용되지 않아 민법의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기망을 이유로 구매를 취소하고 대금 반환을 구하거나(민법 제110조, 제741조) 불법행위 손해배상(제750조)을 청구하는 방식이며, 위 대법원 확정 사례도 이 경로였습니다. 이때는 기망 사실을 이용자가 입증해야 하므로 공정위 의결서 등 공적 자료의 활용이 중요합니다.
• 소송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전자상거래법 제21조 제1항 제1호),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분쟁조정(집단분쟁조정 포함),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등의 경로가 있습니다.
• 기간 제한도 있습니다.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고(민법 제146조),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합니다(민법 제766조).
증거는 사라지기 쉽습니다. 앱마켓·카드 결제 내역, 게임 내 구매·사용 기록, 확률 공지 화면(게시 일자가 보이도록), 공지 변경 이력, 고객센터 문의와 답변은 문제를 인지한 즉시 보존해 두시기 바랍니다. 공지는 예고 없이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있습니다.
5. 자녀가 부모 몰래 결제했다면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한 결제는 원칙적으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조). 다만 용돈처럼 처분을 허락받은 범위 안의 지출(제6조)이거나, 미성년자가 속임수를 써서 성인이나 동의를 받은 것으로 믿게 한 경우(제17조)에는 취소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부모 명의의 계정이나 결제수단이 사용되었다면 쟁점은 더 복잡해집니다.
2022년 논문에서 필자는 청소년의 확률형 아이템 구매에 일 또는 월 단위 한도를 두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제도 논의와는 별개로, 이미 결제가 이루어졌다면 앱마켓 환불 절차와 민법상 취소권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입니다.
6. 게임사라면: 이제는 "기록"이 곧 방어입니다
입증책임이 전환된 이상, 분쟁이 생기면 게임사가 표시가 정확했음을, 또는 오류가 있었더라도 고의·과실이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확률 설계와 변경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 표시 문구의 검수 절차, 오류 발견 후의 조치 경과를 평소에 남겨 두지 않으면 방어 수단 자체가 없어집니다.
논문에서 필자는 재료 아이템의 획득 확률은 공개하면서 이를 조합해 상위 아이템을 만들 때의 성공 확률은 공개하지 않던 사례를 자율규제의 우회로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강화·합성 등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구조라면 각 단계의 확률이 빠짐없이 표시되고 있는지, 게임 안의 공지뿐 아니라 홈페이지와 광고물까지 표시가 일치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나아가 확률 조작이 적극적 기망에 이른다고 평가되면 형사상 사기죄 성립 여부까지 문제될 수 있으므로, 민사·행정·형사 리스크를 함께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7. 맺으며
2022년 논문 말미에 필자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율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제 그 규율의 틀은 마련되었습니다. 남은 과제는 새 규정이 실제 분쟁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일입니다.
확률형 아이템 분쟁은 게임산업법, 전자상거래법, 민법, 형법이 한 사안 안에 겹쳐 있습니다. 위반 시점이 언제인지, 어느 절차로 무엇을 청구할지를 사건 초기에 설계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결제 내역과 공지 화면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윤영석 변호사
법무법인 베테랑 대표변호사 / 법학박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전문변호사 · 민사법 전문변호사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출강(형사실무연습)
한국법무보호복지학회 부회장
경기도 자율주행차 분과위원회 위원(법률 분야)
논문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 필요성」, 『법학논총』 제35권 제1호(2022)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