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할 때 집주인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 혹은 중개사무소 관계자가 나서서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계약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다가도, 입주 이후 집주인이 “그런 계약을 시킨 적이 없다”며 계약 자체를 부인하면서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제가 상담한 임차인분들 중 상당수는 “가족이니까 대신 계약해도 문제없겠지”, “중개사무소에서 다 확인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의 대리권을 별도로 확인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주인이 “그 사람에게 계약을 맡긴 적 없다”고 나오면, 보증금을 돌려받기는커녕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에 부딪히게 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대리권 없이 체결된 계약의 효력과 상대방 보호 범위에 관해 실제 대리권의 존재 여부와 표현대리의 성립요건을 엄격히 구분해 판단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리인을 자처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집주인에게 계약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집주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라도 계약을 진행한 사람에게는 별도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대리인과 맺은 임대차계약이 언제 집주인에게 효력이 미치는지, 집주인이 계약을 부인할 때 임차인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대리인과 맺은 임대차계약도 집주인 동의가 없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집주인의 추인이 없는 한, 대리인과 맺은 계약은 집주인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민법 제114조는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고 한 법률행위는 본인에게 직접 효력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리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면, 원칙적으로 그 계약의 당사자는 대리인이 아니라 집주인 본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람에게 실제로 대리권이 있었는지입니다. 민법 제130조는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 한 계약은 본인이 이를 추인하지 아니하면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이 “내가 대신 계약할게”라며 나섰더라도, 집주인으로부터 실제로 대리권을 받은 사실이 없다면 그 계약은 애초부터 집주인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는 무권대리 계약입니다.
실무에서는 중개사무소 직원이나 건물 관리인이 위임장 없이 “집주인님이 바쁘셔서 저한테 맡기셨다”는 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거나, 형제·자녀 등 가족이 집주인 동의 없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됩니다. 집주인이 추인하지 않는 한 이런 계약은 처음부터 집주인에게 효력이 없고,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 의무는 물론 임대차계약상 어떤 의무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집주인의 추인이 없는 한, 대리권 없는 사람과 맺은 임대차계약은 집주인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2. 집주인이 대리권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계약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계약은 집주인에게 그대로 효력이 미칠 수 있습니다.
대리권이 전혀 없었다고 해서 임차인이 무조건 불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은 이른바 표현대리 제도를 두어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상대방을 보호합니다. 민법 제125조는 집주인이 제3자에게 그 사람에게 대리권을 준 것처럼 표시한 경우, 민법 제126조는 대리인이 원래 가진 권한을 넘어 행위한 경우에 상대방이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민법 제129조는 과거에 있던 대리권이 소멸한 뒤에도 그 사실을 모르는 선의의 상대방에 대해서는 집주인이 책임을 진다고 각각 정하고 있습니다.
임대차계약에서 흔히 문제되는 것은 민법 제126조의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입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자녀나 배우자에게 매물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맡겼는데, 그 사람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금까지 받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표현대리가 성립하는 범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다는 의사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표시하거나 대리의사를 가지고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 성립한다(대법원 2025. 6. 5. 선고 2023다232526 판결).
결국 집주인이 열쇠를 맡기거나 매물 안내를 부탁한 적이 있는지,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를 건넨 적이 있는지, 계약 과정에서 집주인과 통화나 문자로 확인이 이루어졌는지가 표현대리 인정 여부를 가르는 핵심 사정이 됩니다. 반대로 그런 사정 없이 대리인이라 자처한 사람의 말만 믿고 계약했다면, 표현대리도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집주인이 대리권을 주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가 계약의 효력을 가르는 핵심입니다.
3. 표현대리가 인정되지 않으면 집주인이 아닌 대리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집주인의 추인도 받지 못했다면, 계약을 진행한 사람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집주인에게 표현대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해서 임차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135조는 타인의 대리인으로서 계약을 맺은 자가 그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또 본인의 추인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할 책임 또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리인에게 잘못이 있었는지를 따지지 않는 무과실책임입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대리인 스스로도 제3자에게 속아 대리권이 있다고 믿고 계약을 진행한 사안에서도 무권대리인의 책임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민법 제135조 제1항에 따른 무권대리인의 상대방에 대한 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서 대리권의 흠결에 관하여 대리인에게 과실 등의 귀책사유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무권대리행위가 제3자의 기망이나 문서위조 등 위법행위로 야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부정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3다213038 판결).
임대차계약에 적용해 보면, 대리인이 “나도 집주인 행세를 한 사람에게 속았다”고 항변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임차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임차인으로서는 계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대개는 지급한 계약금·보증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선택해 청구하게 됩니다.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추인도 받지 못한 이상, 계약을 진행한 사람은 임차인에게 이행 또는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4. 위임장을 위조하거나 집주인을 사칭했다면 사기·문서위조로도 처벌됩니다
보증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서류를 위조했다면 민사책임과 별개로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대리인이라고 나선 사람이 단순히 착각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집주인 명의의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를 위조해 임차인을 속이고 보증금을 받아 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형법 제231조는 행사할 목적으로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를 위조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고, 형법 제234조는 이렇게 위조된 문서를 실제로 사용한 경우 같은 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위조한 위임장을 내세워 임차인을 속이고 보증금을 편취했다면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도 함께 성립합니다.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은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문서위조·행사와 사기는 실체적 경합으로 함께 기소되어 처벌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가족이 집주인 몰래 계약을 진행한 경우라도,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를 임의로 작성하거나 도용했다면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달리, 문서를 위조해 사용한 이상 형사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5. 보증금 반환과 형사 고소는 이런 절차로 진행됩니다
계약서와 통장 내역부터 정리해야 형사 고소와 민사 청구 모두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계약을 부인하고 대리인과도 연락이 끊겼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 ②고소인·피고소인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위조·사기 혐의가 소명되면 구속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계약서에 적힌 집주인 이름과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합니다.
대리인이 제시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가 실제로 발급된 것인지, 가능하면 집주인에게 직접 연락해 계약 사실을 확인합니다.
계약금·보증금을 입금한 계좌가 집주인 명의인지 확인하고, 대리인 개인 명의 계좌로는 송금하지 않습니다.
이미 대리인 개인 계좌로 보증금을 지급했다면, 계약서·입금 내역·위임장 사본·문자메시지 등을 최대한 확보한 뒤 임대차 대리 분쟁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형사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실질적인 회수 방안을 찾는 길입니다.
마치며
임대차계약이 대리인 문제로 꼬이면, “설마 집주인이 모르는 계약이었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주장보다, 계약 당시 대리권을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위임장, 통화·문자 기록, 계약금 입금 계좌 내역이 쌓일수록 집주인에 대한 표현대리 주장과 대리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모두에서 유리해집니다.
반대로 가족이나 지인을 대신해 계약을 진행했다가 뜻하지 않게 책임을 추궁당하는 쪽에서도 “가족이니까 문제없을 줄 알았다”는 말만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 대리권을 받았는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저는 임대차 대리 분쟁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과, 반대로 대리행위로 인해 책임을 추궁당하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대리권을 뒷받침하는 자료의 유무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애매하다면, 그게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리인과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집주인이 모른다고 하면 계약은 무효인가요?
A. 집주인이 추인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집주인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다만 집주인이 대리권을 주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표현대리로 유효할 수 있으므로, 계약 경위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Q. 공인중개사가 소개해서 계약했는데도 집주인이 부인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 등을 확인·설명할 의무가 있어, 대리권 확인을 소홀히 했다면 중개사에게 별도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Q. 위임장을 보여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였다면 계약은 어떻게 되나요?
A. 위조된 위임장은 대리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 없으므로 집주인에게는 효력이 없는 무권대리 계약입니다. 다만 그 위임장을 내세운 사람에게는 민법 제135조에 따른 계약 이행 또는 손해배상 책임과, 별도로 사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Q. 대리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집주인의 추인도 받지 못했다면, 대리인은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거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현실적으로는 손해배상을 선택해 지급한 금액 상당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대리인을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를 위조하는 등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다면 사기죄와 사문서위조죄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사기죄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Q. 계약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나중에 분쟁을 피할 수 있나요?
A. 등기부등본으로 소유자를 확인하고, 대리인이라면 위임장·인감증명서·신분증 사본을 받은 뒤 가능하면 집주인에게 직접 전화해 계약 사실과 계좌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Q.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같이 진행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형사 고소 과정에서 확보되는 수사 기록이 민사상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 청구의 입증자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두 절차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보증금 회수에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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