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가 보태준 전세금 1억, 이혼할 때 갚아야 하나요
이혼을 결심하고 나면 통장 잔고보다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게 그 돈입니다. 신혼집 전세금의 절반 넘게 시부모님이 보내주셨고, 그때는 그저 고맙기만 했던 돈이죠. 그런데 남편 쪽에서 "그건 빌려준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면 먼저 답부터 드립니다. 부모가 자녀 부부의 주거를 위해 보태준 돈은 실무에서 원칙적으로 증여로 보아 반환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쪽이 다수입니다. 판단을 가르는 건 차용증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돈을 실제로 갚아온 흔적이 남아 있느냐입니다.
두 개의 전세보증금
제가 맡았던 사건 두 개를 나란히 놓겠습니다. 하나는 결혼 8년 차 서연 님(가명) 사건이었는데요. 전세보증금 2억 4천만 원 중 1억 3천만 원을 시부모가 한 번에 송금했고, 차용증은 없었습니다. 이혼 소송이 접수되자 시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냈습니다. 부부 공동재산에서 그 금액을 빚으로 털어내려는 셈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결론이 난 사건입니다. 여기도 차용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5년 넘게 매달 45만 원을 시부모 계좌로 보낸 내역이 있었고, 그 금액은 시부모가 같은 무렵 받은 주택담보대출의 월 이자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이미 감이 오실 겁니다.
갈린 지점, 상환의 흔적
서연 님 사건에서는 8년 동안 원금도 이자도 단 한 번 오간 적이 없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사건은 상환의 리듬이 통장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 차이가 두 사건의 결론을 갈랐습니다.
민법 제554조는 증여를 무상으로 재산을 주는 계약으로 정하고 있어, 반환 약정과 그 이행의 흔적이 없다면 대여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민법 제598조의 소비대차는 반환 약정을 본질로 하므로 대여라고 주장하는 쪽이 약정과 정황을 증명해야 합니다. 서연 님 사건에서는 시아버지가 명절에 보낸 "그 돈은 너희 집이니 마음 편히 살아라"는 문자 한 통이 결정적인 반증이 됐습니다.
급조된 차용증의 운명
상담에서 가장 많이 듣는 오해가 이겁니다. "차용증이 있으니 저는 불리하겠죠." 아닙니다. 작성 날짜부터 봅니다.
부부 갈등이 표면화된 뒤 만들어진 차용증, 특히 이혼 조정 기일이 잡힌 다음 나온 서면은 실무에서 무게가 상당히 떨어집니다. 반대로 차용증이 아예 없어도 송금 적요, 상환 내역, 시부모의 자금 조달 경로가 맞물리면 채무로 인정됩니다. 서류의 존재보다 돈이 흐른 방향과 시점이 앞선다는 게 이 영역의 실제 판단 결입니다.
확인해야 할 다섯 가지
돈이 입금된 날과 전세계약 체결일 사이의 간격
계좌 적요에 무엇이라 적혀 있는지 — "전세보태"와 "대여"는 무게가 다릅니다
이후 원금이나 이자가 오간 내역. 가장 결정적입니다
차용증 작성일과 부부 갈등이 불붙은 시점의 선후 관계
시부모가 그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본인 대출이면 대여 쪽으로, 여유자금이면 증여 쪽으로 기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환 내역이 뚜렷하고 대출 이자까지 맞아떨어지는 사안이라면 이 부분을 다투는 데 힘을 쏟기보다 인정하고 다른 재산에서 기여도를 끌어오는 편이 최종 결과는 낫습니다.

증여로 인정된 다음의 싸움
증여로 정리됐다고 해서 전액이 절반씩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 중 일방이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은 민법 제830조 제1항에 따라 특유재산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민법 제839조의2 제2항은 재산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할 때 쌍방의 협력 정도와 그 밖의 사정을 참작하도록 하고 있어, 혼인 기간이 길고 그 보증금으로 마련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유지·증식에 기여했다면 분할 대상에 포섭됩니다. 서연 님 사건은 결국 해당 금액을 분할 대상에 넣되 남편 기여를 더 인정하는 선에서 정리됐죠.
시간과 준비물
기한부터 짚습니다. 민법 제839조의2 제3항에 따라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한 날부터 2년이 지나면 소멸합니다. 협의이혼으로 먼저 도장을 찍은 뒤 보증금 문제를 미루다가 이 기간을 넘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부모가 대여금 소송을 걸어왔다면 더 급합니다. 민사소송법 제256조 제1항에 따라 소장 부본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무변론 판결이 선고될 수 있고, 그 판결이 이혼 재판에서 채무의 근거로 제출됩니다. 판결이 나면 선고일로부터 14일 안에 항소해야 합니다. 혼자 대응하시다가 이 30일을 놓쳐 이미 확정된 상태로 찾아오시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지금 통장 거래내역을 뒤져보고 계시다면 방향은 정확합니다. 상담에는 전세계약서, 입금 당시부터 최근까지 최소 5년분 거래내역, 시부모와 주고받은 문자나 메신저 대화, 차용증이 있다면 그 원본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자료가 부족해도 가사소송법 제48조의2와 제48조의3의 재산명시·재산조회 제도로 상대와 시부모 측 자금 흐름을 확인할 길이 있으니, 없는 자료부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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