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성취 방해, 신의칙 위반한 상대방에게 조건 성취를 주장할 수 있는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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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성취 방해, 신의칙 위반한 상대방에게 조건 성취를 주장할 수 있는 요건 

강대현 변호사

매매계약에 인허가 취득을, 공사도급계약에 준공검사 통과를, 근로계약에 수습평가를 조건으로 걸어두는 경우는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이루어지면 손해를 보는 쪽이 일부러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협조를 거부해 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보게 된 상대방이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다면 신의성실 원칙은 무의미해집니다. 민법은 이런 경우를 위해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별도의 구제 수단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요건과 한계, 실제 분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조건부 법률행위, 정지조건과 해제조건부터 구분해야 한다

조건이 걸린 계약을 다루려면 먼저 그 조건이 어떤 성격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민법 제147조 제1항에 따른 정지조건은 조건이 성취되어야 비로소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는 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인허가를 받으면 이 토지 매매계약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식의 약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같은 조 제2항의 해제조건은 이미 발생한 법률행위의 효력이 조건 성취로 소멸하는 조건입니다. "임차인이 3개월 이상 월세를 연체하면 임대차계약은 자동 해지된다"는 약정이 대표적입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하면, 조건 성취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불이익을 보는지가 정지조건이냐 해제조건이냐에 따라 정반대로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정지조건부 매매계약에서는 조건이 이루어져야 계약 효력이 살아나므로, 매도인이 계약을 무르고 싶다면 조건 성취를 방해할 유인이 생깁니다. 해제조건부 계약에서는 반대로 조건이 이루어지면 계약 효력이 사라지므로, 계약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쪽이 방해할 유인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조건부 법률행위에서는 어느 한쪽이 조건 성취 여부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그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가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문제 됩니다.

민법 제150조 — 조건성취를 방해한 상대방에게 주는 반격

민법 제150조 제1항은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앞서 본 정지조건부 매매계약 사례로 보면, 계약 효력이 발생하면 불이익을 보는 매도인이 인허가 신청 서류에 협조하지 않거나 담당 공무원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등으로 인허가 취득을 방해했다면, 매수인은 인허가를 실제로 받지 못했더라도 그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하며 계약의 효력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정반대의 경우를 규율합니다.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을 성취시킨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하지 아니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과 달성을 조건으로 성과급을 받기로 한 사람이 실적을 부풀리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조건을 인위적으로 채워 넣었다면, 상대방은 실제로는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취급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두 조항 모두 신의성실 원칙이 조건이라는 법률요건에 구체적으로 발현된 형태이고, 방해 행위로 부당한 이득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볼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 성취를 막았다면 상대방은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할 수 있고, 반대로 이익을 볼 당사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조건을 채웠다면 상대방은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방해'로 인정되려면 — 대법원이 요구하는 인과관계 판단기준

조건 성취를 방해한 사실만 있으면 곧바로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22다266645 판결은 민법 제150조 제1항의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란 사회통념상 그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데도 방해행위 때문에 성취되지 못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도 애초에 조건이 성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던 경우까지 조건 성취를 의제해 버리면, 상대방에게 원래 기대할 수 없었던 이익까지 안겨주는 결과가 되어 오히려 공평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은 방해행위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도 제시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조건부 법률행위를 하게 된 경위와 의사, 그 법률행위의 목적과 내용, 방해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 해당 조건의 원래 성취 가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방해행위가 조건 성취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조건 성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상대방의 행위가 신의칙에 어긋난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와 조건 불성취 사이의 인과관계를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증명해야 합니다.

  • 조건부 법률행위를 하게 된 경위와 당사자의 의사

  • 법률행위의 목적과 내용, 조건을 붙인 이유

  • 방해행위의 구체적 태양(적극적 방해인지, 협조 거부인지 등)

  • 방해행위가 없었을 때 조건이 실제로 성취될 가능성이 있었는지

  • 조건 성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의 존재 여부

고의뿐 아니라 과실로 인한 방해도 포함된다

조건 성취 방해는 고의로 저지른 경우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 1998. 12. 22. 선고 98다42356 판결은 하도급받은 공사 부분을 완공하고 준공필증을 제출하는 것을 공사대금채무의 정지조건으로 정한 사안에서, 도급인이 공사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지 않고 공사장 출입을 통제해 하수급인이 나머지 공사를 수행할 수 없게 만든 행위를 조건 성취 방해로 인정했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은 그 방해가 반드시 고의에 기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과실로 인해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 성취를 저해한 경우에도 민법 제150조 제1항이 적용된다고 본 데 있습니다.

또한 대법원 1990. 11. 13. 선고 88다카29290 판결은,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입을 당사자가 그 조건 성취에 필요한 자신의 협력의무조차 이행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 역시 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방해공작을 펼쳐야만 제150조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협조를 하지 않아 조건 성취를 좌절시키는 부작위 형태의 방해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정지조건부 매매계약 사례에서 매도인이 인허가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 미루며 내주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인정되는 시점과 주장 방법

민법 제150조에 따른 조건 성취 의제는 방해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법원이 알아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소송에서 청구원인이나 항변으로 이를 직접 주장하고 방해행위와 조건 불성취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판단합니다.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취급되는 시점 역시 방해행위가 있었던 시점이나 소송에서 이를 주장한 시점이 아니라, 신의성실에 반하는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면 사회통념상 조건이 성취되었으리라고 인정되는 시점으로 봅니다. 즉 실제 조건이 이루어졌어야 할 자연스러운 시점을 역산해서 그때 조건이 성취된 것처럼 법률효과를 소급시키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방해행위가 있었다고 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결과가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도 아닙니다. 2022다266645 판결이 지적한 대로, 방해행위와 무관하게 애초에 조건이 성취되기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다면 그 부분까지 의제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조건 성취를 주장하려는 쪽은 방해행위가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조건이 갖춰졌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구체적인 정황과 자료로 뒷받침해야 하고, 단순히 상대방이 비협조적이었다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건 성취 의제는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 방해행위와 조건 불성취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대방이 직접 주장·증명해야 하고, 의제되는 시점도 방해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을 시점으로 소급된다.

실제 분쟁에서 조건성취 방해가 문제되는 장면들

실무에서 조건 성취 방해가 다투어지는 유형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부동산 거래에서는 토지 형질변경이나 개발행위 허가 취득을 정지조건으로 한 매매계약에서, 계약 후 시세가 오르자 매도인이 인허가 신청에 필요한 인감·위임장 발급을 미루거나 담당 관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허가를 지연시키는 사례가 자주 나타납니다. 공사도급 관계에서는 앞서 본 98다42356 판결처럼 준공검사 통과나 준공필증 제출을 대금 지급의 조건으로 걸어놓고, 도급인이 검사에 필요한 협조를 거부해 수급인이 조건을 채우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로관계나 성과보수 약정에서도 비슷한 다툼이 생깁니다. 일정 실적 달성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회사가 실적 집계를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담당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이관해 실적을 쌓을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에서 특정 상권 내 경쟁 매장이 없을 것을 조건으로 계약금 반환 약정을 두었는데, 가맹본부가 그 경쟁 매장 개설 여부에 관한 정보를 은폐해 조건 확인 자체를 방해하는 사례도 실제로 문제 된 바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조건 성취 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당사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정보를 은폐한다는 점입니다.

  • 부동산 매매 — 인허가·형질변경 조건부 계약에서 매도인의 인허가 협조 거부

  • 공사도급 — 준공검사·준공필증 제출 조건에서 도급인의 시설 미제공, 출입 통제

  • 성과보수·인센티브 — 실적 조건 달성 기회를 박탈하는 업무 재배치

  • 가맹계약 — 상권 보호 조건 확인에 필요한 정보 은폐

방해가 인정되지 않을 때 남는 손해배상이라는 대안

민법 제150조에 따른 조건 성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아무런 구제수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부 계약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상대방의 조건 성취를 부당하게 방해하지 않을 의무가 인정되고, 이를 위반하면 그 자체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의제해달라는 청구가 인과관계 증명 부족으로 기각되더라도, 방해행위로 인해 실제로 발생한 손해를 별도로 청구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다만 두 청구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조건 성취 의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계약의 효력 자체가 발생한 것으로 취급되어 원래 조건 성취 시 얻었을 이익 전체를 청구할 수 있는 반면, 손해배상 청구는 방해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범위 안에서만 인정됩니다. 소송 실무에서는 조건 성취 의제 주장을 주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예비적으로 함께 구성해 인과관계 증명이 부족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구제를 확보하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어느 쪽을 주장하든 방해행위의 구체적 경위, 조건 성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 손해의 발생과 액수를 입증할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대방이 조건 성취를 방해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되나요?

A. 아닙니다. 방해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 방해가 없었더라면 사회통념상 조건이 성취되었을 것이라는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합니다. 방해행위와 무관하게 원래 조건 성취 가능성이 낮았던 경우까지 조건 성취가 의제되지는 않습니다.

Q. 고의로 방해한 것이 아니라 실수나 부주의로 조건 성취를 막은 경우에도 해당하나요?

A. 판례는 과실로 인한 방해도 민법 제150조 제1항의 적용 대상으로 봅니다. 다만 신의성실에 반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단순한 사무 처리 지연을 넘어 사회통념상 부당하다고 평가될 만한 사정이 필요합니다.

Q. 반대로 상대방이 조건을 억지로 성취시킨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하나요?

A. 민법 제150조 제2항에 따라, 조건 성취로 이익을 볼 당사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조건을 성취시켰다면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방법에 해당하는지는 성취 과정의 구체적 사정을 살펴 판단합니다.

Q. 방해행위와 조건 불성취 사이의 인과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하나요?

A. 방해행위 전후의 진행 경과를 보여주는 문서나 통신 기록, 방해가 없었던 유사 사례와의 비교, 관련 절차의 통상적인 소요 기간 등을 활용해 방해행위가 없었다면 조건이 성취되었을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인정되면 그 효력은 언제부터 발생하나요?

A. 방해행위가 있었던 시점이나 소송에서 주장한 시점이 아니라,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으리라고 인정되는 시점으로 소급합니다. 그 시점을 특정하는 것 자체도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 조건 성취를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런 구제도 받을 수 없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조건 성취 의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방해행위 자체가 신의성실 위반에 해당한다면 그로 인한 손해를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를 근거로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조건부 법률행위는 당사자 일방에게 조건 성취 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사실상의 지위를 부여하기 쉽고, 그 지위를 이용한 방해가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문제 됩니다. 민법 제150조는 이런 상황에서 신의성실 원칙을 구체적인 법률효과로 연결하는 장치이지만, 방해행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원하는 결과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최근 판례로 더 분명해졌습니다. 방해행위와 조건 불성취 사이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이 조항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허가 조건부 부동산 거래나 준공조건부 공사대금 분쟁처럼 조건 성취 여부를 둘러싼 다툼은 초기에 관련 자료를 확보해두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립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에서 개발행위 인허가나 공사대금과 관련해 조건부 계약 분쟁을 겪고 있다면, 방해행위의 구체적 정황을 정리한 뒤 법률 조력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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