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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이해와 법리 

안영진 변호사



2024년 1월, 대학원생 S씨는 진로 상담을 위해 지도교수인 K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상담은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K교수는 요즘 힘들어 보여 마음이 쓰였다며 좋은 기회가 있으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 덧붙었습니다. 학과 내 영향력이 크고 취업과 진학에 결정적인 추천권을 쥔 교수의 제안이었기에 S씨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차례 상담이 이어진 뒤 K교수는 S씨를 자택으로 불렀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S씨는 뚜렷하게 거부하지 못했고 교수가 이끄는 대화에 따랐습니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 S씨는 K교수를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고소장에는 지도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진로 상담을 빌미로 자택으로 유인한 뒤 연구 기회와 추천을 내세워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고, 권력 관계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K교수는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으며, 술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고민을 나누다 서로 동의 아래 맺은 관계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실무에서 마주하는 수사기관 또는 법원의 시선은 피의자(피고인)의 생각과 사뭇 다릅니다. 위계나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물리적 강제력의 유무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하 관계 속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당했는가를 면밀히 심리하기 때문입니다.

권력형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형법에서 엄격히 다룹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은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합니다.

형법 제303조 역시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며,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2항은 보호·감독 관계에서의 성범죄를 가중 처벌합니다.

폭행이나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삼는 형법 제297조의 일반 강간죄와 달리, 이 범죄는 폭행·협박이 없어도 성립합니다. 피해자가 겉으로 거부하지 못했더라도 위력에 눌려 의사 표시가 억압되었거나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정황이 인정된다면 혐의가 인정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위계란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정상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일체를 가리킵니다. 대법원은 2020년 판결(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판결)에서 착오가 간음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나 대가와 같은 요소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진료 행위라 속이고 신체 접촉을 하거나 채용을 확약할 권한이 없으면서 취업을 약속해 관계를 유도하는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꺾기에 충분한 유·무형의 힘을 포괄합니다. 대법원은 사회적·경제적 지위에서 오는 사실상의 권력 관계 역시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시합니다. 교수와 학생, 직장 상사와 부하, 의사와 환자처럼 한쪽이 상대방의 학업이나 생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라면, 존재 자체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무죄가 선고된 판례를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어떤 지점을 치열하게 다투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법원 2019. X. X. 선고 2018고합XX 판결]

먼저 대학 조교가 학생을 상대로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간음했다며 기소되었던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여러 차례 단둘이 술을 마셨고 당일에도 자발적으로 동석한 뒤 모텔에 들어갔으며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하거나 저항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성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지위에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해 피해자가 지위 때문에 거부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력을 행사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단순히 조교와 학생이라는 형식적 관계만으로 위력을 인정하지 않고, 지위가 실제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압하는 도구로 작동했는지, 이전부터 친밀한 교류가 이어졌는지를 종합해 판단한 결과입니다.

[○○○○법원 2021. X. X. 선고 2020고합XX 판결]

채용 담당자가 구직자에게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말하며 만남을 이어가다 관계를 맺어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고소된 사안에서도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채용을 확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자료가 없고, 추천서 작성은 피고인의 직무 범위 안에서 가능한 행위였으며 이를 성관계의 대가로 결부시켰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가 만남을 이어간 것 역시 독자적인 판단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즉, 상대방을 기망해 착오에 빠뜨린 인과관계가 명백히 입증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호의나 대가성 없는 만남을 위계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러한 사건에서 피고인 측이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네 가지 핵심 쟁점을 빈틈없이 구성해야 합니다. 

첫째는 보호·감독 관계 자체를 다투는 일입니다. 형식적인 직함이 있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사나 평가, 학점, 진로에 관여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거나, 두 사람이 동등한 눈높이에서 교류를 시작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정리해야 합니다. 

둘째는 위력 행사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작업입니다. 만남 전후로 피해자가 먼저 연락을 건네거나 일정을 조율한 대화 내역, 피고인의 사적인 요구나 부탁을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거절했던 전례, 사건 직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기록은 억압되지 않은 대등한 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가 됩니다.

셋째는 기망행위, 즉 위계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피고인이 건넨 말이 직무 범위 내의 통상적인 조언이었는지, 허위 사실을 꾸며내 성적 접촉의 대가로 결부시킨 정황이 없음을 당시 정황 증거로 확인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증명책임입니다. 보호·감독 관계의 존재, 위력이나 위계의 실질적 행사, 범행의 고의에 대한 증명책임은 온전히 검사에게 있습니다. 실질적인 강제력이나 기망의 작동 과정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준으로 입증되지 못한다면 무죄가 선고되어야 마땅합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책도 경계해야 합니다. 

상대방도 원했다거나 거부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섣불리 쏟아내는 것은 위험합니다. 피해자가 위력에 눌려 침묵했을 가능성을 법원이 의심하는 단계에서 이런 진술은 사건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거나 상황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읽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소장을 정보공개청구하여 전달받은 뒤 억울함을 풀겠다며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주변인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고, 인사나 업무상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는 2차 가해나 보복으로 해석되어 방어권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직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권력 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태도 역시 위험합니다. 법원은 명목상 직급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의 차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므로, 혐의를 부인하려면 사실관계와 영향력의 한계를 정교하게 짚어내야 합니다.

위계나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관계의 비대칭성 속에서 일어나는 만큼 혐의의 경계선이 대단히 모호합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용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성인 남녀가 자유의사로 맺은 관계까지 수직적 지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로 포섭되어서는 안 됩니다.

억울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 두 사람이 맺어온 관계의 실질을 객관적인 자료로 복원하고, 사건 전후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기록을 온전히 확보하여 자발적인 소통이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권력 관계를 둘러싼 법리와 증거 해석은 대단히 복잡한 만큼, 초기 단계부터 사실관계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만 억울한 처벌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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